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휴지통은 어디에 있을까?
최근 피부과를 가기로 마음먹은 날이었다.
왠지 피부과는 돈이 많이 들고 아파서 가기 싫었지만 몇 달에 걸쳐 결심하고 가기로 했다.
관리를 하지 않아 점이며 잡티들이 남편과 나의 얼굴을 어지럽히고 있었고 더는 보기가 싫었다.
나는 사실 치과를 가는 것만큼 피부과를 싫어한다.
그래서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긴장감이 올라왔다. 그래서였을까. 조금씩 일이 꼬여가는 듯했다.
가격이 있으니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만 제거하자는 상담실장의 말에
원하는 만큼 남편의 잡티를 지우지 못했다.
그리고 한 번에 점과 잡티를 같이 없앨 수 있을 줄 알았던 나는 시술이 다르다는 말에 고민해야 했다.
결국은 할 때 하자는 마음으로 점을 빼는 시술과 잡티를 제거하는 시술을 받기로 했다.
안경을 벗고 얼굴 전체에 마취를 하는 동안 간호사가 왔다. 조금 있다가 점 부위를 표시한다고 한다.
그때 나는 점 하나를 빼먹은 것 같아 추가로 더 뺄 곳이 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였다. 일이 제대로 꼬여갔다.
간호사가 점을 표시하기 전에 의사가 왔다.
잡티 시술을 먼저 할 생각에 점을 늦게 표시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의사가 빨리 온 것인지 모르겠다.
나에게 급하게 거울을 쥐여주며 “환자분 뺄 곳이 어디죠?”라고 묻는 상황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긴장으로 두 손은 꼭 잡고 있고 안경은 벗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나에게 말이다.
나는 그럴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짜증을 내지 않았다.
다만 빼기로 한 점의 부위 하나가 헷갈리기 시작했고 어렵게 개수를 맞춰야 했다.
그렇게 시술이 끝나고 정신없이 대기실로 나온 나는 거울을 보고 또 한 번 당황해야 했다.
힘들게 맞춘 점의 개수가 얼굴에 붙은 밴드의 개수와 다른 것이다. 뭐지?
“저 점 뺀 부위 다시 확인해 주시겠어요?”
내가 물으니 상담실장이 나와서 개수를 셌다. 그리고 당황하며 여러 번 체크하기 시작했다.
답변은 이러했다. 점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뺄 수 있는데 잡티를 제거하는 기기로 하나를 뺀 거 같다.
그래도 점은 추가로 뺐으니 요금은 내셔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솔직히 나는 그 대답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이해 못 하는 내가 정상일까 의문이 들었다.
순간 나는 의도치 않게 진상과 호구의 사이에 놓인 기분이 들었다. 다시 물어보기로 했다.
“제가 이해가 잘 안 가서 그러는데 점은 점 빼는 시술로 돈을 지불했고 잡티는 잡티시술로 결제를 했는데요.
점을 잡티시술로 뺐으면 그건 점 빼는 비용에 포함이 안 되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점 빼는 비용에 포함되면 이중으로 지불하는 거잖아요?”
그러자 실장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점은 점 뺀 비용에 포함되는 게 맞다고 한다.
어려웠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피곤하니 그냥 넘어갈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왠지 호구가 되기는 싫었다.
차라리 예의 바른 진상이 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저는 사실 아직도 이해가 안 가요.”
결국 실장은 손님처럼 생각할 수 있으니 그럼 이건 추가 결제를 안 하겠다고 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마치 진상을 부려 돈을 다 지불하지 않고 나온 손님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생각한 말은 다 하고 나왔는데 시원하지 않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실장과 나 둘 다 당황은 했지만 웃으며 언성을 높이지 않았고
피부시술은 생각보다 덜 아팠다는 것일까.
남편에게 물으니 자연스레 잘했다는 답변이 들려왔다.
혼자 말 못 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찝찝함보다 낫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계속 마음에 걸려 물었다.
“나 정말 진상 아니었어?”
“그만 생각해. 당신은 당신의 생각을 말했을 뿐이야. 그것도 조용히.
그러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잊어버려. 당연히 이상한 건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지.”
남편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지만 쉽게 나의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잘못한 것도 잘못된 일도 없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관계에 있어 누군가와 껄끄러워지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러다 보니 남의 이야기는 들어줘도 나의 의견은 잘 내세우지 않는 편이었다.
거절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이 제일 우선은 아닌 애매한 사람말이다.
남에게 맞추어주면서 뒤로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가 상대방에게 불편한 사실을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했을까.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니 오히려 나는 나 자신에게 칭찬을 해야 했다.
그래 이상한 건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나는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에 인색했을 뿐이다. 그래서 어색했을 뿐이다.
처음은 무엇이든지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마음의 소심함을 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우리 집 다용도실에는 휴지통과 분리수거통이 놓여있다.
굳이 휴지통이 어디 있는지 매번 찾지 않아도 된다. 늘 있는 자리에 있고 그곳을 찾아 바로 버리면 된다.
또 무엇을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 고민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습관처럼 쓰레기가 나오는 즉시 바로 버리고 분리수거한다.
애매한 것들은 인터넷에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버리기란 참 쉽다.
그렇다면 마음의 쓰레기는 어디에 버리지? 내 마음의 휴지통은 어디에 있을까?
일상에서는 늘 사고 버리는 것들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내 안에도 생겨나는 마음과 버려야 하는 마음들이 쌓여간다.
버리지 않으면 먼지 쌓인 미련이 될 테고 그 미련들이 끝내는 나를 괴롭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새로운 마음을 채울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나는 그 수많은 마음의 찌꺼기들을 어디에 버리고 있는 걸까. 버리고 있긴 한 걸까?
오늘도 그 많은 미련들이 나를 괴롭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마음의 휴지통을 찾아 분리수거를 시작하기로 한 이유는 간단하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불필요한 마음 때문이고 그런 마음에 자유를 주기 위해서였다.
마음의 분리수거가 잘 이루어지면 나는 정말 나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래서 우선 말과 글로 내 마음을 표현해 보기로 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솔직히 나의 생각을 전달하고 마음을 말해보는 일에 도전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대나무숲처럼 누구에게나 속시원히 마음을 내보이는 공간이 필요하듯
나의 대나무숲은 글로 채워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