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9 : 익숙한 삶의 특별함을 담는 순간 기록가, 소을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다양한 일과 삶의 이야기를 글과 영상을 통해
세상에 전달하는 인터뷰팀 ONF입니다.
한 사람의 ON과 OFF를 함께 조명하며
그 고유한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 ONF의 의미이자 목적입니다.
ON: 직업, 일. 사회적 시선에 노출되는 대외적인 모습의 ‘나’
OFF: 일을 제외한 일상, 휴식, 다소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운 모습의 ‘나’
아이의 시간은 대체로 어른의 시간보다 더디게 흘러간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새로움인 아이에게는 나날이 기억하고 저장할 것투성이다. 그렇게 아이의 눈과 귀가 기록을 멈추지 않는 사이 그들의 매 순간은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된다.
소을 작가와의 인터뷰는 마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펼쳐놓은 것 같았다. 그녀는 자꾸만 내게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말해주었다. 내 안에도 여전히 어린아이가 존재한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이 나를 끊임없이 설득하려는 탓에, 나는 금방이라도 그녀처럼 카메라를 들어 올리고 싶어졌다.
호기심으로 가득한 그녀의 카메라가 그녀의 세계를 품듯, 나 또한 편견 없는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소을 작가의 세계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매일 작가님의 사진을 보며 상상만 해왔는데 실제로 뵈니 기분이 묘하네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필름 사진을 찍는 소을이라고 합니다.
Q. 스스로를 ‘순간기록가’라고 소개하고 있는 작가님의 사진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있나요? 주로 어떤 순간과 어떤 느낌을 포착하려고 하시는지요.
이름 그대로 저의 순간들, 작은 일상들을 담으려고 해요. 발치에 치이는 돌멩이라든가, 떨어져 있는 낙엽들, 물웅덩이처럼 흔하고 당연한 것들을 조금 더 애정 어리게 보고 사진으로 담는 것이죠. 제가 찍는 사진들이 너무도 사소한 것들이라 스스로 사진가라고 칭하기에는 조금 부끄럽더라고요. 어마어마한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순간을 기록하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어서 저 스스로를 그렇게 명명하고 있어요. ‘순간기록가’라고.
- 그렇다면 지금까지 기록한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 혹은 찍는 과정이 유독 기억에 남았던 사진이 있을까요?
제 사진들에는 보통 어느 날의 하루가 담겨있어요. 그래서 유독 기억에 남는 한 컷이 있다기보다는, 어느 사진을 보면 그 사진이 품은 하루가 새록새록 떠오르는 편이에요. 그런데 찍는 과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진들은 몇 있어요. 가끔 손주를 품에 안은 채 행복하게 웃는 할머니의 모습, 어린아이들이 엄마와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저려 카메라를 들어요. 노부부가 손을 꼭 잡는 모습이라던가요. 물론 그들의 모습을 촬영한 후엔 저 혼자 고이 간직하죠.
제가 원래 인물 사진을 즐겨 찍는 편이 아닌데도 그들에게 눈길이 가는 이유는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흘러가는 삶의 모습이 느껴지거든요. 꽃이 피고 지듯이 각각의 시기를 거쳐 조금씩 저물어가는 게 우리의 삶이잖아요. 그런 삶의 흐름 속에서 나이를 불문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애정으로 서로를 보살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피고 지는 삶의 찬란함이 서려있는 것 같아요.
Q. 필름 카메라는 한 컷 한 컷에 신중해야 하기에 어려움이 클 것 같아요. 그런데도 꾸준히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필름 사진은 기다림으로 시작해서 기다림으로 끝나요. 찍고 싶은 것이 보이면 초점을 맞추고 아주 오랫동안 집중해서 바라봐요. 피사체가 주위의 빛, 그림자와 어우러져 가장 반짝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기 위해 숨을 죽이고 기다리죠. 느긋한 시선으로 인내하다 마침내 탁 찍었을 때의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한 컷에 온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그런 기분이에요. 물론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는 없지요. 때로는 기대한 만큼 나오기도 하고, 가끔은 그보다 더 훌륭하기도, 가끔은 생각보다 못 나오기도 해요. 그렇지만 그 모든 결과물을 상상하며 기다리는 과정까지도 참 설레어요. 며칠, 몇 주가 지나서 인화된 필름을 통해 과거의 시간을 다시 들여다보면 그때의 기억이 조금은 채색되어 더 눈부시게 미화되는 것도 있는 것 같고요. 모든 것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보람찼던 어느 하루의 감정을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회상하며 그저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잡고 싶은 마음이에요.
Q. 2024년 6월에 첫 개인전이 열린다고 들었어요. 오직 작가님의 시선으로만 채워질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얻어가길 바라시나요?
아직은 구체적인 컨셉과 사진들이 정해지지 않았어요. 다만 처음 갤러리 담당자께서 연락을 주실 때 맘에 들었다며 보여주신 저의 사진들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느낌의 사진이더라고요. 조용하고 집중하게 되는 그런 사진들이었죠.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고요하며 침묵적인 느낌의 사진들로 채우게 될 것 같아요.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준비해 보려고요.
그 공간을 방문하실 분들이 쉬었다 간다는 편안한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네요.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때로는 나쁜 것들에 눈과 귀와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잖아요. 저의 사진들을 보며 ‘좋은 것 봤다. 잘 쉬고 비우고 간다’는 편안한 감정을 얻어가시길 바라요.
Q. 앞으로는 어떤 사진들을 찍어나갈 계획인가요? 작가님의 사진들로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으신 것도 있나요. 혹은 새롭게 찍어보고 싶은 사진이랄까요.
카메라로 담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찍어보고 싶은데요. 특히 한 번쯤 저의 모습을 멋있게 찍고 싶어요. 사실 한 번 시도했다가 망했거든요(웃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카메라와 단둘이 마주하고 있으려니 참 머쓱하고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언젠가는 가장 나다운 모습을 저의 카메라로 남겨보고 싶어요.
또, 같이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열어보고 싶네요. 누구든지 와서 같이 사진도 찍고 단지 두 눈으로 감상하는 걸 넘어 만져보기도 하고요. 그렇게 그 순간을 다양한 방식과 경험으로 즐길 수 있는 형태의 전시를 한번 열어보고 싶습니다.
소을 작가는 자신의 사진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의 앞에 놓인 커피잔을 가리키며 그녀는 말했다. “누군가는 이걸 보며 고소한 라테를 떠올리기도, 누군가는 따뜻한 온기를 상상하기도 하죠. 커피잔이라는 이름에 갇히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마음들이에요.”
그녀의 말을 듣고 <어린 왕자>의 몇 문장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같은 시각으로 별을 보지 않는다. 여행자에게 별은 길잡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빛에 불과하며, 학자들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이다.
누군가에게는 견딜 수 없는 불확실의 인내가 소을 작가에게는 부푼 기대감이 되어준다. 어떤 이에겐 평생 피하고자 하는 노화의 주름이 그녀에게는 한 삶이 흘러가며 남긴 숭고한 자취이다. 그간 나의 부족한 언어와, 내가 터득한 얄팍한 개념들 안에 가두어 놓았던 모든 것이 차마 하나의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그녀의 사진 앞에서 모조리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Q. 2014년부터 그저 좋아서 필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 소개를 읽었어요. 처음 카메라를 잡게 된 때,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좋아하게 된 때가 언제인지 들려주세요.
2014년에 선물로 토이 카메라를 받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카메라를 만져보고 신기해서 사진을 잔뜩 찍었어요. 그런데, 현상한 사진 36장 중에서 3장을 빼고는 전부 다 까맣게 나온 거 있죠? 알고 보니 손가락으로 렌즈를 계속 가렸던 거예요. 그렇게 온통 까만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아쉬운 마음이 떠나가질 않더라고요. 결국 그 길로 미놀타 700이라는 첫 수동 필름 카메라를 구입하게 되었어요. 너무나 들떠서 시간이 날 때마다 밖에 나가서 정신없이 찍고, 또 다른 사진작가의 전시도 엄청나게 보러 다녔어요. 각자의 생각과 철학, 색깔이 드러난 사진들을 보며 새로운 자극도 많이 받았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사진을 찍는 게 조금씩 무서워지더라고요. 사진을 보는 기준이 높아지면서 더 잘 찍고 싶다는 욕심이 어느 순간 부담으로 작용했던 거예요.
그러던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사울 레이터의 사진전을 보게 되었는데요. 사울 레이터는 그의 작업실 반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뉴욕 길거리의 모습과 사람들의 일상을 그만의 시선으로 담아내요. 그는 그저 자신이 살았던 동네를 담았을 뿐인데, 그 다정한 시선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죠. 그때, 내가 사진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사진을 찍기 이전에 작품부터 만들 생각에 너무 힘을 줬구나. 그때부터 마음을 조금 편안히 먹고 비로소 내가 사랑하는 것들, 좋아하는 일상을 담아내기 시작했어요.
"나는 내가 사는 동네를 찍는다.
친숙한 장소에서 신비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늘 세상 반대편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울 레이터
Q. 벌써 10년 가까이 사진을 찍어오며 작가님이 관심을 두는 것도, 카메라에 담으려는 것들도 조금씩 바뀌어 왔을 것 같은데요. 그 와중에도 여전히 주로 사물, 자연, 하늘과 빛을 가까이에서 담으시는 이유도 궁금하고요.
특정한 것들에 유난히 빠져있던 몇몇 시기가 있었어요. 한때는 하늘 사진을 많이 찍었다가, 어느 날엔 윤슬에만 눈이 향하다가, 또 건물 사진을 잔뜩 남겼다가 고양이도 찍고는 했죠. 그러다 지금은 그간 찍어 온 모든 것들을 두루두루 찍고 있어요.
그때그때 예쁘게 보이는 것들이 확실히 다르기는 해요. 계절이 바뀌고, 또 새로운 생각과 감정의 변화가 찾아오면서 보는 시선도 함께 달라지죠. 오늘 왔던 장소를 내일 다시 오면 전에는 못 봤던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듯이, 일정해 보이는 삶의 틈바구니에서도 항상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존재해요.
제가 특히 자연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인데요. 자연은 하나의 생명이고 매일 흘러가고 있잖아요. 가까이에서 보면 그 세밀한 변화가 정말 보이는 것 같아요. 봄이라고 해서 매번 똑같은 벚꽃이 피고 지는 게 아니죠. 이 꽃은 올해에 처음 탄생한 것이고, 내년에 다시 볼 수 없는 거기 때문에 그 생명력이 아쉽고 귀해서 더더욱 사진으로 남겨요.
Q. 사진 외에도 다른 일을 본업으로 두고 계시잖아요. 본업을 하지 않는 때에 사진을 찍는 시간을 따로 갖는 편인가요? 그렇게 사진을 찍는 시간이 오롯한 자기만의 시간으로 느껴지는지, 아니면 또 다른 일로 느껴지는지 궁금하네요.
평일 낮에는 약국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솔직히 이 일이 막 재밌지는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하는 의무일 뿐이죠. 그래서 퇴근 후에 사진을 찍으러 집 밖으로 나가거나, 휴일 전체를 쏟아 사진을 찍으며 위안을 얻어요. 일을 하며 얻는 스트레스가 퇴근하고 찍는 사진 한 장에서 사르르 녹아내리거든요. 힘들수록 되려 사진을 더 많이 찍으려고 해요. 그런데 아쉽게도 요즘은 그런 시간을 많이 못 가지고 있어요. 제가 겨울엔 쥐약이거든요(웃음). 가만히 있어도 손이 벌벌 떨리더라고요. 얼른 날씨가 풀려서 밖에 나갈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우리는 바라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창가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며, 우리 앞에 놓인 것들을 좀처럼 관찰조차 하지 않으면서 그저 계절이 빨리 지나간다고 불평하는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 시선을 두고 사는 것일까.
가까운 사람들과 우리의 이웃, 하루가 멀다 하고 생에서 멀어져 가는 아이와 부모의 얼굴을 살피는 대신 우리의 마음은 늘 지구 반대편 먼 곳으로 향해있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보면 우리가 진정 사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우리 주변에 감탄할 만한 것이 없었던 게 아니라, 우리가 감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소을 작가의 사진에서도 드러난다. 작고 평범한 것들에도 굴곡이 있고 삶이 있음을 알게 해주는 그녀들의 시선을 통해 본 세상은 그곳이 어디일지라도 온통 영화이며 사진일 것이다.
Q. “조금은 특별한 일상을 나누고 싶기에 사진 찍는 것을 사랑한다”는 작가님의 문장이 참 와닿았어요. 사진을 찍기 전과 후의 일상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진을 찍고부터 놀랍게도 성향이 많이 바뀌었어요. 저는 원래 뭐든 빨리빨리,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는데요. 사진을 찍으면서 말과 생각 모두 느긋해졌어요. 또, 마음에도 큰 여유가 생겼어요. 전에는 없던 마음속의 빈 공간을 활용해서 무엇이든 천천히 관찰하고 음미하려고 해요. 그러면서 무엇이든 다정하게 보게 되었죠. 각각의 사물과 존재들이 지닌 특징이 다 예뻐 보여요.
이를테면 퇴근길에 버스 창에 맺힌 빗물과 가로등 빛이 반사되어 노랗게 번지는 순간도 제법 멋지고요. 비 갠 후 아침에 물웅덩이가 찰랑이는 모습도 참 좋아요.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발견하고 아낌없이 사랑을 나눠주면서 저도 많이 밝아진 것 같아요. 주변에서 모두 놀라더라고요. 매일 우울하던 애가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사진 얘기를 하는 순간의 제 눈이 참 반짝인다고 해요.
계절에 맞춰 울고 피고 지는 익숙한 삶에 위안받으며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일상을 걷고,
머무는 시선과 대화하며 숨을 고르고 셔터를 누른다.
조금은 특별한 일상을 나누고 싶은 달팽이 같은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사랑하고 있다.
-소을
- 사진을 찍고부터 따뜻하고 느긋한 시선으로 누구보다 현재의 시간을 살고 계시잖아요. 그럼에도 여전히 미래에 대한 걱정을 자주 하시는 편인가요?
의외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정말 많아요. 오늘 하루가 처음이고 다가올 내일도 처음이고, 하루하루가 매 번 처음이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걱정이 돼요. 당장 1분 1초 뒤에 무슨 일이 생길지 전혀 알 수 없잖아요.
지난 10월 1일에는 갑자기 쓰러져 꼬리뼈를 다쳤어요. 가을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고 10월은 제가 1년 중 가장 기다리는 달이었죠. 그런데 첫날부터 그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요. 그때 그렇게 두 달이나 일을 쉬고 모든 활동을 멈추게 되면서 인생이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장의 앞날을 모른다는 게 가장 저를 두렵게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래서 더 기대되기도 해요. 내가 오늘 어떤 것들을 보고, 어떤 일을 마주할지 모르니까요. 무수한 우연 속에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고 있어요.
Q. 작가님의 일상도 작가님의 사진들처럼 고요하고 편안한가요. 사진을 찍는 것 말고도 무얼 하며 어떤 시간들을 보내시는지 궁금하네요.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면 잘 떠드는데, 혼자 있으면 거의 말을 안 해요. 사람이 입을 오래 다물고 있으면 치아 자국 그대로 물결 모양이 혀에 남는 것 아시나요? 아마 대부분은 모르시겠죠(웃음). 쉬는 날에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아요. 혼자 사진 찍고, 혼자 얘기하고, 혼자 대답하죠. 그저 가만히 앉아서.
사진을 찍은 이래로는 산책도 즐겨하기 시작했어요. 7시간까지도 걸어본 적이 있는데요. 아이처럼 큰 눈으로 모든 걸 세세하게 눈에 담으면서, 또 사진으로 담으면서 걷다 보니 힘든 것도 모르겠더라고요. 숨어있는 새끼 고양이를 발견해서 인사를 나누거나, 돌담길을 유심히 살펴보거나, 새로 지어진 다리를 한참 구경해요. 가끔은 노래 없이 걷기도 하는데요. 스트레스가 심한 날이면 사람 소리를 피하고 싶어서 가사 없는 노래를 틀어놓고 나만의 공간으로 쏙 도망치지만, 오히려 너무 오랫동안 혼자였던 날에는 사람 소리가 그리워지더라고요. 아기들이 뛰어다니고 사람들이 조잘대는 소리를 가만히 듣다 보면, 이 세상에 속해 있다는 묘한 안정감이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줘요.
Q. 사진 외에도 찰나의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는 다른 방법이 있나요? 작가님에게 ‘기록’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요.
사진을 찍기 전에는 글도 많이 썼어요. 일기장에 혼자 끄적이기도 하고요. ‘빈칸 문래’라는 곳에서 사진 전시 이전에 글 전시에 먼저 참여하기도 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글을 잘 안 쓰게 되었어요. 저는 그저 흘러가는 계절이 아쉬워서 슬픈 마음을 글로 풀어냈을 뿐인데, 주변 사람들은 우울한 일이 있냐며 걱정하더라고요. 허허. 무엇보다도, 사진을 찍으면 사진 한 장이 모든 글과 언어를 대체해 준다고 느끼면서 글을 덜 남기게 되었어요. 날짜와 덧붙이는 설명이 없어도 사진은 그때의 감정과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대부분의 순간을 사진으로, 그리고 가끔 인스타에 사진과 함께 올리는 짤막한 글들로 기록하는 중이에요.
제가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명확해요.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아까운 마음이 들거든요. 이 기록들이 내가 살면서 남기는 유일한 흔적이잖아요. 살면서 만나는 각 순간들이 그저 사라져 버리게 두고 싶지는 않아요. 삶을 사는 건 결국 이 세상을 대하는 저만의 고유한 시선을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의 시선 끝에 닿은 것들을 기록하고 남겨야 후에 돌아봤을 때 ‘내가 이런 것들을 이런 마음과 눈으로 바라봤구나’하고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저 막연히가 아니라, 실재했던 무엇으로요.
목정원 작가는 그의 책에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무언가를 바라보고, 이미 본 것과 지금 본 것을 연결하며, 그렇게 펼쳐가는 의식의 지형도로 생을 꾸리고, 자신을 구축한다고.
<Editor's Note>
어렸을 적엔 내 사진이 참도 많았다. 바지를 거꾸로 뒤집어쓴 채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고 해맑게 웃는 사진, 카메라 가까이 얼굴을 들이민 사진, 머리핀이 떨어져라 열심히 달리는 사진. 엉망진창의 순간들을 담은 사진에는 나의 모든 모습을 사랑하던 부모님의 미소가 켜켜이 쌓여있다. 나의 웃음과 나의 성장으로 하루하루의 힘을 얻던 그들의 보람도 담겨있다.
어린 왕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줄 알았던 자신의 장미가 실은 수만 개의 꽃들 중 하나였다는 걸 알고 실망한다. 그런 어린 왕자에게 여우는 그의 꽃이 다른 꽃들과 구별되는 이유를 알려준다. 그 꽃은 바로 어린 왕자가 길들여온 꽃이었던 것이다. 길들인다는 건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다. 소중히 물을 주고 지켜본 이상 그 장미꽃은 어린 왕자에게 훨씬 커다란 의미를 갖게 된다.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는 작은 것들에 좀처럼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 쉽게 지나치고 쉽게 외면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카메라를 든 부모처럼, 그림일기를 쓰기 위해 하루의 재미난 일을 기억 창고에서 꺼내는 아이처럼, 바쁘게 지나가는 시간 속 우리 주위의 작은 아름다움들을 관찰하고 세세히 품어주는 순간 우리의 하루는 수만 개의 날들 중 하나가 아닌 단 하나뿐인 오늘이 된다.
결국 기록의 시작은 우리의 삶을 제대로 사랑하기 위한 시작이며, 내가 사랑했던 삶을 기억하기 위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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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