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디엠
숨 막히던 더위가 흩어져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낙엽을 태우는 듯한 가을의 향기가 느껴진다. 깨끗한 하늘을 바탕으로 거리에 알록달록한 색깔이 물든다.
좋은 날씨를 즐기는 듯한 가벼운 걸음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함께한다. 따스한 온기가 조금씩 그리워진다.
가을이 왔다.
사람마다 가을이 왔음을 느끼는 모습은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선선해진 공기에서 느끼고 또 다른 사람은 붉게 물드는 나뭇잎을 보며 느낀다. 내 남편은 푸르고 높은 하늘을 보며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고 한다.
나의 가을은 어떻게 다가올까.
가을이 되면 높게 푸르른 하늘과 산뜻한 바람. 뭉게뭉게 흘러가는 구름.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색을 입은 거리와 황금빛 들판.
가을의 향기를 듬뿍 담은 바람 따라 하늘하늘 춤을 추는 코스모스. 그 모든 것이 나에게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는 소식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가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가을에 한 조각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사는 이곳에만 없는 것인지 아니면 어디든 보기 힘들어진 것인지 모르겠다.
코스모스를 최근에 본 적이 있을까?
가을의 다른 모습들은 짧게나마 느낄 수가 있다. 바로 요즘이 그렇다.
집안이나 건물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좋은 날씨다. 바깥에 머물러도 덥지 않고 춥지도 않다. 햇살은 따사로우며 바람은 시원하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내도 좋다. 노랗고 붉게 물든 나뭇잎으로 마음을 물들여도 좋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새를 보고 외로워도 좋다.
왠지 쓸쓸해진 공기를 머금어도 좋다. 모든 것이 가을이다. 이 가을을 마음껏 즐겨도 좋은 시간이다. 다행이다.
여름과 겨울에 치여 빠르게 사라지는 가을이지만 계절이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그 모습들을 즐기게 된다.
그래도 조금은 아쉽다. 욕심 많은 나의 투정일까. 사라져 가는 가을의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코스모스가 없다.
예전에는 코스모스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많았다. 가을에 찍은 사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기록 같았다.
가을이 되면 길가에 자연스레 피어나는 코스모스는 당연했다. 하얀색, 분홍색, 자주색에 코스모스는 어여뻤다. 색깔별로 하나씩 꺾어 손에 들고 다니기도 했다.
제일 좋아하는 꽃은 아니었지만, 가을의 선물 같은 코스모스를 기다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잘 보이지 않았다.
가을이 오면 낙엽을 밟고 가을의 향기를 느끼며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같았지만 한편에 피어있던 코스모스가 사라져 갔다.
사계절 관리하기 쉬운 다른 꽃들과 나무들이 점점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코스모스가 보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에 무언가 허전했지만, 가을이 지나면 잊어버렸고 또다시 가을이 되면 떠올랐다. 아! 코스모스. 이번 가을에도 제대로 보지 못했구나.
그렇게 코스모스는 가을에 내가 받지 못한 선물이 되어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을 더 많이 찍어둘걸 그랬다. 더 많이 바라보고 아껴줄 걸 그랬나 보다.
나는 나의 가을이 그립다.
나는 온전한 나의 가을을 맞이하지 못하는 듯하다. 당신은 온전한 당신의 가을을 맞이하고 있을까. 그리워하고 있을까. 당신의 가을은 어떤가요.
언제나 가을은 돌아오지만, 이 가을이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지 나는 늘 걱정한다. 나만의 가을이 조금씩 사라져 버릴 것 같아 아깝고 그립다.
그러니 잠깐 스쳐 가는 이 가을이 아쉬워 한숨만 짓지 말아야겠다. 더욱 반갑게 맞이하고 싶다.
찬란해 보이는 오늘을 누리며 나만의 가을을 마음에 가득 담고 싶다. 남기고 싶다.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이제는 축제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코스모스를 나는 또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