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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제란 Nov 24. 2023

의외의 곳에서 위로받은 하루

올해 초부터 꾸준히 다니던 정신과를 이사하면서 다니기 불편하게 되어 새로운 보금자리 근처의 병원을 알아보고 있다. 단순히 기존에 먹던 약을 처방해 먹을 생각으로 찾았는데, 어쩌다 보니 한의원을 찾아가게 되었다.

한의원이 위치한 건물은 평소 방문하던 거래처와 가까워, 쉽게 길을 찾아가다 무심코 거래처 건물로 들어섰다. 


"0층인데 여기에 혹시 00 음식점 있는 곳 맞나요?"


"00 음식점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00 은행 있는 건물 아닌가요?"


"(한숨) 아니에요~ ㅁㅁ음식점 있는 건물이에요~"


상대방의 한숨소리에 괜히 뻘쭘해졌지만, 건물 잘 찾아갈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던 내가 우스워지면서 다시 건물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이번에는 정답이었다.


한의원의 분위기는 편안했다. 건물 복도에 베었던 음식 냄새도 한의원 안까지는 들어오지 못했고, 은은한 아로마 향과 조용하고 느린 음악이 들렸다.


정신과 전문 한의원은 처음 보지만, 참 사람들이 편안하게 이용하겠다 싶었다.


안내에 따라 검사지를 작성했다. 사실 스스로의 증상 상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터라, 몇 항목이 높게 나온 것은 놀랍지 않았다.


설문지 같은 검사 말고도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자율신경계 검사, 혈압검사, 뇌파 검사 등.


자율신경계 검사는 집게 같은 기게 안에 중지 손가락 만을 넣어 측정했다.

동사무소에서 지문인증은 늘 검지로 해서일까, 당연스레 검지를 준비했는데

검사를 도와주시는 분이 약간은 우악스레 손의 자세를 잡아 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일부러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어 (뭐가 됐든) 수치를 높게 만들려는 건가 싶었다.


집게가 제대로 내 손을 짚지 않아, 다시 집으려고 살짝 손을 드니,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계셔야 해요."


괜히 반감이 들어 못 들은 척 집게를 고쳐 집고 자세를 취했다.


그 과정에서 움직임이 발생하다 보니, 당연히 측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앞에 게이지 보이시죠? 이게 빨간색이면 측정이 안되세요. 움직이지 마시고 가만히 계셔야 해요."


어려운 말도 아니고, 불편함을 느낄 말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마음이 불편했는지.

응, 나도 알아.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거 나도 아는데 집게가 제대로 안 집혔다고요.

도무지 말이 좋게 나올 것 같지 않아 차라리 입을 다물었다.


"체온 좀 잴게요"


말을 들었을 땐 이미 귀에 체온계가 들어온 상태였다.

최근 귀에 피어싱을 여러 개 뚫은지라 예민한 부위였던 만큼 놀랬다.


'내 귀에 들어오기 전에 닦긴 했으려나'


확인하지 못한 사실에 마음속의 불안함은 계속해서 커져갔다.

진짜 일부러 사람 화나게 하는 건가...? 싶을 때 자율신경계 검사가 끝났다.


이어진 뇌파 검사는 이마, 귀 뒤에 뇌파 측정기를 붙여서 진행했다.


"들어주시겠어요?"


뭘?

"뭘요?"


"......"


"아, 이마요?"


이마라고 한마디 해주는 건 어려운 걸까.


귀 뒤에 붙일 때는 귀를 아예 접어버려서 피어싱 한 귀와 마음이 한차례 더 자극받았다.

선생님 만나기 전에 참 마음을 분란하게 하네.. 당신 문제일까 내 문제일까.



다행히, 의사 선생님은 굉장히 친절했다.

이전에 다니던 병원 의사 선생님과는 달리 상당히 긴 시간을 투자해서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공감과 원인 파악에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상해버린 나는 이곳은 다니지 않기로 결심해서, 멍한 표정으로 있다 나왔다.


검사가 끝나고 의사 선생님은


"원래 표정이 그러세요?"


"... 오늘은 좀 컨디션이 좋은 편이긴 한데요"


"ㅎㅎㅎ 그러면 좀 투자를 하셔야 될 것 같아요.."


평소에도 많이 힘드냐, 힘 좀 내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낯선 말은 아니지만

병원에서 이런 말을 듣는 건 좀 낯선 기분이었다.


병원을 나설 때, 내내 나를 불편하게 했던 직원은


"잘 가세요~"

라고 인사했다.

인사까지 나와 맞지 않은 사람이었다.


병원 건물에 있던 ㅁㅁ음식점을 들어섰을 때에는 홀은 마감되어 포장밖에 안 되는 상황이었다.

왠지 거절당한 기분이라, 괜히 울적해졌다.

.

.

.

걷다 보니 조각피자집이 보여 들어갔다.


"언제까지 하세요?"


"저희 늦게까지 해요 ^^"

연세가 좀 있으신 여성분이 하는 저 아무것도 아닌 말이, 왜 이렇게 따뜻하게 들렸을까.


몇 시까지라고 얘기하는 것보다, '늦게'까지 한다는 말이, 얼마든지 이곳에 머물러도 된다는 말로 해석됐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온 피자는, 따뜻하고, 맛있었다.

왠지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가는 곳이니, 조금 더 배려해줄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가 낳은 실망감일까.

내 마음이 고장 나 아무것도 아닌 말도 가시처럼 여겨 혼자 상처를 받고 있는 걸까.


회복되지 않은 내 마음이 불쌍해지는 날이었고,

동시에

미소와 말 한마디로 위로해 준 피자집 사장님이 감사한 날이었다.


자주 갈 것 같고, 나는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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