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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율 Oct 24. 2024

마주보려 했기에 닿지 못하는 것들

[일전의 편지] 이야기 여덟

때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그걸 부르는 이름이 죽음인지도 몰라.


그렇다면 발버둥도 없이 가만히 가라앉는다면. 불쌍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적어지더라도 적어도 나 스스로를 가없게 여길 일은 없어지는 거 아닐까.

     어쩌면 방울토마토와 올리브나무도 스스로 줄기를 꺾고 말라갔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생명이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믿는 거야말로 신을 창조한 사람들의 오만이니까.

     그러니까 그 믿음을 부수는 데 삶을 바치는 건 반드시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겠지. 믿음만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 년 전 여름으로부터.


나는 나의 죽음을 너무 오래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깊게 생각했다. 당신 앞에서도 입밖으로 꺼낼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래서 죽음이 다가오는 거야.

     몸의. 기억하는 몸의. 한때는 온기를 품었던 몸의. 그러나 잔인하게 살해당한 기억을 새겨둔 몸의.

     더는 처참해지고 싶지 않은 한 사람의 몸의 그럼에도 참혹한 죽음이.


이 년 전 여름으로부터.


믿어줘.

     나도 이야기의 끝을 이렇게 빨리 매듭짓고 싶어서 달려왔던 건 아니라는 걸.


하지만 말이야. 어쩌면 모든 이야기는 이미 끝이 정해진 활주로가 아닐까. 우리는 그저 거기에 맞춰서 비행을 시도할 뿐이고.

     이 너무나도 평범하고 당연하고 새로울 거라곤 없는 생각에 나는 요즘 자주 심장이 아리고 마음이 아파온다. 그리고 숨은 무거워지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빠져.

     어느 순간 탁. 끊어지는 그 지점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그리고 나는 잠들기를 바라거나 빨리 약을 먹을 시간이 되기를 바라지.

     이런 나날들이 늘어가. 며칠 뒤면 내가 약을 먹은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이럴수록 내 꿈과 내가 그려온 미래는 다 아무 의미도 없어지는 것 같아. 무서워. 하지만 무섭지 않아.

     내 그림자를 잃어가. 윤곽이 흐려져.


빛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어.

     도와줘.


이 년 전 여름으로부터.


추신.


속이 울렁거린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 마음의 바깥면이 울렁거린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나에게는 없는 마음의 다른 차원의 경계선이 울렁거린다.

     그리고 이 공황의 공상을 흐트러트리는 모기 소리.

     시시각각이 바쁘게 몰아치는 한낮의 노동이 지나고 모든 게 그럴싸한 어둠이 내리면 늘 그러한 실재와 무감한 무의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삶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불안한 갈증은 담배연기로 흐린다. 혼탁한 잠재성. 가라앉는 시발점. 억누르는 것은 티끌 하나 섞이지 않은 순수한 나 자신이다.

     이것을 망각이라고 부른다면 이보다 더 손쉬운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제자리가 무용하다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 그다지 슬픈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 위안.

     헛소리. 하지만 조금은 따뜻해지는 것도 같다. 내일의 비를 머금은 하늘만큼 흐린 연기 한 모금.

     내일이라는 것이 없다면 지금보다는 더 따뜻했을까. 마주해도 들여다보일 것이 없는 시간 속에 있었더라면.

     선의로 빚어진 마음만큼 의심을 사기 쉬운 것은 없다. 도처에 야트막히 매설된 발화. 불구덩이에서 춤을 추며 진흙은 움켜쥐어지지 않고 깨어진다. 산산조각이 나버린 그것은 어제의 발꿈치를 닮았다. 이윽고 맹목의 눈꺼풀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은 역시 티끌 하나 섞이지 않은 순수한 분노.

     뜨여라. 내가 너를 비출 것이다.

     차가운 송곳의 혀로. 가시밭길은 모조리 잡아먹을 것이다.


사기꾼도 살인자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뒤를 조심하지 않아도 칼에 등을 찔리지 않을 거라는 안심을 얻고 싶다. 날을 세우는 모든 서슬퍼런 것이 자연히 녹슬다 스러지는 순리의 언어를 믿고 싶다. 타의를 자의와 같이. 그리고 이타를 이기와 같이 스스럼없이 받들고 싶다.

     그러나 이런 안일한 소망들이 언젠가 나를 죽일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 단지 한 뼘만을 간신히 덮을 더운 눈물로 오늘의 뉘우침을 대신한다. 참선. 그러나 선은 없다. 이미 마음의 어디에서조차 갈피를 잡지도 가쟁이에 붙들리지도 못한 나의 선의. 그는 경계선을 밟고서 아지랑이가 된 지 오래다.

     너무나도 아무것도 없는. 허무조차 없는 공허가 나를 둘러싼 공기의 전부인 것은 그래서다. 언제부터 이것이 나의 위안이 되어버렸을까.

     이것은 어쩌면 조금은 슬픈 일이기도 하겠다. 꼭 그러하게도 귀를 뭉개는. 닿지 않는.

     혼잣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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