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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수 할배 Aug 03. 2024

교육대학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26화)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직장 다닌 다음에

네가 할 수 있거나 할 수 있다고 꿈꾸는, 그 일을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는,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

괴테


인생에는 목적이 있는가? 

1978년에 부산의 동래교회를 다니다가 1979년 봄 즈음에 집에서 가까운 수정동 교회로 옮겼다. 주일학교 시간으로 기억하는데, 교사가 교리를 가르치면서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말했다. 사람은 태어나서 살아가는 데 목적이 있다는 의미다. 교회에서는 성도들에게 삶의 목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끄럽게도 인생의 목적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었지만, 중요하게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직업으로 살아갈지를 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날 저녁부터 집중하여 생각하였다. ‘나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초등교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을 했다. 그리고 결심을 이루기 위하여 부산교육대학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당시에 조그만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학원에 등록하여 공부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이 결심을 부모님께도 말씀드렸다. 아버님은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어머님이 집안의 어른인 이모님께 말씀을 하셨는지, 외사촌 누나들을 만났을 때 화를 내었다.

“정신이 있니 없니?”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지 말고 직장이나 잘 다녀라”라고 충고하였다.

그분들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왜냐하면 내가 걸어온 길을 잘 알고 그랬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75년에는, 대학에 가려면 대학교 정원의 두 배를 선발하는 예비고사를 쳐서 통과해야 했다. 세 군데 지역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부산, 경남, 전남 순으로 지원하여 시험을 쳤으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세 지역 가운데 전남이 176점(340점 만점)으로 가장 낮았지만 나는 그 점수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1979년 당시 부산교육대학의 입학점수는 전국 교대 중에서 서울교대 다음으로 높았다. 그리고 평균점수로 보면 부산대학교 입학생들과 비슷하거나 높을 수 있다. 그러니까 외사촌들은 나의 옛날 점수를 알고, 부산교대에 입학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훤하게 알았다. 그런데 내가 대학교에 간다고 선언하고, 대학도 하빠리 대학이 아닌 부산교대를 목표로 한다니까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친척들의 염려가 깊기도 했지만 나도 걱정이 많았다. 내가 정말 부산교대에 합격할 수 있을지를 알고 싶었다. 며칠 더 생각해도, 초등교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산교대 합격 여부에 대하여 기도를 해 보았다. 그런데 기도하는 순간에 가슴이 무척 따뜻해짐을 느꼈다. 내 상황이 절박하여 합격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으므로 한 번 더 기도를 하였다. 또다시 가슴이 따뜻해져서 ‘합격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가족과 친척들에게는 이 느낌을 말하지 않았다.


다음 달부터 입시 공부를 시작했다. 부산에서 유명한 학원은 서면 쪽에 몰려있었다. 1979년 5월 서면의 한 학원 야간 종합반에 등록하였다. 등록하고 2주쯤 다녔을 때,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쳤다. 당시 나의 진정한 실력을 알기 위하여 답을 알듯한 문제에만 표시를 했다. 그 시험에서 79점을 받았다. 점수를 보고 고개가 떨구어졌다. 이 점수로 교육대학에 갈 수 있을지 걱정이 커졌다.   


그래도 기도할 때의 느낌을 회상하면서, 한숨은 나오지만, 희망을 갖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6월과 7월에도,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저녁에는 학원에 가서 공부하였다. 그런데 8월이 되자 시험 낙방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3년 쉬고 하는 공부라 발전 속도가 더뎠고, 모의고사의 낮은 점수도 마음에 걸렸다. 이런 고민을 눈치챈 어머니는 서울에서 개인사업을 하시는 삼촌(L)에게 가서 일을 배우라고 하였다. 그래서 8월은 학원에 등록하지 않고 서울에 갔다. 그러나 피곤해서인지 아파서인지 삼촌 사업에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이틀인가 지내다가 부산에 돌아왔다. 8월의 대부분은 공부하지 못했다.


Whatever you can do or dream you can, begin it.
Boldness has genius, power, and magic in it.

Goe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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