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 에너지를 베풀기 위해, 댄스조아 대표 정은희님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다양한 일과 삶의 이야기를 글과 영상을 통해
세상에 전달하는 인터뷰팀 ONF입니다.
한 사람의 ON과 OFF를 함께 조명하며
그 고유한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 ONF의 의미이자 목적입니다.
ON: 직업. 일, 사회적 시선에 노출되는 대외적인 모습의 '나'
OFF: 일을 제외한 일상, 휴식, 다소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운 모습의 '나'
정은희 대표님은 댄스 강사, 댄스 학원 대표님, 댄스 크리에이터, 한국 셔플댄스 협회의 협회장, 교수 등 댄스 분야에서 다양한 갈래의 시작을 일궈내셨습니다.
춤이라는 큰 꽃턱을 중심으로 다양한 꽃잎을 피워내신 이야기를 ONF가 들어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어떤 춤이든 쉽게 알려드리는 유튜브 춤선생 심바입니다.
1. 심바라는 예명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심바는 영화 <라이온 킹>에 나오는 캐릭터의 이름이에요. 저한테 배우던 학생들이 지어준 별명에서 시작한 건데, 제가 공연 준비를 할 때 조금 엄한 편이라 그런지 학생들이 힘들어도 저한테 얘기를 못하는 거에요. 뒷모습만 봐도 포스가 느껴지는 게 광야를 바라보는 <라이온 킹>의 심바 뒷모습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어진 별명인데 꽤나 마음에 들어서 아직까지 쓰고 있습니다.
2. 대학교는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댄스를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댄스를 시작한 건 5-6살 때쯤부터였죠. 집에 혼자 있을 때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틀고 거울 앞에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춤추면서 놀았어요. 그때는 춤이 친구 같은 존재였어요. 그렇게 쭉 춤을 좋아하다가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춤으로 갈 수 있는 학교가 없다는 현실에 한번 부딪힌 거죠. 그때는 댄스로 갈 수 있는 학과가 없었어요. 당시에 학교 선생님께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점이 비슷한 연극영화과를 추천해주셔서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게 되었죠. 연극영화과에 들어가고 난 뒤에 춤을 춘 게 아니라, 춤을 추고 싶었는데 관련된 학과가 연극영화과라고 생각해서 가게 된 거였어요. 그런데 그 안에서 무대 매너, 다양한 공연 스타일이나 퍼포먼스도 배우면서 오히려 영역이 넓어진 것 같아요. 이때 배웠던 것들로 나중엔 공연 기획도 하고 실제로 공연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차선의 선택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보시는 편인가요? 종종 최선이 좌절되면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차선이 남아있는데도 말이에요. 차선은 최선이 좌절되었을 때 그럼에도 원하던 결과에 가까워질 수 있는 선택지잖아요.
은희님께서도 차선의 선택으로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셨지만, 이때 배우신 것들로 후에는 연기가 가미되어있는 공연을 여실 수 있었어요. 최선이 아니라고 해서 악의 경계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의 선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3. 처음엔 댄스 강사로서 일하시다가 클럽을 만드시고 클럽의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학원을 열고, 운영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본인만의 학원을 운영하며 삶의 변화가 있었나요?
우선 댄스조아 강남점까지 열게 된 과정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는 22살 때부터 댄스 강사를 시작했고, 26살 때 댄스조아라는 이름을 만들어서 온라인 상에서 클럽을 창단했어요. 학원이라는 곳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니까 본격적으로 개원을 하기 전에 수강생을 먼저 모아야겠다는 생각으로요. 그리고 점점 클럽의 규모를 키워서 사람을 모아 학원을 열었죠.
저는 200만원을 가지고 한 건물의 지하에서 시작했어요. 처음엔 물건도 주워서 쓰곤 했었는데, 조금씩 키워나간 거에요. 지하에서 지상으로, 그 다음 강남으로 분점을 차렸어요.
이렇게 외부적인 환경은 점점 탄탄해져가는 와중에도 가치관 만큼은 늘 똑같았어요.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 운영마인드와 결부되는 부분인데,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장소나 인테리어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오가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죠. 사람들 덕에 무언가를 시도할 때 함께할 수 있다는 힘이 굉장히 커졌다는 거, 그게 제일 큰 거 같아요.
4. UC 버클리에서 댄스 강연을 하셨잖아요. 어떻게 그런 기회를 얻으셨는지, 그리고 정은희님에게 그 기회는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궁금합니다.
사실은 기회를 얻은 게 아니라 기회를 만든 거에요. 오랜만에 미국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미국 스튜디오에서 수업을 받으려고 하다가 ’내가 수업을 해보면 어떨까’로 생각이 바뀐거에요. 근데 그 분들이 저란 존재 자체를 모르시잖아요. 그래서 영문으로 된 PPT랑 영상 자료를 만들어서 돌렸어요. 기대와는 다르게 답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아서, 반 포기 상태로 그냥 출발하자 했는데 딱 공항가는 길에 연락이 왔어요. 그렇게 클래스를 열게 된 거에요. 이 경험으로 단순히 ‘큰 무언가를 이뤄냈다’는 생각보다는 도전에 대한 큰 용기를 얻고, 깨달았죠. ‘생각만 했던 걸 도전을 하니까 해볼 수 있구나’
최인철 교수님의 <프레임>이라는 책이 떠올라요.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프레임을 리프레임해라.”는 메시지를 담고있는 책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는 소제목을 가진 책이니만큼, 내가 세상을 프레임하는 방식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은희님은 기회는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찾아가는 것’으로 리프레임하신 건데요. 정설처럼 여겨지는 타인의 많은 말들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그것들을 리프레임하여 ‘나’의 삶에 적용시키는 방법도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주체적으로, 나의 기준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요.
5. 춤이라는 것을 업으로 삼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실 건가요?
제일 중요한 건 끈기인 것 같아요. 특히 춤이라는 분야에서는 그저 멋있어 보여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근데 저는 단순히 박수받는 게 좋아서 시작했다면 금방 포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무대에서는 화려한 모습만 보이는데 그 일부를 지키기 위해서 해야될 게 너무 많거든요. 또, 안정적인 삶이 아니에요. 대중들에게 보이는 댄서들은 상위 1%도 아니고 상위 0.001%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일부만 화려하고 실제는 춤을 추기 위해 고깃집이나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경우도 많아요. 저도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처음에 200만원으로 학원을 열 정도로 그렇게 풍족하지 못했거든요. 그때를 겪으면서 느꼈죠. 가장 중요한 건 끈기다. 초심을 잃지 않고 내가 이걸 어떻게 발전시킬지에 대한 열망이 있는 것. 이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6. 본래 취미였던 것이 직업이 되었어요. 이에 따른 장단점이 있을까요?
어렸을 때 그냥 신나서 내가 춤을 추고 싶을 때 추는 것과, 직업이 되었을 때와의 확실한 차이는 책임감이에요. 어떻게 춤선생이 됐냐는 얘기를 많이 물어보는데 정말 자연스럽게 취미가 특기가 되고, 특기가 직업이 된 케이스에요. 그런데 지금은 직업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춤을 춰야하고, 혹은 공연을 해야되기 때문에 연습을 해야되고, 안무 의뢰를 받았기 때문에 제작을 하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재밌을 수는 없어요. 취미였을 땐 모든 게 재미있었고 음악이 나오면 항상 춤추고 싶고 신났는데, 지금은 음악이 나오면 거기에 맞춰서 뭘 해야될 것 같고, 새로운 안무가 나오면 이 안무를 촬영해야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죠. 약간의 압박감과 책임감이 들어가니까 예전처럼 온전히 춤을 즐기기는 어려운데, 책임감이 배가 된 만큼 그 후에 남는 성취감도 배가 되었어요.
가장 성취감을 느끼셨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제가 느낀 성취감이라 하면 춤 선생님으로서와, 공연을 하면서 이렇게 두 종류인 것 같아요.
춤 선생님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한 중학생 친구가 상담을 받으러 왔어요. 자폐증을 가진 아이였어요. 춤이 치료 목적으로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서 댄스 학원에 방문했다고 해요. 그 친구가 저한테 춤을 1년 정도 배웠는데, 성격을 포함해서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어요.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될 만큼 호전이 되었다고 해요. 이렇게 사람이 바뀌어가는 걸 보니까 제가 주는 영향이 누군가에겐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그게 춤선생으로서 가장 성취를 크게 느꼈던 순간인 것 같아요.
그리고 공연적으로 봤을 때는 저한테 배우러 오신 분들 중에 극심한 장애를 가지거나 마음이 불편한 분들이 모인 단체가 있었어요. 30분 정도 계시는 단체인데 각기 사정이 있으셔서 마음이 아픈 분들이셨어요. 같이 연습을 진행하면서 그 분들이 본인들처럼, 혹은 본인들보다 더 힘든 분들을 찾아가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어요. 공연을 지속하다보니 이 분들의 이야기로 공연을 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극장에서 개개인의 히스토리를 담은 공연을 했어요. 그때는 너무 뿌듯해서 전원이 눈물을 흘렸던 것 같아요. 모든 게 제가 춤을 가르치기 때문에 함께할 수 있었던 순간이니까, 정말 너무 행복했죠. 이게 제가 춤을 가르치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해요. 단순히 저만을 위한 게 아니라 제가 느끼는 에너지를 베풀고 싶었거든요.
7. 유튜브에 70대 수강생분과 함께 등장하신 것이 인상깊었어요. 나이대를 포함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치는 직업이신 것 같은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가장 크게 얻은 점은 무엇인가요?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군의 수강생분들과 직간접적으로 소통하고 배우면서 세계관이 많이 열린 것 같아요. 말씀하신 수강생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 분은 정확하게 48년생이시고 건강 문제로 하시던 일을 모두 포기하신 분이었어요. 어떤 게 건강을 즐겁게 되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시다가 유튜브를 보시고 저를 찾아오셨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게, 춤을 알려주는 건 저인데 오히려 제가 배운 게 더 많은 거에요. 그 분은 제게 인생을 알려주신 거죠. 일화 중 하나가, 셔플댄스협회를 만든 것도 그 분께서 권유를 해주셔서에요. 전국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으려면 자격증도 만들고 협회를 만드는 방식이 좋을 것 같다고요. 또, 돈도 중요하지만 건강도 중요하다와 같은 인생 전반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씀도 굉장히 많이 해주셨어요. 저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기도 하고, 나이 드신 분들이 말씀하신 게 틀린 게 없다고 생각을 해서 삶의 자세에 대해서 많이 배운 거 같아요.
8. 직업을 제외하고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한 가지 일을 선택해서 오랜 기간 쭉 함께하고 있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또 하고 싶은 일들을 만들어가고 진행중인 사람. 또 저를 표현할 수 있는 멘트라고 생각하는 건 “생각대로 이뤄지는 중”이에요. 굉장히 좋아하는 멘트이면서 또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 질문은 자기가 바라보는 OFF는 어떤 모습인지 여쭤보는 질문이었어요. 그런데 ON과 OFF는 너무 긴밀하게 엮여있기 때문에 OFF의 고유한 모습을 바라보기 힘든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질문을 살짝 바꿔보았습니다.
직업을 제외한 자기소개. 자기소개를 할 때 넣는 정보는 남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은 모습, 혹은 내가 느꼈을 때 가장 자랑스러운 무언가를 이야기하잖아요. 직업과 같이 이미 정의되어있는 부분 말고도 자신을 정의해보는,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모든 게 온전한데도 자신이 온전하다고 생각되지 않을 때, 나의 조건이 없어졌을 때도 자신을 사랑할 의무를 가진 모두이기에 정해진 것 외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9. 인생의 모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무언가를 베풀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게 모토에요. 고등학생 때 입시를 겪으면서 방황했을 때 제일 고민이었던 게, 뭘 하고 싶은지 도통 떠오르지가 않는 거에요. 그래서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내가 어떤 일을 하던 10년 뒤, 20년 뒤에 일단 나를 보고 누군가가 꿈과 희망을 갖고 이 직업, 이 사람처럼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이후로 쭉 모토로 삼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10. 차리신 학원이 분점도 생기며 커리어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시는데,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계속 시도하는 이유는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고 바뀌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발맞춰서 나아가야 된다고 생각해서에요. 저는 춤을 가르쳐주는 사람이고 운영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계속 세상의 흐름에 맞춰서 저도 변화해야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커리어,마인드 모두 안정적이지만 머릿속은 계속 가동 중이거든요. 또 어떤 것을 해야될까는 생각으로요. 그래도 너무 앞서 나가지는 않는 게 제 장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특별히 걱정을 안 할 수 있는 것 같고, 일단 한 단계씩만 나가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11. 댄스라는 큰 줄기를 가지고 다양한 갈래로 나아가보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해보고 싶으신 일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춤 하나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영역으로 최대한 제 능력을 뻗어보고 싶은데, 나중에는 아카데미가 아니라 나이를 더 먹어서도 춤을 배울 수 있는 평생교육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100세, 12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춤은 10-20대만 춘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은데 춤은 아까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정신, 정서, 신체적인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오히려 나이를 먹을 수록 춤이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춤을 더 체계화시키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가지고 공연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그 한 명이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래서 그 사람의 인생을 조명해줄 수 있는 그런 공간, 교육원을 만들고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Editor’s note>
은희님과의 인터뷰 현장에서 “춤이 나고, 내가 춤인데.”라는 이야기에 가장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오랜시간 잘 닦여온, 반짝거리는 칼 한 자루를 떠올렸습니다.
‘무뎌짐’이라는 감정만큼 무서운 게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요. 시작할 땐 엄청나게 소중했던 무언가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감정이 무뎌져 더 이상은 소중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듯한 경험은 한번쯤 해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은희님께서 끊임없이 춤이라는 큰 영역 내에서 많은 시작을 만들어내시는 게 칼을 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합니다. 춤을 너무나도 사랑하시는만큼 그에 대한 무뎌짐을 경계하고자요.
어쩌면 시작은 반짝거림을 잃어가는 스스로에게 반짝임을 선사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신의 소중한 인생 역사 중 한 페이지를
진심을 다해 기록해 드립니다.
Editor: 홍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