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던 8월 주말에 초등학교 친구들과 남산골한옥마을을 찾았다.
도심과 가까워서 가볍게 산책하기 좋을 것 같아서 저녁 모임 전에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광주에 사는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수도권에 사는 친구들도 처음 가본다는 친구들이 많아서 놀랐다. 그만큼 덜 알려진 게 아닐까.
지하철을 타고 충무로역에 내리자마자 한바탕 소나기가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쏟아졌다. 소나기를 피할 겸 해서 제과점에 모여 차 한잔 나눈 뒤 남산골한옥마을로 향했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한국인보다는 외국인들이 더 많이 보였다. 이곳이 외국인들에게 꼭 들려야 할 명소로 소개된 것 같았다. 한복대여점에서 한복으로 곱게 갈아입은 가족과 연인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초등학교 친구들이라 그런지 남산골한옥마을로 가는 내내 농담하며 웃음꽃이 떠나질 않았다.
가정형편이 어떻고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뻔히 알던 사이가 아니던가. 어렸을 적 추억을 곱씹으며 서로들 놀려 대기에 바빴다. 오랜만의 야외 나들이라 조금은 설레고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졸업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기억은 초등학교 코흘리개 그 시절에 머물렀다.
단청으로 한껏 멋을 부린 정문에 들어서자 이곳이 도심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널찍한 마당에 짙푸른 숲이 나타났다.
입구 오른쪽에는 여느 시골에서나 봄직한 초가지붕 밑에 지게와 망태, 소쿠리가 놓여 있다.
그 옆에는 남산 산기슭을 돌아 내려오는 개울물이 흐르고, 개울 가운데에는 수초가 무성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세월을 살짝 비켜간 한적한 여유가 느껴졌다.
남산골한옥마을은 1998년 서울 시내에 흩어져 있던 민속문화유산 한옥 다섯 채를 이곳으로 이전·복원하고, 훼손되었던 전통정원을 복원한 곳이다.
여기에 국악 공연을 하는 ‘서울남산국악당’과 서울의 대표 문물 600점의 캡슐을 보관한 ‘서울천년타임캡슐광장’을 추가하여 남산의 대표 명소로 자리 잡았다.
원두막을 지나 왼쪽으로 향하니, 천우각이 장엄하고 화사한 기품을 뽐내고 있었다. 장맛비에 젖은 터라 더욱 새초롬히 도드라졌다.
천우각을 보고 앞서가던 친구가 한마디 건넸다. “우와! 진짜 크다. 저 위에서 마음껏 뛰어다녀도 되겠다. 낮잠 한번 자면 시원하겄네.” 조선시대 고관이나 귀인들이 여름철 더위를 피해 머물렀던 곳이다.
이십여 명은 거뜬히 앉을 수 있을 만큼 넓었다. 남산서울타워가 손에 잡힐 듯 처마에 걸려 있었다.
잠시 천우각에 올라 땀을 식히니, 옆에 있는 버드나무에 올라탄 매미가 매섭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라도 하듯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요란했다. 너른 앞마당에 말을 매어두고 이곳에서 시 한 수 읊으며 유유자적했을 선비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천우각 앞에는 청학지 연못이 다정한 연인처럼 다소곳이 자리 잡았다. 연못에 길게 드리워진 누각과 지붕 위로 우뚝 솟은 듯한 남산서울타워가 멋진 앙상블을 이뤘다.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했다.
연못 한가운데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대여섯 그루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때마침 주황색과 갈색 잉어떼들이 몰려와 방문객에게 연달아 알은체를 했다. 정극인이 <상춘곡>에서 언급했던 ’조화신공이 물물마다 헌사롭다‘라는 표현은 이런 때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천우각을 뒤로하고 전통공예관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란 글귀가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다.
입춘이 한참 지났는데도 그대로 놓아둔 걸 보니, 모든 방문객에게 계속 길운이 깃들고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거라고 생각했다.
대문에 들어서자 투호놀이를 즐길 수 있는 너른 마당과 대궐 같은 한옥 다섯 채가 줄지어 나타났다.
관훈동 민씨 가옥,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옥인동 윤씨 가옥,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이다.
그냥 눈으로 보면 이 집이 저 집 같고, 저 집이 이 집 같았다. 모두 고관대작이 머물렀을 법한 대궐집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한옥의 규모가 가히 압도적이다. 거주했던 주인들의 신분이 다르고, 건축구조나 형태가 달라서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서로 다른 점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다섯 채 중에 관훈동 민씨 가옥, 제기동 윤택영 재실, 옥인동 윤씨 가옥 등 세 채의 주인이 모두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한옥의 우수성을 알리고 전통의 가치를 살리려 했다 하더라도 이왕이면 우리 민족의 혼과 자존심이 어려 있는 한옥을 복원했더라면 좀 더 의미 있지 않았을까.
관훈동 민씨 가옥과 이웃하고 있는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로 들어서니, 어디가 사랑채이고 어디가 안채인지 가늠이 안 돼서 다시 한번 놀랐다. 다른 한옥과는 달리 사당이 모셔져 있는 점이 특이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장인 윤택영이 그의 딸 순정효황후가 1907년 창덕궁에 들어갈 때 지은 것이다. 순종이 제사하러 와서 머물 때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사랑채와 안채를 먼저 보고 뒤쪽에 위치한 사당까지 둘러보고 나오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사당 옆 헛간에는 조상들이 농작물을 일구는 데 사용한 농기구가 옛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풍구와 써래, 지게, 홀태, 작두, 디딜방아 등 어렸을 때 직접 사용해 보기도 했고, 조상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이라 더없이 반가웠다.
옆에 있던 친구가 보자마자 한마디 거들었다. “이야! 우리가 옛날에 썼던 물건들이랑 똑같네. 누가 더 잘하는지 우리 내기 한번 할까?”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뒤편에 있는 쪽문으로 올라가니, 남산의 바람이 숨 쉬고 있는 숲길로 이어졌다. 철썩이는 조릿대 이파리와 솔향기를 들으며 천천히 쉬어가기에 좋았다.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오붓한 숲길을 걸으니 예전에 소풍 갔던 생각이 났다. 그때는 주로 넓디넓고 양지바른 선산으로 자주 갔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곳에 갔나 싶은데, 우린 그저 소풍 자체만으로 즐거웠다. 친구들의 이야기 따라 바람이 이끄는 대로 걸어가다 보니 10분도 안 되어 서울천년타임캡슐광장에 닿았다.
위에서 내려보면 마치 운석으로 크게 파인 분화구 같았다. 가운데에는 화강암 원형 판석이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아래에 서울의 모습과 시민들의 생활을 대표하는 문물 600점이 캡슐에 담겨 묻혀 있다.
이 타임캡슐은 서울 정도(定都) 1,000년이 되는 2394년 11월 29일에 개봉될 예정이다. 앞으로 370년 후에 열어볼 후손들은 이 문물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그때 내가 조상이 된다고 하니 왠지 남의 일 같아 쓴웃음이 나왔다.
그새 남산서울타워를 훑고 지나온 초저녁 바람이 조용히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 주었다.
남산골한옥마을 정보
§ 주소: 서울 중구 퇴계로 34길 28
§ 운영시간: 09:00~21:00 (월요일 휴무)
§ 입장료 : 무료
§ 연락처 : 02-6358-5533
§ 대중교통: 지하철 3, 4호선 충무로역 3~4번 출구 도보 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