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거림
머무른 해가 지나고 새로운 날을 맞이할 때마다 습관처럼 하는 일이 있었다. 올해는 꼭 해야지 하는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다짐하는 일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사흘을 넘기기 힘들다. 사흘을 넘긴다 해도 한 달, 두 달, 석 달을 넘어가지 못한다. 작심삼일이다.
그렇게 새해는 새로운 목표와 계획으로 시작해서 작심삼일로 맞이한다.
20대까지만 해도 새로운 목표와 계획이 많았다.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꿈도 가득했고,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도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매년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때는 새해 목표와 계획이 마치 방학을 맞이하며 그리던 생활계획표와 비슷하게 짜일 때도 있었다.
해내고 말겠다는 나의 굳은 다짐을 표현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좋은 목표이든 계획이 꼼꼼하든 상관없었다.
새로운 다짐과 함께한 새해를 지나 여름이 오고 가을, 겨울을 맞이할 때쯤 나는 올해 무엇을 했을까 곱씹어 보며 후회한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계획을 하나도 실천하지 못했다고 말이다. 또 그렇게 머무른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목표와 계획을 세운다. 이번에는 꼭 해내야지.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아마 그 모든 목표와 계획을 이루었다면 지금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마음을 먹는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의지가 약했나. 아니면 목표가 너무 많았을까.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 보다.
그래. 목표를 줄여보자. 꼭 하고 싶은 것들만 계획해 보자. 그렇게 나의 새해맞이 목표와 계획은 소박해져 갔다.
점점 줄어 몇 줄만 남은 새해 목표에 언제나 빠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운동하기. 언어 공부하기. 새로운 거 하나 배우기.
이 세 가지는 해가 여러 번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나의 목표들이다. 물론 언제나 빠지지 않았다는 건 결국 내가 해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해낼 법도 한데 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참 의문이다. 어렵지 않은 목표인 것 같은데 나는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1월이 되면 나는 영어 단어와 문장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단어, 한 문장이었다. 나중에는 공부한 양이 쌓일 테니 조금씩이라도 해보면 늘어날 거라는 생각이었다.
좋은 생각이었다. 좋은 계획이었다. 따듯한 봄이 되어 이곳저곳 놀러 나가는 계획에 미뤄지고 잊혀서 문제인 것만 빼면 말이다.
겨울은 아직 추우니 날씨가 좋아지면 산책을 시작으로 운동을 해야지. 집에서 간단한 것부터 한번 해볼까. 저 운동기구만 있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헬스장을 반년이나 일 년 등록하자. 그러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하겠지. 그 마음은 좋았다.
오늘은 피곤한데. 날씨가 너무 안 좋은데. 이 운동은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이런 핑계들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새로운 것들을 배우면 취미생활도 생기고 내 인생이 다양해질 거야. 하지만 배우기에 좀 비싼데. 급한 거 아니니까 천천히 하자. 훌륭한 인생의 방향이었다.
현실의 우선순위에 늘 밀려났지만. 결국은 내가 부지런하지 못한 탓이다. 마음으로만 다짐하고 몸은 습관처럼 움직이지 않으니 지켜질 리 없었다.
그럼 부지런하기를 새해 목표로 세워야 하나. 내 생활 방식이 그리 쉽게 바뀔까.
그 후로 나는 새해 목표나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다. 예전보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이 없어서 혹은 목표에 대한 기대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생각만으로는 목표와 계획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세웠던 목표와 계획을 실패했다는 마음이 시작마저 머뭇거리게 했다.
그러던 재작년의 여름날이었다. 나는 전부터 생각만 하고 있던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그날따라 아무런 이유 없이 문득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고 학원을 찾아가자마자 곧바로 등록했다. 거의 일 년 가까이 필라테스를 배웠다.
시간이 없고, 귀찮고, 몸이 힘들고, 비용에 대한 이유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정말 갑자기였다. 그렇게 운동하기를 목표로 세웠던 여러 새해에 늘 잊혔던 계획을 이루었다.
충동적인 마음과 행동이 아이러니하게도 내 목표를 완성해 주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돈키호테 같은 행동이었다. 나에게는 생각 없는 용기였다. 그때 알았다.
내가 목표를 이루고 계획을 실천하는데 가장 큰 방해는 생각이 많다는 거였구나. 앞으로의 생각과 기대로 시작한 목표. 그 계획을 실천해 나가는데 떠오르는 많은 생각.
그 모든 것들이 나의 목표와 계획을 생각만으로 머물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실패한 나의 다짐들은 또 다른 시작을 많은 생각들로 어렵게 하고 있었다.
하나의 목표를 계획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단 행동해야 한다. 나를 방해하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무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시작된 목표는 마음을 비우고 계속해서 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내 것이 되어갈 것이다. 실패하면 어떤가. 또다시 도전하면 되지. 아니면 다른 목표를 찾으면 되겠지.
시작되지 않은 목표와 계획은 내 생각으로만 그치고 말뿐이니 뭐라도 해보는 게 좋다. 나는 생각에 머무는 다짐보다 한 번이라도 시도해 본 목표와 계획이 더 좋다.
올해도 나는 목표 세우기 대신 일단 뭐라도 해보기로 한다. 단 음료 한 번 덜 먹기 같은 아주 작은 일도 좋으니 일단 한번은 시작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나도 그 실패가 두려워 안 하는 것보다는 좋을 것이다. 무엇이라도 해봤다는 마음이 더 뿌듯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제가, 어느 하나는 내 것이 생기겠지.
무엇이라도 좋으니 해보고, 뭐라도 좋으니 경험해 보기. 그 무엇이 되었던 마음에 들어오면 생각을 비우고 바로 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