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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끄적거림

by 달무지개

올해 시작된 감기는 유난이었다.

작년에 잘 걸리지 않았던 감기를 나는 한꺼번에 몰아치듯 앓고 있었다. 유난히 이번 해에 시작부터 힘든 일들이 많았지만 잘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지치고, 마음이 힘드니 몸도 버티질 못하는 듯하다. 감기는 내 피곤함의 무게일까. 아니면 이 이상해진 날씨를 내가 견디지 못하는 걸까.

더 심해지기 전에, 아파지자마자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약도 먹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조금만 날씨가 이상하면 다시 감기에 걸렸다.

조금만 피곤해도 바로 감기에 걸렸다. 옆에 사람이 감기에 걸리면 말할 것도 없었다. 또 병원에 가고 약을 먹었다. 약의 개수는 줄었다가 늘어나기를 반복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감기라는 돌림노래를 계속해서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이 지긋지긋한 돌림노래를, 이 감기를 끝낼 수 있을까. 보약이라도 먹어야 하나.

왠지 약해진 내 모습에 서글퍼진다. 날이 갈수록 독해지는 감기가 무서워진다. 내가 먹게 되는 약의 개수가 많아지고 점점 몸에 부담이 되는 것 같아 짜증이 난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누군가 감기에 걸렸을 때 “잘 먹고 푹 쉬면 금방 나아.”라고 말하곤 했다. “몸이 약해서 그래. 몸 관리 잘해.” 하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잘 먹고 잘 쉬면 감기가 빨리 낫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제 그게 다는 아니게 되었다. 몸 관리를 잘하라고 말하던 사람도 어느새 보면 감기에 걸려있었다.

잘 먹고 잘 쉬어도 병원에 가지 않으면 감기가 언제 떨어질지 모르게 오래갔다. 예전의 감기가 아니다. 나도 그때의 내가 아니듯이.

세상은 늘 변하고 나도 변한다. 변해가는 주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알게 모르게 늘 나는 분주하다. 변해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도 눈치를 채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한다.

세상처럼 감기도 변했다. 내 몸도 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보면 내가 어릴 적에 앓던 감기는 순한 맛이었다. 어렸던 나의 건강함도 한몫했을 것이고, 과거를 조금 아름답게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감기는 추운 겨울날 찾아오는 불청객. 가볍게 약을 먹고 집에서 며칠 푹 쉬면 낫는, 나름 가벼울 수 있는 이름.

감기에 걸렸다고 말하면 얼른 나으라고 소소한 인사처럼 말해줄 수 있는 걱정거리였다. 그랬던 감기가 단계를 야금야금 올리기 시작했다.

마치 얼마만큼의 매운맛을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전 단계 시험이랄까.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감기를 달고 살기 시작했다.

감기로 병원에 가는 횟수는 많아졌고 약은 늘어났다. 계절, 나이 상관없었다. 내 몸도 그걸 눈치라도 챈 듯 어느새 점점 감기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은 나의 게으름을 탓해 보았다. 나이 탓도 해보았다. 둘 다 맞는 사실이다.

사람이 감기로 죽을 수 있다는 말처럼 감기가 나날이 매서워지고 있는 사실 또한 맞다. 그래서 내 몸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감기가 매워지는 속도만큼 나도 빨리 이겨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건 쉽지 않은 것 같다. 요즘 감기에 걸린 나는 매운맛을 체감하며 적응하기 위해 잘 버틸 뿐이다.

얼른 내 몸이 괜찮아지기를 바랄 수밖에. 이놈의 감기. 잘 버텨봐야지. 누가 잘 버티나 한번 해보자.

다른 사람들은 감기에 걸리면 어떨까. 감기를 버티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감기 하면 주로 목감기인 나는 제일 먼저 뜨거워지는 머리와 얼굴, 부어오르는 목에 바로 병원으로 달려간다. 여기서 오래 지체하면 더 많이 괴롭다는 것을 아는 일종의 본능이다. 다행히 초기에 치료하면 크게 앓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소 일주일은 힘들어야 한다. 심하면 2주 동안 아파야 한다.

쳐다도 보고 싶지 않은 병원문을 쉴 새 없이 두드리는 날들이 된다. 이번이 그랬다. 남편도 이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완전히 나을 때까지 집 밖은 나갈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또다시 생존 본능으로 먹고 싶은 것을 찾아 헤맨다. 입맛을 잃은 나는 자극적이거나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생각난다. 단 음식은 왜 이리 먹고 싶을까.

밥보다 달콤한 디저트가 일 순위가 되니 신기하다.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든, 나아지기 위해 밥을 먹든 열심히 먹어본다. 디저트도 잊지 않는다.

다음으로 약을 먹는다. 자연스레 졸음이 찾아온다. 누워서 핸드폰이나 텔레비전을 제대로 볼 순간도 없이 잠든다. 그러면 하루가 끝이다. 강제 휴식이다.

어쨌든 밥과 약을 잘 먹고, 푹 자고, 푹 쉬면 감기가 낫는 것을 보니 감기는 피로해진 내 몸의 반항일까. 나에게 잘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실천하지 못한 값이다.

그런데 내가 내 몸을 소홀히 한 이유도 있지만 감기는 왜 점점 독해지는 거지? 왠지 조금 억울하다.

나는 지금은 감기가 나아 정말 기쁘다. 역시 건강이 최고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엔 감기가 나의 불안으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감기가 언제나 나를 호시탐탐 노리는 저격수처럼 느껴진다. 감기의 눈에 띄지 말아야겠다.

아플 수 있는 여지를 주지 말아야겠다. 건강할 때 잘하자.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자. 감기는 예전의 그놈이 아니다. 올해 시작부터 감기를 숱하게 겪어본 자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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