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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Jun 12. 2024

지금을 누리자

카르페 디엠

6년 만에 부천에 가는 길이었다.

벚꽃이 한창 피어있는 4월 초였는데 이곳은 5월의 연둣빛 푸릇함이 벌써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사람과 건물이 많아서인지 다른 곳보다 온도가 조금 높아서

두 계절이 공존하는 듯했다.

이상했다. 청춘은 청춘의 시절을 즐겨야 하듯 꽃도 꽃이 피는 시간을 누려야 하는 거 아닐까.

사람이든 계절이든 자기가 누려야 할 그때만의 시절을 온전히 만끽하지 못한다는 건 슬프다.

이르게 철이 드는 것과 나이 들어 철이 들지 않는 것도 슬픈 일이다.

누구나 그 시절에 자신에게 맞는 모습이 있고 그때를 놓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인지 날짜감각이 무뎌지고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잘 모르겠다.

시간이 조금씩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감기에 걸렸다. 요즘 감기가 얼마나 독한지 우리 부부는 거의 주말마다 집 밖을 나가지 못하고

한 달 동안 휴식을 취해야 했다.

먹는 약도 많아 비몽사몽 지내면서 입맛도 잃어버렸다.

한참 날씨가 좋아 놀러 가기 좋은 5월에 감기로 강제 휴식이라니.

억울했다. 봄은 짧았고 날씨는 너무 좋았다. 밖에 나가서 좋은 계절을 느끼고 싶었다.

따라주지 않는 몸이 야속할 뿐이다.


2024년의 봄을 우리는 이렇게 아쉽게 흘려보내고 있는 중이다. 

날씨변화로 맘껏 피우지 못한 꽃들 같았다. 

빨라지는 시간도 아까운데 그 시간마저 온전히 즐기지 못하다니.

나의 현재를 빼앗긴 기분도 든다. 그리고 이 봄이 더욱 간절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우리 이번주에는 나갈 수 있을까?”

“얼른 나아서 맛있는 거 먹자.”

“이 놈의 감기 언제 낫는 거야. 이러다 봄이 먼저 가겠어.”


이 봄을 누리지 못한 건 우리 부부만이 아닌듯하다.

베란다에는 몇 년 동안 열심히 키운 화분들이 있는데

그중 라일락은 봄에, 오렌지 재스민은 여름에 꽃을 피운다.

4~5월에 라일락 향이 집안에 퍼지면 봄을 누릴 수 있다.

날이 더워 창문을 열고 자는 날이 오면 여름의 밤공기처럼 오렌지 재스민향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나는 화분을 통해 계절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꽃을 피우는 날짜가 빨라지더니 자신들의 계절을 잊어버린듯하다.

부천에서 본 나무들처럼 말이다.

봄이 오나 싶을 때 라일락은 순식간에 꽃을 피우다 졌으며 오렌지 재스민은 이른 시기에 꽃을 피웠다.

계절을 잃어버린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우리 부부가 감기에 걸려 봄을 허무하게 보내고 있는 동안

라일락도 자신의 계절을 제대로 누리지고 못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오락가락한 날씨로 언제 꽃을 피울까 눈치를 보고 있는 오렌지 재스민과 함께.

올여름은 제대로 누릴 수 있을까?


어른들이 늘 하던 말이 떠오른다.

‘지금이 가장 좋을 때이다.’ ‘젊을 때는 많이 꾸미지 않아도 된다.’ ‘학교 다닐 때가 좋다.’

그 당시에는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학교 가는 것은 지겨웠으며 더 예쁘게 꾸미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의 그 시간은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시절이 영원할 것 같은 젊은이의 착각이었다.

그런 착각 속에 청춘을 보낸 나는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내가 온전히 그 시절을 누리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더 많은 것을 해보며 열심히 그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요즘 미디어를 통해 본 청춘들의 삶은 부럽게 느껴진다. 왠지 자유로워 보인달까.

물론 그 이면에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젊음을 잘 알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똑똑하게 마주하는 이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해볼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습게도 나는 아직 젊다. 나도 아직 늦지 않았다. 그냥 때를 놓친 자의 부러움이다.


나중은 없다. 순식간에 사라진 봄처럼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나의 시간들이다.

나에게 주어진 지금을 열심히 즐겨야겠다. 열심히 나의 시절을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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