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약을 먹다
“다른 애들은 원래 늘 이 정도로 집중이 되는 거야?”
약을 먹은 첫날이었다. 페니드 한 알을 먹고 스터디 카페에 다녀온 아이를 보며, 집중은 어땠어? 막 새 사람이 된 기분이니? 농담처럼 물었다. 효과 없을 수도 있어, 부작용만 심할 수도 있고. 기대하지 말자,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하지 않으니까.
“집중 짱 잘 돼. 다른 애들은 원래 늘 이 정도로 집중이 되는 거야?”
“정말 효과 있어? 속이 울렁거리거나 심장이 막 뛰거나 그런 건 없었어?”
“그런 건 없어. 그런데 약간 두통이 있었는데 약 때문에 그럴 수도 있어?”
“받은 종이에는 안 쓰여 있는데 확인해 볼게. 내일까지 두통 있으면 병원에 전화해 물어보자.”
기대 이상이었다. 아니, 기적에 가까웠다.
“평균은 되니 어머니께서 어떻게든 이끌고 가르치셔야죠.”
팬데믹의 절정에 갓 중학생이 된 아이의 학교 생활은 혼돈 그 자체였다. 대면 수업은 없었고, 매일 EBS 수업 링크와 유튜브 링크가 쏟아졌다. 아이들은 수업 자료로 준 유튜브 링크로 시작해서 끝없이 유튜브를 확장 탐색했다.
그 해 가을, 화상수업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매 수업 시간에 과목 선생님들이 보내주시는 수업 링크를 눌러야 했다.
“어머니, OO이가 수업에 안 들어왔네요. 지금 수업 접속 안 되나요?”
나는 회사에, 아이는 집에 있다. 아이에게 전화를 하고, 아이가 안 받으면 둘째에게 전화를 해서 언니 수업 링크 누르라고 말 좀 전하라 했다. 집에 가서 ‘너 왜 수업 안 들어갔어? 앞 수업 끝났으면 뒤에 수업 링크 눌러야지’ 하면 아이는 대답하곤 했다.
“그냥 멍하니 있다 링크 누르는 거 까먹었어.”
퇴근하면 아이들에게 숙제를 했냐 물었다. 귀찮아서 안 했어, 놀다 안 했어 이야기하는 둘째는 내게 한 소리 들으며 저녁에 숙제를 했다. 아이는 늘 응 숙제 다 했어, 오늘 숙제 조금 남았는데 저녁에 다 할 수 있어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선생님이 숙제 제출하라 하셨는데 어쩌지?”해서 안 한 숙제를 확인하자 하면 주저하면서 사실은 한 달 동안 숙제를 거의 안 했다고 고백하고 혼났다. 이러기를 몇 번. 아이에게 화내며 물었다.
“맨날 동생이 숙제 안 했다고 말하고 혼나고 하는 동안 늘 너는 다 했다 했는데 왜 맨날 안 하고 다 했다 하는 건데? 왜 거짓말을 해?”
“음.. 숙제하는 건 귀찮은데 안 했다 하면 혼나니까. 혼나기 싫어서.”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 공부를 꼼꼼하게 봐주는 건 어려웠다. 아이는 둘이고 나는 하나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해맑은 얼굴로 늘 나에게 거짓말을 해서 상황을 모면하다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 들킨다.
지인에게 영어 과외 선생님을 소개받았다. 그래도 학교 진도만큼이라도 공부는 해야 하니까. 과외를 시작하고 아이는 늘 숙제를 한다고 끙끙거리며 책상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숙제는 늘 다 하지 못했다. 아이는 하루 종일 숙제를 해도 다 할 수 없다며 울었다. 뭐가 문제인지 알기 위해 아이 공부를 옆에 앉아 지켜봤다.
아이는 투덜거리며 단어장을 편 후 몇 분 뒤에 멍하니 허공을 보다 어느 순간 졸기 시작한다. 깨우면 눈을 뜨고 다시 멍하니 책을 본다. 쓰면서 외우거나 읽으면서 외우라 해도 “아니 괜찮아. 나 하고 있어” 하고 몇 번 쓰다 다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몇 시간을 단어를 노려보는 아이에게, 지금껏 쳐다본 단어 중 몇 개를 물어본다. 이거 무슨 뜻이야? 아이는 기억이 안 난다며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배운 내용을 그대로 적는 숙제도 있단다. 배운 문법 필기를 찾는다. 책상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어디에 필기가 있는지 계속 찾는다. 한참 후 노트를 찾고 필기를 옮겨 적을 종이를 찾는다. 필기를 찾고 종이를 찾는 시간에 숙제를 했으면 이미 다 했을 거 같다. 투덜거리며 느릿느릿 배운 내용을 쓰다 멍하니 앉아있다 짜증 내고 급기야는 훌쩍훌쩍 운다.
키우면서 내심, 얘는 공부를 좋아하진 않네, 공부 말고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라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정도를 벗어났다. 저 정도면 열심히 하면 1시간이면 끝날 거 같은데,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아이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입력된 게 없다. 그리고 힘들다며 펑펑 운다.
회사 복지 중 본인 혹은 가족의 상담센터 상담 지원이 있었다. 상담센터 선택 후 아이의 학습 부진 상담을 신청했다. 웩슬러 검사를 하게 되었다.
검사 결과가 나온 후 상담사 분이 말씀하셨다.
“OO이 지능은 약간 낮은 평균이에요. 이 정도면 경계성 지능 정도는 아니고요. 검사를 하다 보니 OO이는 문제를 풀다 조금 어려운 단계가 되면 아예 시도하려 하질 않아요. 실패에 대한 부담감도 강하고요.”
지금까지 실패한다 뭐라 한 적도 없는데 실패에 대한 부담감은 왜 있는 건지, 평균인데 왜 한두 시간이면 될 걸 하루 종일 해도 못 하는지 물었다.
“어머니, 그냥 애 성향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세요. 애가 지능이 평균은 돼요. 경계성 지능 정도면 포기하시라 하겠지만 어쩌겠어요. 평균은 되니 어머니께서 어떻게든 이끌고 가르치셔야죠.”
그렇구나. 어쩔 수 없는 거구나. 성인이 되어 밥 벌어먹고 살 수는 있도록 ‘내가’ 가르쳐야 하는 거구나. 아이는 아무 생각 없으니 내가 해야 하는 거구나.
그날 나는, 내 아이는 원래 그런 아이이고 이 아이가 자립할 수 있는 성인이 되는 건 온전히 내 책임이란 걸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조용한 ADHD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