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아침에 일어나니, 또 새로운 영상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요즘에는 눈 뜨자마자, 무조건 유튜브의 한강 작가님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살펴보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새로운 즐거움이 생긴 것이다.
오늘은 굉장한 횡재를 한 것 같다.
1995년, 당시 27세의 한강 작가님의 모습을 담은 문학기행 브이로그 영상이, EBS교양 유튜브 채널에 뜬 것이다.
문학기행이란 문학창작의 현장 및 배경을 방문해서, 그 작품의 감상과 이해에 도움을 구하는데 목적을 둔 여행이라고 한다.
문학기행 한강 작가님의 “여수의 사랑”은 작가님과 함께 “여수항”, 진남“, ”돌산도“등, 여수 곳곳을 다니면서, 한강 작가님이 ”여수의 사랑“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이다.
역시 EBS교양 방송은 그 옛날부터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 있었나 보다.
그 당시의 이십 대의 젊은 한강 작가님한테서, 오늘의 노벨문학상 작가의 모습을 알아보신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서 업로드된 지 몇 시간도 안 된 이 소중한 영상을 만났는데, 벌써 조회 수가 11만을 넘어섰다. 분명히 대박이 날 것 같다.
1996년, 취재팀이 한강 작가님을 마중 나간 것은, 여수 고속버스 터미널이었단다.
원래는 비행기로 올 예정이었는데, 그날따라 안개가 너무 심해서 항공편이 아닌 고속버스로 변경이 되어서 오느라고 고생 많으셨다는 취재진의 말에, 어쩜 이리도 순수하고 예쁜 모습으로 웃으시는지, 나 역시 하루의 시작이 너무도 행복해진다.
소설가라는 직함을 달고 다니기에는 아직은 너무도 앳돼 보이는 27살의 아가씨인 것이다.
한강 작가님이 많은 비평가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 소설가로서 이름을 얻은 작품이 바로 이 “여수의 사랑‘이라고 한다.
이 작품을 발표하고 2년 만에 여수를 찾으신 것이다.
한강 작가님이 여수에서 가장 강한 느낌을 받은 곳은 바로 여수항이었다고 말씀하신다.
여수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바로 만날 수 있는 여수의 바다에, 조그만 목선들이 선착장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들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하신다.
일부로 글을 쓰기 위해 여수를 찾아왔던 것은 아니란다. 우연한 기회에 잠시 머물렀던 여수에서, 한강 작가님은 여수를 고향으로 두고, 서울에서 사는 두 젊은 여자, 그러면서도 그 고향을 한없이 그리워하는 한 여자와, 한없는 상처로만 기억하는 다른 한 여자를 떠올리셨단다.
그것이 바로 “여수의 사랑”이라는 단편소설이다.
이 방송을 보자마자 바로 “여수의 사랑”이라는 책도 주문을 했다. 한강 작가님의 모든 책들을 시간이 나는 대로 꼼꼼히 읽어볼 예정이다.
요즘 몸이 안 좋아져서 많이 풀어져있었는데,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덕분에, 새로운 희망을 얻고, 살맛 또한 새로워진다.
여수시의 “남산동”이라는 곳을 걸으시는 작가님의 뒷모습이, 영락없는 어린 소녀 같아서 절로 웃음이 난다.
”남산동“이라는 곳이 경치가 훌륭한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명승지가 있는 곳도 아니지만, 한강 작가님한테는 이곳이 마치 고향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다고 하신다.
좁디좁은 골목들이 오밀조밀 뻗어있는 남산동의 풍경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작가님한테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가는 되돌아갈 수 있는 지름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주최 측은 설명해 주신다.
여수의 상징인 돌산대교를 바라보며, 여수 바다의 자갈이 깔린 모래사장을 걷고 있는 한강 작가님은, 과연 어떤 생각들을 하시면서 걷는 것일까?
아무래도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다르지 않을까라는 추측도 해본다.
돌산대교로 여수와 연결되어 있는 “돌산도”를 찾으셨다.
여수에서도 여수 앞바다가 가장 시원하게 펼쳐지는 곳이 바로 ‘돌산도“란다.
다도해라서 많은 섬들이 바다와 함께 하고 있지만, 이곳 돌산도에서는 섬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남해바다의 수평선을 볼 수 있다.
몇 년 전에 여수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왜 그때는 이런 근사한 곳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까…
보는 눈이 다른 것이다.
차원이 다른 것이다.
여수 수산 협동조합 공판장에서 한강 작가님은, 평생을 두고 봐도 다 못 볼 것 같은 고등어를 이곳에서 보셨단다.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공판장의 사람들을 보면서, 잠이 다 깬듯했다는 말씀이 너무도 귀여우시다.
여수 사람들의 질팍한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 새벽부터 공판장을 가득 메운 생선 냄새와 함께 시작한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신 것이다.
“여수의 사랑”이라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 26년의 방황을 마감 하면서 비로소 찾은 어머니 품속 같은 마을이다.
한강 작가님이 소설의 무대로 삼으시겠다고 직접 발견하신 곳이란다.
이 평화로운 마을을 발견하면서, 한강 작가님은 그때 처음 알았다고 하신다.
죽는 게 무섭지 않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도 한다.
저 정다운 하늘, 바람, 땅, 물과 섞이면 그만인 것이다.
더 이상 외로울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한강 작가님한테 여수의 바다는 그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추억과 감정들이 주인공들의 삶을 이어가고, 그 바다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이해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때까지 나에게 있어서의 여수는, 평소 좋아하는 김정운 교수님의 “여수만만”이 그려내는 것이 전부였다.
작가님이 한창 활동하신 시기에, 우리는 미국이라는 머나먼 땅에 있었던 이유도 한몫할 것 같다.
여수를 다시 찾아가야겠다.
이번에는 한강 작가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가볼 것 같다.
제주도에서 이효리 성지 순례 길이 한참 유행을 할 때, 솔직히 우리는 조금 낯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심정이 고스란히 이해가 된다.
칠십 대에 접어든 내가, 한강 작가님 발자취를 따라 성지순례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작가님이 아드님과 함께 운영하고 계신 독립서점인 “책방오늘”에도 가보고 싶고, 작가님이 살고 계시는 아담하고 예쁜 한옥 골목길도 걸어보고 싶다.
“소년이 온다”의 무대가 됐던 광주도 가보고 싶다.
다행히 제주도에 살고 있어서 어느 정도 4.3 사건에 대해서는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작별하지 않는다”를 깊이 읽으면서 제주도의 슬프고 아린 역사의 현장을 다시 찾아가고 싶다.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를 가끔 들을 수가 있어서, 이미 여수 밤바다의 아름다움은 익히 알고 있다.
바닷바람이 상쾌하게 불어오는 여수의 푸른 해변에서, 노을이 물드는 저 멀리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대한민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님의 “여수의 사랑”이라는 브이로그를 떠올리면서 낭만에 젖어보고 싶다.
EBS교양 채널에서 30년 전에 어떻게 이토록 근사한 영상을 만들어서, 지금까지 잘 보관하고 계셨는지, 그저 감동스럽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한강 작가님의 이십 대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20분 30초에 걸친 짧은 영상이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점에서 봐서 그런지, 너무도 감동스러웠다.
요새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난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날부터, 작가님에 대한 소식을 접하다 보면, 괜히 눈물부터 난다.
눈물만 나는 것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밀려오는 것이다.
펑펑 울었다는 사람들도 많다는 소식에 괜히 위로가 된다.
이 귀한 영상을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하는 뜻에서
리뷰를
작성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