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냥이 모시기
스위스, 그것도 시골에서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한국 도시에서의 그것과는 굉장히 다르다.
한국에서 고양이를 개와 같은 급의 반려동물로 여기기 시작한 지 10년 남짓 한 것 같은데, 스위스는 반려동물 1위에 개가 아닌 고양이가 위치한 게 벌써 20년이고, 개체수도 개의 두 배에서 세 배에 달한다.
고양이는 내향적이면서 자주적이고 정확하고 깔끔한 성향의 스위스인들과 잘 맞는다.
스위스에서 고양이를 모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1. 집냥이
2. 산책냥이
집냥이는 한국에서 키우는 방식처럼 고양이가 집 안에만 있고 바깥에 나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집 안에 모래를 채운 화장실이 있고 각종 장난감과 캣타워가 필수다. 한국에서 거의 대부분의 반려고양이들이 집 안에서만 사는 것에 비해 스위스는 그 반대다.
옛날 한국 시골에 살 때 동네를 다녀보면 꼭 어슬렁 거리던 개들이 있었는데, 떠돌이 개가 아니라 집이 있는 아이들도 묶어두지 않으면 혼자 잘 돌아다니다 집으로 밥 먹으러 가곤 했다.
어렸을 땐 그 개들이 무서워서 길을 빙 돌아 피해 다니곤 했었다.
그때 그 개들처럼 스위스 산책냥이들은 집 주위로 자기 영역을 정해놓고 그 안을 순찰하며 밤을 보낸다. 야행성이라 밤부터 새벽까지 제일 활발하다.
산책냥이들을 위한 작은 문을 통해 자유롭게 들락날락하거나, 사람이 발코니 문을 일일이 열어주기도 한다.
이렇게 실내외를 독립적으로 다니며 사는 냥이들은 집냥이들에 비해 확실히 야생성이 살아있다. 철에 따라 온갖 작은 동물을 사냥해 갖고 들어온다든지, 발톱이 항상 날카롭게 관리가 되어있다든지 하는 게 특징이다. 비가 온 날이면 흙이 잔뜩 묻은 발로 침대에 올라오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곳 사람들은 침실을 금묘의 방으로 지정해놓기도 한다.
냥이를 바깥에 혼자 내보낸다는 것은 마음을 많이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도 된다. 아무리 시골이어도 아주 외딴곳이 아니면 차들이 다니기 마련이고, 자유로운 영혼인 냥님들께선 어디에 꽂히면 몇 시간씩, 또는 며칠씩 집에 안 들어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두 냥이 중 한 마리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보통은 냥이들이 다니는 영역을 알고 있으니 그 근처를 돌면서 이름을 부르면 달려 나오는데 (밖에서 우리를 만나면 어찌나 반가워하는지), 이상하게 밥때가 돼도 감감무소식인 것이다.
아이를 마지막으로 집에서 본 지 열 시간 정도가 지나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침 기온이 떨어지고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최악의 날씨 때문에 춥고 배고플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혹시 차에 치인 건 아닐까, 너무 멀리 나가서 길을 잃은 건 아닐까, 누가 잡아가서 가두고 있는 건 아닐까 여러 가능성 때문에 초조해져 낮이고 밤이고 냥이를 찾아 나섰다.
30시간이 지나고, 일요일 오후가 되어 이웃집 스무 가구에 전단지를 뿌렸다. 초인종을 눌러 직접 설명하고 지나가는 고양이들을 유심히 봐달라고 부탁도 했다.
너무 가족처럼 부대끼면서 지냈던 탓인지 정말로 가족이 실종된 기분이었다. 하다못해 생사라도 알고 싶어서 혹시라도 들은 것 있으면 알려달라고 이웃들에게 부탁했다. 이웃들은 모두, 일주일 내로 거의 다 알아서 돌아오니 걱정 말라면서, 호기심 때문에 열려있는 주차장 문 같은 곳으로 낯선 집에 들어가 갇혔을 수도 있으니 확인하겠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48시간이 지나고 꾸역꾸역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데 고양이문으로 아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빼꼼 고개를 디밀며 들어왔다.
“이 눔 시끼! 고양이 시끼!”
안도감과 기쁜 마음에 벅차 눈물이 나왔다.
다시는 못 볼 각오도 하고 있었는데...
마음고생을 시킨 것 때문에 야속했지만 돌아와 줬다는 사실에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보자마자 다친 데는 없는지 확인하고 습사료를 듬뿍 주었다. 밥을 먹더니 집 이곳저곳을 냄새 맡으며 순찰하기 시작했다. 집안뿐만 아니라 바깥까지 몇 번을 드나들며 구석구석 꼼꼼히 한참을 확인하더니 캣타워 꼭대기에 올라가 잠에 들었다.
가출소동은 이번이 마지막이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