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지난 7월에 썼던 글을 다시 퇴고하여 쓴 글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봄빛이 짙어지고 있다. 연둣빛이 진초록으로 바뀐 지 오래다. 엊그제만 해도 낮게 움츠려있던 풀과 나무들이 기지개를 켠 채 ‘나의 계절이 왔노라’며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코끝에 닿는 바람에도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6월 두 번째 주말, 도심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지만 그동안 가보지 못한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을 찾았다.
여의도를 품은 ‘샛강생태공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은 1997년 9월에 국내 최초로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샛강은 여의도 63빌딩 앞부터 국회의사당 뒤 서울마리나 요트장까지 약 4.3km를 흐르는 작은 물줄기다.
한강 상류와 하류를 이어주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한강철교 옆을 배회하던 한강의 물줄기가 잠시 마실 나오듯이 빠져나와 여의도 주변의 대방과 신길, 당산을 둘러보고 다시 양화대교 부근에서 합쳐진다. 마치 큰물에서만 놀던 아이가 잠시 도심을 떠나 시골 할머니집에 놀러 와서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을 닮았다.
어쩌면 도심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가끔은 쉼과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일깨워 주는 것 같다. 참으로 고마운 샛강이다. 생태공원이 그 마음을 알고 조용히 샛강을 품어준다.
9호선 샛강역에서 내려 3번 출구를 통해 여의교 방향으로 들어서자 그림 같은 숲길이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차로만 이동하던 거리를 직접 걸으면서 새삼 무심했던 나 자신을 원망해 본다. ‘아니, 이곳을 처음 왔다고? 우와! 진짜 숲이네’하는 탄식과 환호성이 교차한다.
물길을 따라 조성된 생태공원은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꾸미지 않은 듯 잘 간직하고 있다. 숲길에 들어서자 일자로 쭉 뻗은 흙길이 초록나라로 들어선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길은 차량 한 대가 지나갈 만큼의 큰길과 숲과 숲 사이를 연결하는 작은 오솔길로 이어진다.
큰길을 따라 운동하듯 조금 빠르게 걸어도 좋고, 오솔길을 따라 좀 더 가까이 숲의 소리에 귀 기울여도 좋을 것 같다. 천천히 걸으면서 찬찬히 풀과 나무의 향도 맡고 살랑거리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도 좋으리라.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길가에 샛노랗게 피어난 애기똥풀과 금계국이 살갑게 인사를 한다. 겨우내 잔뜩 움츠려 있다가 봄이 되자 기지개를 켠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때를 기다리는 법을 들꽃에게 배운다.
오솔길로 들어서니, 길게 드리워진 수양버들과 무성한 억새가 앞을 가린다. 마치 한가로운 교외 지역에 나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좁은 숲길 사이를 지날 때 길가에 올망졸망 피어난 개망초, 벌사상자꽃들이 마중 나와 인사를 건넨다. 무성하게 자란 풀들도 초록을 뽐내며 발을 간지럽히고, 때론 나뭇가지들이 어깨를 스치며 알은체한다. 그저 지나가기만 했을 뿐인데 숲길에서 과분한 선물을 받는다.
자연 그대로의 ‘생태연못’
10분쯤 걸으니, 생태연못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연못 위에 지그재그로 놓인 덱길을 따라 걸으면 마치 오지의 늪에 들어온 것 같다. 휘영청 드리워진 버드나무와 연못을 뒤덮은 수생식물이 멋진 앙상블을 이룬다.
천천히 덱을 따라 이동하는데 연못가에서 먹이를 쫓던 왜가리가 푸드덕 날아오른다. 이곳에서 생명체를 만나면 그저 신기할 뿐이다. 도심 옆이라 더욱 그렇다.
생태연못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나는 수달입니다’라고 쓰여 있는 팻말이 보인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곳이 수달 서식지라는 걸 알려준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1급이라고 하는 수달이 이곳에 서식한다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두발을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서 있는 수달가족의 동상이 앙증맞다. 주변 나뭇가지를 벌목한 잡목들을 울타리처럼 둘러쳐서 만든 수달집도 인상적이다. 멸종되지 않고 길이길이 보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발길을 샛강센터 가는 곳으로 향한다. 한 그루의 큰 나무를 잘라 정갈하게 만들어 놓은 신발장이 보인다.
나뭇가지 위에는 층층이 널빤지를 얹어 놓았다. 자연 그대로 옮겨 놓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널빤지 위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 세 켤레가 정겹다.
요즘 건강을 위하여 맨발로 땅을 밟으며 지구와 몸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어싱(Earthing)’이 유행이다. 흙길을 따라 맨발로 걷는 가족의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하다. 맨발로 땅을 밟으며 걸으면 발의 뼈, 근육, 인대가 골고루 강화되고 혈액순환과 신진대사에 좋아 여러 만성질환도 예방된다고 하니, 한 번쯤 동참하는 것도 좋겠다.
‘콩쥐팥쥐 자연놀이팡’
발걸음을 ‘콩쥐팥쥐 자연놀이팡’으로 옮긴다.
이곳은 아이들이 숲 속에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자연 놀이터다. 숲 속에서 투호놀이, 줄타기, 쓰러진 큰 나무 위 걷기 등을 할 수 있고, 그물망으로 연결해 놓은 해먹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다.
줄타기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줄다리기하듯 긴 줄로 연결하고, 아래에 한 줄, 위에 두 줄로 엮은 후 중간에 매듭을 지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했다. 그 옆에 자리한 해먹 위에서 미리 자리를 잡은 여성이 편안하게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다.
이곳이 도심 한복판이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는 광경이다.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한 이들에게 생태공원은 아낌없이 자리를 내어준다.
생태계의 보고 ‘여의못’
조금 더 걷다 보면 여의못에 이른다. 연못가에 있던 왜가리가 고개를 쭉 내밀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연못 한쪽에는 청둥오리 한 쌍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뒤이어 열 마리쯤 되어 보이는 잉어 떼가 우르르 몰려든다. 잉어와 청둥오리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다정한 가족을 보는 것 같다. 그 뒤로 쓰러진 나무 위에 붉은귀거북 두 마리가 바짝 엎드린 자세로 낮잠을 자고 있다. 어린 아가가 엄마 품에 엎드려 쌔근쌔근 자는 듯하다. 이보다 더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덱 난간 위로 서너 마리 비둘기가 총총걸음으로 줄지어 걷는다. 사람이 다가가도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 놀라는 기색이 없다. 이제 사람들과도 친숙해진 모양이다. 이곳이야말로 생태계를 보전하면서 사람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강을 날아오르는 ‘샛강문화다리’
아치교를 지나니, 하늘 위를 가로질러 병풍을 두른 듯 길게 누운 다리가 앞을 막는다. ‘샛강문화다리’다.
아래에서 쳐다보면 50미터쯤 되는 높이가 아찔하다. 한 쌍의 학이 한강을 날아오르는 날개 형태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거대한 비행선을 보는 것처럼 웅장하다.
다리 위로 올라서면 더 멋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버드나무숲 아래로 샛강이 흐르고, 숲 위로 여의도 빌딩 숲이 우뚝 솟아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빌딩과 샛강, 버드나무 푸른 숲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바람 따라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버드나무 물결이 넘실거린다.
신록으로 단장한 이파리들이 춤출 때마다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그새 내 마음도 파릇파릇해진다. 삭막함만 흐를 것 같던 회색빛 도시에 샛강의 푸른 숲이 더 없는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살아가면서 초심을 잃고 마음이 조금 딱딱해진다고 느낄 때 한 번쯤 가까이에 있는 우리 숲을 거닐어 볼 일이다.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정보
◎ 주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49
◎ 대중교통: 샛강역 3번 출구에서 161m, 4번 출구에서 643m, 신길역 2번 출구
◎ 입장료 :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