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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균지 Sep 11. 2024

[111호] 폭 15에 갇힌 이들_경계선 지능인

70 그리고 85. 지적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웩슬러 지능검사 점수의 기준 수치이다. 그 사이 약 15점의 폭을 지닌 경계선 위에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오로지 숫자만으로 그어진 경계 너머 사회보장 체계의 보호를 받을 자격을 박탈당한 이들은 ‘경계선 지능인’이다. 사회가 정한 기준, 그 어디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내쳐진 그들이 명칭 외에 체계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자신을 장애인으로 정체화하는 것, 장애를 인정받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증명하는 것, 모두 스스로 해내야 한다.

경계선 지능인 A 씨는 35세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상태를 인지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받아본 웩슬러 지능 검사 결과에서 72점의 지능 점수를 받은 그는, 한평생 겪어온 사회 적응의 어려움이 자신의 경계선 지능으로부터 기인하기에 개인 차원에서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러나 그뿐, 장애등록신청으로 국가에 도움을 청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현행법상 장애인정이 불가하다는 반려 처분, 다시 말해 어떤 장애 관련 지원도 제공할 수 없다는 또 다른 소외였다. 결국 경계선 지능을 인지한 이후로도 그의 생활은 개선되지 못했고, A 씨는 여전히 사회를 상대로 그의 장애인 등록 필요성을 입증하려 애쓰고 있다. 


이렇듯 사회 참여의 경계로부터 분명히 가로막혀 있는 동시에, 장애 지원 범위의 경계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마저 녹록지 않은 것이 이들 앞에 놓인 차가운 현실이다. 경계선 지능인의 삶에는 너무나 많은 경계가 둘러져 있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소속되지 못하고 존재를 배제당하는 상황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경계선 지능인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며 얻고자 하는 체계의 변화는, 바라는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인가. 그 답을 얻기 위해 A 씨의 법률 대리를 맡아 경계선 지능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하고 있는 임한결 변호사를 찾았다. 경계선 지능인의 여정을 함께한 전문가의 시야와 목소리를 빌려 경계선 지능인 관련 법적 체계의 현주소와 문제의 인과를 파악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아보았다.

 

 A 씨가 마주한 사회적 장벽들

경계선 지능인이 사회의 보호 및 지원 체계로부터 겪는 소외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계기는 경계선 지능인의 장애등록신청 반려처분 취소소송 사건이다. 지난 2023년, 경계선 지능인 A 씨는 서울시 동작구청을 상대로 자신의 장애등록신청 반려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였으나 1심 패소하였다.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속 임한결 변호사는 해당 사건의 법률 대리를 맡아 A 씨의 행보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도왔으며, 함께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그들은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을 준비 중에 있다. 해당 사건 경위를 통해 우리 사회 내 경계선 지능인과 관련한 대처의 부실한 실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A 씨는 개인적으로 시행한 웩슬러 지능검사를 통해 본인의 경계선 지능을 뒤늦게 인지하기 전까지, 그에게는 필연적이었던 생활의 어려움 앞에서 스스로를 끝없이 질책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유달리 학습성과나 교우관계 면에서 뒤처지기 일쑤였으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에서 매번 난관에 빠지곤 했다. 심지어 군 복무 중에는 극심한 업무 부담과 가혹행위를 겪었으며, 청년기 구직활동에 번번이 실패하기도 했다. 

이처럼 A 씨의 경계선 지능이 사회 참여의 어려움을 초래한 정황이 명백하나,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불편에 대한 인정이나 생활지원은 전무했다. 또한 A 씨가 입대할 당시 경계선 지능인에게 주어지는 군복무 면제 규정에 따라 A 씨는 군복무 면제 사유가 있었음에도 이를 걸러낼 검사시스템이 병역판정검사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가배상소송을 계획하였으나 소멸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었다. 

현존하는 모든 국내 경계선 지능인 인구수 관련 자료는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합니다. 전체 국민의 14%라든지 7명 중 1명이라든지 하는 분석들은 전부 표준편차를 토대로 전체 인구수에 백분율을 적용한 추정치일 뿐이거든요. 이제껏 국가 주도로 대대적인 실태 조사가 시행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국내 경계선 지능인의 수가 많다고들 하나, 주장 속 제시되는 인구는 사실 실체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조사된 정확한 집계가 없다는 것은 국가 입장에서 이들을 대상 군이 아닌 사람들로 인식해 관리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경계선 지능인 관련 법률이 반드시 필요한 까닭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일단 어떤 방식에서든 지원법이 생겨나, 이들이 특정 법률의 대상 군이 된다면 국가의 시야 내에서 관리되는 것에서부터 지금의 사각지대가 조금씩 해소될 수 있다고 봅니다. 


경계선 지능인이 개인적 차원에서 스스로의 장애를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은 예상가능한 결과다. 국가 역시 그들의 실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체계를 전혀 갖추고 있지 않은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의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A 씨가 겪은 불필요한 군 복무 사례와 같은 피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A 씨는 임 변호사를 찾아, 보상은 불가하더라도 본인의 여러 사회적 어려움을 공적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 이러한 욕구가 장애등록 신청으로 이어졌으나, 현행법상 반려 처분이 내려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진행된 취소 소송의 쟁점은 반려 처분 자체의 위법성을 따지는 것에 있지 않다. 당초 반려 처분의 근거가 된 법령인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자체의 위법성을 지적해 정당한 법질서에 기반한 처분을 요구하려는 것이다.

A 씨의 생활에 있어 경계선 지능이 큰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장애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이유는 전적으로 그 ‘기준’에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지적 장애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등록 신청 시 필수적으로 장애 정도 심사용 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문제는 해당 진단서는 지능지수 70점 이하로 측정된 이들만 발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지능지수 72점의 A 씨와 같은 경우, 애초에 장애 정도 심사용 진단서를 발급받지 못하기에 장애등록 신청 자체가 불가하게 된다. 오직 지능지수만을 유일한 판단기준으로 삼아, 외의 모든 조건과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체계이다.

이와 같은 접근은 지적 장애와 비장애 간의 편차가 15점인 것을 고려할 때, 지능지수를 측정하는 수단인 웩슬러 지능검사가 무려 5~10점의 높은 오차범위를 갖는 것에서 오는 진단 오류의 위험성마저 간과한다. 한 개인의 사회 적응 능력을 파악하기엔 적합성도, 정확성도 보장되지 않는 수치 하나만으로 경계선 지능인의 삶은 너무도 쉽게 속단되는 것이다. 실질적 지원의 단계로 넘어가기 도전에, 필요를 인정받는 가장 첫 번째 시도부터 좌절시키는 기준의 벽 앞에서 경계선 지능인의 목소리는 차단된다. 


 여론은 어떻게 입법으로 이어지는가

장애 인정과 모든 절차들은 다 국민연금 산하에 있는 장애 정도 심사위원회를 거치도록 되어 있어요. 해당 기관에는 주로 의사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그분들은 제출된 서류 속 숫자 하나만으로 장애의 정도를 판단할 권한을 갖죠. 심사 대상자를 직접 만나고 면담을 나눠본 일선의 사회복지 공무원은 심사 과정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대상자로부터 서류만 받아 전부 공단으로 넘긴 뒤에 서류만 보고 판단을 내리는 장애 등록 시스템을 갖고 있다 보니, 결국엔 지능지수 말고는 그 무엇도 고려하지 못하는 체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단순히 숫자 하나로 누군가의 삶의 고통을 헤아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장애를 판단하는 근거에 있어 ‘의학적 모델’에만 의존하는 한계를 보인다. 이에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로부터 권고를 받기도 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장애를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으로 바라보며 장애를 다루는 면에 있어 ‘사회 참여를 가로막은 태도 및 환경’을 고려하는 ‘사회적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인 대한민국의 ‘장애인복지법’이 사실상 장애 개념의 정립에 인권적, 사회적 모델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장애의 개념을 개인의 문제로 보고 있죠. 장애의 원인을 개인으로부터 찾고 있고요. 반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정의를 보면 개인의 기능적 손상만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분이 사회적 장벽과의 상호작용에 어떤 어려움을 만드는가, 하는 종합적인 결과에 기반해 장애의 개념을 가리고 있어요. 한마디로 사회적 장벽의 유무가 장애의 기준점으로 자리한다는 거죠.

경계선 지능인에게 기준의 부적합성은 문제의 시작점일 뿐이다. 경계선 지능인의 경우 모호한 위치에 있기에 장애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비장애인과의 차이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경계선 지능을 발견하는 데 있어서도 개인 차원의 대처로는 충분치 않으며 국가 차원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 국가가 제시하는 기준인 지능 검사마저필수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30 ~ 50만 원 정도의 높은 검사 비용은 경계선 지능인에게 또 다른 걸림돌이 된다. 경계선 지능 자각 부재로 놓치게 된 권리 행사에 본인의 책임을 묻는 것은 도의적 그리고 현실적으로 부당하며, 국가 차원의 관리 및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보호해야 할 인구수조차 집계되지 못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복지는 기본적으로 신청주의를 기반으로 합니다. 본인이 신청을 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죠. 먼저 제시해 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경계선 지능인들 대부분은 본인이 장애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 않고 스스로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도 싫어하는 분들이 계신 탓에, 주체적인 권리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한편, 국내 경계선 지능인이 사회적으로 화두에 오르기 시작한 이래 변화의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자체 측에서 경계선 지능인 관련 조례들을 적극적으로 제정하는 경향이 포착된 것이다. 경계선 지능인 지원 조례의 제정은 지자체의 예산 배정과 관련 시설 설치 및 프로그램, 실태조사 등을 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전국 74개 지자체에서 조례를 제정했음에도 평생교육 지원에 그 내용이 한정되는 경향이 있으며, 실질적인 돌봄과 취업 등 경계선 지능인의 생활과 자립에 관한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조례를 제정한다고 하더라도 상위법이 부재함에 따라 조례가 실질적으로 시행되지 못하거나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유명무실해지는 경우가 많다. 2022년 춘천시의회는 경계선 지능인 지원 관련 조례안 제정을 예고했으나 상위 법의 부재를 이유로 부결시킨 바 있다. 춘천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 심의에서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은 ‘상위법이 없는 상태에서 조례를 만드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고 예산만 낭비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반대했다. 당시 김용갑 춘천시의원은 조례 부결에 있어 상위 법률에 의한 네트워크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례를 시행할 시 시행착오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조례안은 상위 법이 발의된 후에야 검토해 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입법 부재로 인해 모든 하위적인 시도가 가로막힌 것이다.

이에 대해 춘천시 시민단체 관계자는 “1991년 시작된 지방자치는 지역의 문제를 지역민의 힘으로 해결하자는 취지이고, 이를 위해상위법이 없어도 조례 제정을 가능하게 한 것인데,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30년이 넘은 이 시점에도 여전히 상위법 운운하면서 지역민들의 시급한 현안을 미루고 외면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미 지난 9월 27일 강원도의회에서도'강원도 경계선 지능인 지원조례'가 통과되었음에도 춘천시의회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은 자질이 부족한 시의원들의 횡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춘천시의회가 언급한 강원도의회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 2023년, 강원교육청의 경계선 지능 학생 지원 조례안이 강원도의회 교육위원회에서 끝내 부결됐다. 해당 조례안을 발의했던 정재웅 도의원은 부결 사유를 납득할 수 없고, 정치적 목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정 의원은 상위 법령이 없어도 선제적으로 조례를 만들 필요가 분명하고, 지자체 조례만으로는 학생 지원에 부족함이 크다며 상위 법안의 필요성 또한 호소했다.

A 씨 소송 패소 당시 재판부의 판결문을 살펴보아도 “지능지수 70 이하인 경우로 구체화한 것이 명백하게 잘못됐다거나 재량의 일탈·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경계선 지능’에 해당하는 사람을 지적장애로 볼 것인지 여부는 입법 재량의 범위일 뿐, 반드시 경계선 지능에 해당하는 사람을 장애인으로 등록해야 할 법령상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다시 말해, 장애를 판정하는 기준에 있어 입법부가 제정한 현행법은 집행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조례 부결과 반려 처분 모두 그 명분을 ‘상위 법의 부재’에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상 정책에 있어서도, 장애 판정기준에 있어서도 경계를 그어놓은 것은 법률이었다. 그러니 근본적인 걸림돌인 동시에 돌파구는 결국 ‘입법’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관련 논의의 시도는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경계선 지능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에 관한 법률안’, ‘경계선 지능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경계선 지능 학생 교육 지원에 관한 법률안’ 총 네 건이 발의되었다. 그러나 네 건 모두 결국 회기 만료로 폐기되는 결과를 맞았다. 이렇듯 지속적인 법안 발의에도 제정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다.

발의된 법안도 사실 경계선 지능인을 위해서 꼼꼼하게 만들어진 법안은 아니었습니다. 기존에 발달장애인 지원법이 존재하잖아요. 그 법에서 경계선 지능인으로 단어만 바꾸면 거의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발의가 실제 나중에 통과까지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어떤 발의 실적만을 남기기 위한 법률안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형식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네 건이 발의되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경계선 지능인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발달장애인에 대한 법을 차용해 대상을 변형하는 것에 그쳤던 것이다. 경계선 지능인에게 무엇이 부족하고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를 충분히 거치지 않았음을 여실히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발의 실적을 위한 법안만이 발의되고 그조차도 제정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법안 자체의 결함에 더불어, 국회의 입법 처리 기조 또한 정치권 여론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한다.

현 국회의 기조는 다들 아시다시피 정치적 대립이 굉장히 첨예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중심에 있는 문제들에 한해서만 신속하게 처리가 가능한 것이죠. 의지가 있으면 할 수 있는 부분인 거예요. 다른 말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일 뿐이죠. 국민의 관심이 모인 곳에, 국민의 관심으로만 국회는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국민의 관심은 결국 언론의 관심으로 표현되기 마련인데, 현재로선 언론의 관심이 정치적인 싸움을 중계하는 데 집중이 되어 있어요. 그에 따라 정치권도 당연히 분쟁적인 사안에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되겠죠. 저는 현 국회의 기조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국민 여론은 변화를 추동하는 핵심적 요소다. 정치인은 국민의 이목을 끌고자 하고 언론은 국민의 관심사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여론이 변화하면 언론이, 언론이 변화하면 국회가 변하는 셈이다.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문제의식 공유가 범국민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이유다. 한데 경계선 지능인과 지원 정책에 관한 국민적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에 머문다. 경계선 지능인을 바라보는 인식도 미흡하거니와 복지 자체에 대한 반감 또한 만만치 않다. 인권 보장을 시혜 및 특혜로 보고 ‘세금이 아깝다’고 말하는 반응을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적 문제는 취소소송 1심 재판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1심 판결은 사회보장 수급권의 관점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때, 한국의 사회보장 수급권은 권리 아닌 시혜로 인식됩니다. 쉽게 말해국가가 주든 말든 그것은 전적으로 국가의 재량에 달려있다고 해석되는 수준에 머물러요. 때문에 행정부의 재량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1심 판단의 주된 근거로 작용했던 것이죠.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정책과 예산을 마련해 그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정당한 일임에도, 사회는 이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실질적인 복지 방안을 고민하는 데에는 무관심하고 세금 내는 것을 아까워하며 경계선 지능인들을 동정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대중의 눈초리가 무책임한 체계의 횡포를 방조한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이해함으로부터 비로소 진정한 변화의 실현을 시도할 수 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변화의 시작

그렇다면 무엇보다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인식 변화가 첫 단추가 되어야 할 것이다. 동정이 아닌 공감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는 태도가 요청되며 지원 필요성에 대한 합의가 최우선으로 이뤄져야 한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개인의 기능적 손상이 사회적 장벽과의 상호작용에 있어 어떤 어려움을 만드는 가를 장애의 개념으로 따지고 있어요. 실질적으로 장애를 구성하는 원인이 사회에 있다,라는 관점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모두가 청각장애인이고 수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수어를 사용할 줄 모르는 비청각장애인이 장애인이 되겠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법의 정의를 보시면 출발점이 개인의 기능적 어려움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로 보고 있어요. 그 출발점을 달리하여 우리나라도 앞으로 UN 방식을 따라 장애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언제든 장애를 마주할 수 있으니 세금 내는 걸 아까워하지 말고 사회 인식 개선에 더 참여해야겠다는 국민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근본적인 얘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법체계의 변화는 여론의 변화가 선행되었을 때 뒤따라올 수 있다. 임 변호사가 A 씨의 2심 재판에서 다른 결과를 목표할 수 있는 까닭 역시 여론의 변화에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1심의 결정적 패소 원인은 재판부가 법 자체의 미흡함보다 행정부 권한을 더욱 중요하게 판단하는 기존 법리를 반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최근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는 추세가 1심 때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원인 중 하나로작용할 수 있죠. 판사도 배심원도 모두 다 사람이기에 여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달라진 여론이 대두된다면, 분명 그 영향이 판결까지 이어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경계선 지능인을 포용하는 여론의 형성은 정치권 및 입법에 있어 장기적인 변화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비록 아직은 형식상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존재함은 부정할 수 없으나, 경계선 지능인 관련 조례 제정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 역시 사회적 흐름이 반영된 긍정적 결과 중 하나이다. 사회 인식이 조례 제정에 미치는 영향만큼이나, 조례의 존재가 인식 수준을 끌어올릴 선순환 역시 기대할 수 있다. 임 변호사는 학생인권조례가 가져온 변화 사례를 언급하며 경계선 지능인 관련 조례도 유사한 흐름을 가져오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냈다. 현재 지자체나 교육청 차원에서 경계선 지능 학생에 대해 검사비를 지원하는 정책이 늘고 있는 움직임도 진보의 출발점으로서 의의를 두고 있다. A 씨와 같이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을 줄이기 위해선 검사비 지원은 유의미한 변화다. 

학생인권조례가 시작되고 나서 학생들을 향한 교사들의 폭력 및 폭언이 사라지게 되었죠. 조례가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이끈 좋은 예라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경계선 지능인 관련 조례가 제정되기 시작한 것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재 상위법의 부재를 명분 삼아 실효성 여부를 고려하지 않는 접근은 분명 해결되어야 하는 부분이죠. 특히나 지자체의 조례는 국민 권익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 국민에게 더 이롭게 혜택을 돌려주는 부분에 대해서는 보다 자유로운 도입이 가능하거든요. 때문에 비록 상위법이 부재한 상황일지라도 지역마다 경계선 지능인들을 위한 조례 제정의 노력은 분명한 의미를 갖습니다.

조례 제정은 희망적인 신호이다. 지자체들의 시도가 쌓여 입법이라는 큰 관문으로 향하는 길목을 열 수 있을까. 경계선 지능인을 바라보는 개인의 인식에서부터 하나둘 작은 움직임을 시작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사회적 체계의 큰 변화에 닿을 미래를 그려본다. 이제는 단순히 명분을 위한 법이 아닌, 경계선 지능인들의 실질적인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법안이 절실하다. 출발점으로 돌아가 지능지수의 숫자만으로 그들의 첫 시도를 가로막은 경계선부터 다시 설정해야 한다.

웩슬러 지능 검사를 없애거나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으로 판단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웩슬러 지능 검사 결과에 더불어, 사회 성숙도 지수와 같은 다양한 평가 기준이 추가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대상자를 오랫동안 관찰한 사람들의 임상적인 평가, 질적인 평가와 같이 수치화된 점수로만 설명할 수 없는 항목들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리라 생각됩니다. 경계선 지능은 가정환경이나 양육 환경에 큰 영향을 받곤 하죠. 아동기에 환경을 바꿔주고 관심을 갖고 챙겨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아질 수 있기에 경계선 지능 아동에 한해서는 세간의 인식과 같이 주변의 관심과 도움으로 극복될 여지가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인기에 접어든 이후 더 이상의 발달은 불가능하기에 비장애인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무의미한 접근입니다. 때문에 이들은 장애인 등록을 통해 복지의 체계 안으로 포용되어야만 하죠.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장애인 등록의 제한을 풀어주고 이들에 대한 인구 집계 및 사례 관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이처럼 단 하나의 지표에 따라 그어진 경계선을 지우고 보다 넓은 시야의 접근을 시도해 보자. 임 변호사는 이후 마련될 법률은 경계선 지능인들의 사회적 활동을 직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 그 사이 회색지대에 놓여 배제된 이들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사회에 포섭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원법의 제정이 경계선 지능인이 처한 사각지대를 해소해 주길 바랍니다. 법률이 제정되고 나면 지자체별로 관련 기관이 설치되어 대 상자들을 관리하는 수준까지는 실현될 수 있겠죠. 그렇게 만들어진 기관들은 기존에 있는 복지 혜택을 그들에게 연계해 줄 것이고요. 이때 저는 단순 연계에서 한발 더 나아가 법률이 직접적으로 경계선 지능인을 지원하는 역할 또한 수행해 주길 기대합니다. 기존 복지 서비스 제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기관의 자체적인 일자리 발굴과 제공까지 법률이 보장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습니다.

현존하는 경계선 지능인 직업 교육 지원 기관은 서울시의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이하 밈센터)가 유일하다. 수백만 명에 달 하는 국내 경계선 지능인을 지원하기에 단 하나의 기관은 턱없이 작은 규모이다. 현재의 밈센터에서 나아가 경계선 지능인 들에게 보다 현실적인 관리와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중심 컨트롤타워를 설립하고 더 많은 실행 기관을 마련해야 한다. 

평생교육 지원센터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관이죠. 성인기의 사회인에게 직업정체성은 정말 중요합니다. 직업이 없으면 내 가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직업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밈센터는 그들에게 너무 소중한 기관이죠. 하지만 서울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데, 지금 밈센터 하나만으로 절대 충분할 수 없어요. 지역마다 빠짐없이 세워질 정도로 많아져야 합니다. 또한 밈센터에서 시행되는 간단한 바리스타 교육 같은 프로그램들이 물론 유의미한 시도이기는 하지만,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교육으로 기대해 볼 수 있는 건 단기 아르바이트 직무 정도에 불과하거든요.
그들이 장기적으로 가계를 유지할 만한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한층 더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회적 기업이 세워지고,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지정해 일반 기업과도 적극적으로 연계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때 경계선 지능인의 장애인등록은 장애인 의무 고용법에 따라  입사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겠죠. 경계선 지능인은 ‘느린 학습자’라는 별칭으로도 불려요. 천천히 알려주면 반복적인 단순노동은 충분히 잘 해낼 수 있거든요. 이런 부분을 지원 기관들이 고려해 일자리 확보의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기관이 경계선 지능인 각자에게 개별적인 특성에 적합한 일자리를 찾아서 제의해주는 것이죠. 물론 안전성도 확인하고요. 당사자는 직업을 통해 자기 효능감을 얻을 수 있고, 기업은 인력을 구할 수 있고, 모두가 상생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거죠.

스스로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몫을 다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직업이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와 지원으로 경계선 지능인이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 직업을 갖추기는 어렵다. 자신이 남들에 비해 느리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향해야 할 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면 사회에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 보다 분명해진다. 경계선 지능인들이 기관이 제공하는 일자리를 통해 자기 효능감과 사회적 소속감을 얻을 수 있게 된다면, 궁극적으로 소외 및 사회 적응성 문제가 해결되고 이들 개인은 느리더라도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경계선 지능인의 사회 적응을 위해서는 기회의 확충과 더불어 안전의 보장이 필요하다. 법과 복지의 사각지대는 다 함께 메꿔가는 것이고,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가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배움이 느리고 남들의 속도를 따르지 못한다고 경계선 지능인들을 ‘비효율적’인 노동자로 규정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적으로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이해와 그들 각자의 개별적인 능력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이 필요하다. 배움이 느리고 일을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쉽게 해고되거나 직장 내 따돌림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체계의 관리와 보호가 행해져야 한다. 

누군가는 이미 장애 인정을 받은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지원을 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합리적이냐는 의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그들보다 더 중요하고, 더 절박한 문제가 진행 중에 있는데 경계선 지능인에게까지 할애할 수 있는 비용은 없다며 문제를 차치한다. 경계선 지능인을 ‘뒷전’으로 취급하는 시선은 그들을 사회에서 더욱 소외시키곤 한다. 

우리나라가 우선순위를 따져야 할 정도의 국격도 아니고, GDP만 보아도 규모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국가의 예산은 충분합니다. 사회적 문제를 대할 때 정치권에서 종종 나오는 말들이 있죠. ‘번호표 좀 뽑으세요. 당신의 번호표는 뒤에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인권의 문제에는 번호표가 없다고 생각해요. 권리의 보장에 누가 더 급하고, 심하고 하는 비교가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보다 시급한 복지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고, 진정한 변화는 우리가 베푸는 선행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아 사회에 소속될 수 있도록, 하루빨리 제대로 된 지원과 예산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일 뿐이다. 이러한 인식과 체계의 이상적 변화가 실현된다면, ‘장애등록신청 반려처분 취소소송’의 시작점에서 A 씨가 홀로 취업난을 겪으며 뒤늦게 자신이 놓치고 있던 권리를 자각했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지지 않을까. 국가 차원에서 경계선 지능 관련 관리 및 집계를 내리고, 이들을 위한 교육과 생활 지원이 활성화될 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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