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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율 Apr 28. 2024

죽임이 아닌 죽음을 맞이할 권리

[일전의 편지] 이야기 둘

본 회차는 자해의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어릴 적에는 내 몸의 한 부분 한 부분이 점차 죽어나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내 눈이 멀어버린다면. 지금 두 귀가 먹는다면. 혓바닥이 움직여지지 않는다면. 발가락이 없다면.

     어두운 방 안에서 그런 상상을 하다가 퍼뜩 두려워져서 다시 눈을 뜨곤 했다. 숱하게 눈을 감고 눈을 떴지만 나를 거기까지 몰아붙였던 게 무엇이었는지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십 년이 지난 뒤에는 중요하지도 않게 될 무언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거기서 나를 멈췄더라면 나의 고통은 바로 그 지점에서 영원했을 것이다.


이 년 전 여름으로부터.


아무것도 별로 바뀐 것 같지가 않아. 이렇게나 많은 게 달라졌는데.


아침저녁으로 자해를 하니까 며칠 만에 상처가 난 면적이 넓어지고 상처의 거리가 촘촘해졌다. 그래서 아마도 오늘 저녁에는 자해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아니면 팔이 아닌 다른 곳에 자해를 하게 되던가. 그러겠지.

     아무래도 상관없어.


정신과에서 받은 약이 늘어나면서 슬프다는 감정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냥 저절로 줄어들 때가 되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 약이 자해를 억누르는 데 영향을 미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얘기했듯이 더는 상처를 낼 자리가 없어서. 팔꿈치 아래까지는 상처를 남길 수 없어서. 그래서 자해를 못하는 것 같아.


약이 무슨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지난 회기에서도 그렇게 말했었는데. 그래도 약은 늘어났다. 이번에도 그럴지도 몰라. 내 말이 오히려 의사의 처방의 욕구를 증폭시키기만 할 뿐인지도.

     나는 일단 내 발로 찾아간 만큼이라도 의사를 신뢰하고 싶지만. 의사가 먼저 지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리고 어떻게 되건 나는 그 약을 다 먹게 되겠지.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리고 아무것도 뚜렷하지 않으니까. 내 약의 포장지에 쓰여진 용법 말고는.

     식후 삼십 분. 저녁에 복용하세요.


나는 늘 그렇듯이 네라고 대답한다.

     항상 네라고 대답해.


네.


이 년 전 여름으로부터.


추신.


최초의 자해는 여섯 살의 밀실에서 이루어졌다. 한국이 아니었고 내가 그곳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한국 사람이던 어머니는 날마다 나를 가두고 문을 잠그고선 밖으로 나갔다. 불을 켜서도 창문을 내다봐서도 커튼을 움직여서도 발걸음 소리를 내서도 안 됐다. 내가 그 밀실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 역시 어머니밖엔 없었고 그래야만 했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가 부재한 시간들을 채우기 위해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강제로 잊어버리는 연습을 했다.

      영유아들이 방치 속에서 안정감을 유지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엄지손가락을 빠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아기들이 이런 행위를 하고 이것은 낮은 발달시기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기들이 이가 날 무렵부터 손 빨기를 멈춘다. 엄지손가락을 감싸는 혓바닥이 치아의 날카로운 부분에 찔리면서 아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기는 이제 손을 빠는 대신 아픔을 표현할 언어를 배워야 한다. 그 언어를 들어줄 사람이 그 아이의 시간에 존재했다면 그랬을 것이다.

     여섯 살의 몸은 작았다.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볼륨을 가장 작게 틀어놓은 브라운관 텔레비전 앞에 바짝 다가가 쪼그려 앉으면 텔레비전의 영상은 늘 거대했고 거기서 뿜어지는 빛은 나의 얼굴을 뿌옇게 뒤덮었다. 어제도 봤고 어제의 어제도 봤던 만화영화의 비디오테이프가 열심히 돌아간다. 그것은 진동으로 알 수 있다. 수백 번을 느껴온 낯익은 진동. 나는 전혀 모르는 언어로 서로 대화하는 물고기들이 나오는 그 영화의 대사들을 모조리 다 외웠다. 그러나 그것이 제각각 무슨 뜻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눈을 떠도 감아도 끊임없이 머리통 안에서 웅웅거리며 돌아다니는 낱말들이 있고 그것이 끝없이 반복됐을 뿐이다.

      P Sherman Fortytwo Wallaby Way Sydney.

     물고기가 말한다. P Sherman Fortytwo Wallaby Way Sydney. 이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여기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여기로 가려면 어떤 경로를 통해야 하는지 확언할 수 없는 물고기의 그 외마디 말을 엄지손가락이 집어삼킨다.

     그것은 차라리 비명이었던 것도 같다.

     만화영화의 비디오테이프는 영원히 돌아갈 것만 같지만 그것은 처음으로부터 두 시간이 지나면 멈춘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안다. 그러면 나는 테이프를 되감아 그것을 처음부터 다시 재생할 것이다. 그것을 몇 번 반복해야 어머니는 돌아올까. 나는 그것만은 죽어도 알지 못한다. 멍청한 파란 물고기와 나는 그토록 닮았다.

     엄지손가락을 빠는 혓바닥에서 피냄새를 맡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물고기의 몇 번째 대사였을까.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혀의 정중앙에 이빨이 파고들 때의 감각만을 집중하며 거기에 서서히 중독된다. 애써 살펴보지 않아도 붉은 색일 것이 분명한 시큰한 비린내가 침을 삼키는 순간마다 목과 턱의 통로를 거슬러올라 콧구멍까지 선연하게 퍼진다. 해리.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부유감.

     익숙한 안정감과 새로운 만족감. 그리고 마비. 혓바닥 사이에 갇힌 것은 엄지손가락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가사상태에 빠져 뿌리치지도 벗어나지도 않는다. 어쩌면 위장된 가짜 죽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살아있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처지를 타성으로 비관하지 않기 위한 마지막 발악.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순전히 본능의 발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오로지 생존을 목적으로만 작동되는 몸의 테제에서 여섯 살의 자아가 굴종하지 않는 방법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P Sherman Fortytwo Wallaby Way Sydney. 내가 그곳에 갇혀서 보낸 시간은 고작해야 일 년 남짓이었다. 그러나 일곱 살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나의 혓바닥은 새파랗게 멍이 든 뒤였고 당연하게도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 밀실은 그렇게 깔끔한 상태로 밀봉되었다.

     나는 이후로 수백 번 보았던 그 만화영화가 수천 번 수만 번 재생될 수 있을 만큼 긴 시간 동안 그 혓바닥의 멍자국을 지우는 데 실패했다. 발견되지 않았던 그 증거는 항상 내 몸이었고 때로는 내가 속한 세상 자체였다. 트라우마란 평소에는 멀쩡히 잘만 살다가 마음이 조금 힘들어지면 최면술사를 찾아가서 억지로 끄집어내는 내면의 아이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내 평생에 걸쳐 현실에서 단 한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단 한순간도 그는 내면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그보다는 늘 내 혓바닥에서 피냄새를 불러일으키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아름답지는 않지만 아주 많은 것을 효과적으로 감출 수 있었다.

     살아있는 것들 중에 가장 생명력이 강한 것. 트라우마란 단지 그의 이름일 뿐이다.


유년기부터 이어져온 자해가 이십 대가 되어 내 치아가 아닌 칼과 같은 날붙이를 도구로 삼는 것으로까지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본 다음에야 나는 정신과 약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방을 위한 의사와의 상담에서도 스스로 써내려갔던 일지에서도 내 어머니와 아버지에 관한 감상을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편집증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의 집념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에 대해 아주 직설적으로 질문받은 적이 딱 한 번 있기는 했다. 그것은 문장의 앞부분을 읽고 떠오르는 것을 즉시 자필로 써넣어야 하는 심리검사였고 정신과를 처음 방문한 바로 그날이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거기에만큼은 그럭저럭 훌륭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나와 나의 아버지는.

     이 문장의 앞부분을 읽자마자 나는 짧은 망설임을 뒤로 하고 그 뒷부분을 만들어냈다.

     서로를 살해하고 싶어 했다.

     주어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로 바뀐 문장도 나는 마찬가지로 끝맺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들에 대한 기억마저도 이렇게 깔끔하게 끝맺을 수 있었더라면. 그러나 알고 있다. 밀봉된 과거로부터 도망치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그를 당해내지 못한 자의 몫임을.


어머니가 나에게 내가 생후 오십 일이 채 되지 않은 몸으로 수술을 받았던 때의 이야기를 습관처럼 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혓바닥 멍자국의 전이었을까 후였을까. 확실한 것은 그 이야기의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는 것이다.

     네가 만약 그때 죽었더라면 니 애비새끼랑 바로 이혼하고 다른 좋은 남자 만나서 훨씬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우습게도 그 이야기는 한동안은 꼭 이렇게 들렸다.

      P Sherman Fortytwo Wallaby Way Sydney.

     즉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낱말의 나열이었고 그것이 매우 자주 반복될 뿐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물고기와 달리 어머니는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대상이었고 그 이야기를 이미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수십 번 들었다고 느꼈을 때 즈음 나는 어머니에게 그동안 속으로만 삼켜왔던 의문을 끝내 입밖으로 꺼내고야 말았다.

     그럼 만약에 지금이라도 내가 죽으면.

     어머니는 짧은 망설임을 뒤로 하고 나에게 대답했다.

     그러면 너 장례식 치르고 나서 니 애비새끼랑 바로 이혼하고 나 혼자서 잘 살겠지.

     그때 어머니가 망설인 지점은 어디였을까. 장례식. 애비새끼. 아니면 혼자서. 나는 그때 지금이라도 다른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북돋아줘야 했을까. 다만 확실한 것은 어머니는 내가 죽어도 잘 살 거라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표정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곧장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엄마는 지금이라도 내가 죽었으면 좋겠느냐고.

      어머니는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찰나에 입안 가득 엄지손가락을 욱여넣은 듯한 맹목적인 탈진감에 녹아들면서도 어머니가 말로 내뱉지 않은 그 문장을 차마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침묵의 공기는 언제나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세상을 저주할 수 있을 만큼은 머리가 굵었던 열 살 무렵의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자식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목소리들이 들린다. 싸우는 목소리. 터질 듯이 씩씩거리며 서로를 헐뜯는 목소리. 나는 듣기 싫고 두려워서 엄지손가락을 입안으로 넣는다. 그리고 짓뭉그러진 혓바닥에서 한시라도 빨리 피가 비어져나오길 기다린다.

     그때 호흡기를 떼어버렸어야 했어.

     낡은 불빛의 진동처럼 낱말과 낱말이 울린다.

     출생확인증도 수기로 적던 시절이었는데. 죽이려면 그때 죽였어야 했는데. 한 달 안에만 죽였더라면 호적에 올릴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러게 누가 병신으로 낳으래.

     병신새끼. 병신새끼. 그때 죽었어야 마땅했을 새끼.

     수술이 그렇게 될 줄 몰랐어. 의사도 어려울 거라고 했는데. 씨발새끼.

     지금이라도 죽일까. 죽일 수 있을까. 지금은 시시티비도 많고. 이미 이렇게 컸는데 뭘로 죽여. 씨발 그때 호흡기를 떼어버렸어야 했는데.

     피냄새는 과연 아름답지는 않다. 하지만 의식이 침잠하기에 알맞은 자장가다.

     온몸이 끈적끈적한 기름덩어리로 둘러싸인 것 같다. 숨 쉬기가 갑갑해. 누가 좀 살려줘.

     아. 차라리 죽기를 바랐었지 참. 하하. 누구라도 살려줄 일은 없겠네.

     알고 있다. 사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를 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병신을 원하지 않았을 뿐이다. 돈만 잡아먹는 병신. 탄탄대로의 인생에 가장 큰 결점이 될 저주받은 몸뚱이. 저것이 살아있는 한 좋은 일이란 하나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다 저것 때문이야. 놈도 아닌 년 주제에 병신으로까지 태어났네. 재수 없는 새끼.

     자식에게 요절할 이름을 골라 붙여주는 심정을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남들 앞에서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못볼것을 보는 눈길로 고개를 돌리는 모습에 사랑의 행방에 대한 진실을 추궁할 수 없다. 음식 처먹는 것도 병신 같아서 꼴 보기 싫다는 힐난에 혓바닥에 멍이 들어서 씹고 삼키는 게 더 힘들다고는 도저히 고백할 수 없다. 벽에 걸린 시계의 분침이 한 바퀴를 돌고 또 한 바퀴를 도는 걸 보며 혼자서 밥그릇을 비우는 동안 어머니의 얼굴도 저 느리게 움직이는 시계만큼만 평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그 평온을 만나보지 못했다. 단지 내가 죽지 못해서. 그 옛날 피가 돌기를 멈췄어야 마땅했을 몸이 아직도 미련하게 살아있어서. 내 실체가 여기에 있어서. 내가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어서.

     그래서 여기는 어디지. 그래. 피냄새가 난다. 부디 여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도록 해줘. 부디 그곳에서만큼은.


어린 시절 혓바닥에서 끊어내지 못한 힘줄을 마침내 왼손의 손목에서 끊은 것은 정신과 약물을 복용한 지 일 년 정도가 지난 시점의 일이다. 날붙이에 의해 세 개의 힘줄이 연결성을 잃었고 나는 그로 인해 정형외과에서 한 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다. 원활한 수술의 진행을 위해 수면에 이르는 약물을 주입당했으나 단 한순간도 잠에 들지 못했다. 그것은 그 수술실에서조차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었다.

     밀실은 다시금 봉합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증거 이전에 증인이 있었다.

     결국 이것은 증인들을 모으고 증언들을 취합하기 위한 여정에 불과하다. 그때 그 아이가 그 덜 자란 몸으로는 미처 감당하지 못했던 일그러진 평판의 흔들림에 무게중심을 부여하기 위한 분탕질일 뿐이다.

     이 비루한 연원을 마침내 아무도 되짚어갈 필요가 없게 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것이 여정의 목표라고 한다면 당신은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영원성조차 진저리가 나 저만치 물러날 정도의 이 고통을 가지고 말이다.

     묻고 싶다. 당신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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