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귀의 재미

세상이 나한테만 몰래 대화를 흘린다

by 박붕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난 귀가 밝아도 층간소음이 힘들지 않다.

귀가 트인 탓에 탑층 사는 윗집 아들내미의 공룡 발망치도 잘 듣고, 아랫집 딸내미가 씻는 중에 샤우팅 하는 엄마 소리도 잘 듣는다.

그게 싫지 않고 웃기다.

오늘은 왜 또 싸우는가 싶어 되려 귀를 기울인다.


밥집에서도 옆에선 뭔 음식을 시켜서 후기가 아쉬운지도 들린다. 나는 저거 안 시켜야지, 메뉴를 거를 수 있어서 좋다.

시끄러운 술집을 가도 옆테이블의 흥미진진한 사연이 들려오는데, 어떤 날은 불륜 이야기를 듣느라 우리 술자리에 집중을 못해서 미안하긴 했다.

이것들은 내가 작정해서 들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청력이 좋아서 무의식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알고 싶지 않은 얘기를 듣는 기분이 어떤지 아는가? 피곤할 거라 예상하겠지만 전혀, 개인적인 즐거움이 더 크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에게는 하나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반면교사 삼을 수 있는 이야기들도 많기 때문에 퍽 우습고 재미난다.

나는 들리니까 남도 들었겠지 하고 사는데 아니라는 걸 알게 될때만, 좀 뻘쭘하다.

마치 내 머릿속이 홍상수가 된 기분이랄까?


불편한 점은 딱 하나다. 귀가 밝아서 내 목소리가 작다는 점. 내 말이 안 들린다고 하니까 두 번 세 번 말해야 하는 점. 빵 사러 갔는데 점원이 크게 좀 말해주시겠어요?! 하는 바람에 민망해지는 점.


이쯤 되면 귀가 밝은 게 아니라, 세상이 나한테만 몰래 스포를 하는 기분이다.

문제는, 내 대사는 자막이 없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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