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구 다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소 깨-끗히 해드리겄어요. "
여사님은 두 손을 꼭 모으신 채 전무님과 내게 연신 인사를 하셨고 그 모습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편하게 쉬시면서 여행이나 다니셔야 할 나이에 왜 청소일을 아직까지 하고 계신 걸까.. 주말도 없이 말이다. 누구에게 함부로 동정의 감정을 가지는 건 안되지만 그냥 마음이 좋지 않았다.
" 여사님 이번 주말에 오시면 등본이랑 통장사본 제 자리에 올려놔 주시면 되세요. 필요한 거 있으시면 저한테 언제든지 연락 주시고요. "
급여 신고를 위해 서류를 요청드렸고, 최대한 불편함 없이 잘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에 친절히 안내해 드렸다.
이후 여사님께 종종 문자가 왔다.
' 비닐 봉다리가 얼마 없어요. '
' 락스가 다 떨어졌어요. ' 등등
또 어떤 날은 마포걸레를 널어놓은 사진만 보내시곤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조금 의아했지만 다음날 바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철물점에서 받은 꾸깃꾸깃한 영수증과 함께 '마포대 1자루 6,000원'이라고 적힌 쪽지가 책상에 올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오피스 지역이라 주변에 철물점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데 이걸 대체 어디서부터 들고 오신 걸까.. 생각하니 내심 걱정도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 역시 이 아줌마가 청소를 잘해 바닥에 때가 안 지잖아. 때가. 안 그래 공 차장? "
사장님이 이렇게까지 흡족해하시는 모습은 입사이래 처음이었다. 내가 봐도 그 전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느껴졌다.
" 오늘 급여 나가는 날이지?
이따 밥 먹고 와서 결재하자고- "
아주 신이 나신 모습으로 사무실을 나가셨고 나도 오전에 급여 준비를 마무리하고 싶어 서둘러 업무를 보았다.
정규직원 외에도 프리랜서와 일용직 근로자들이 있어 인적사항을 등록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었다. 그중 청소 여사님은 일용직 근로자로 신고되었고 주소를 입력하려 지난번 내고 가신 등본을 확인했는데.. 순간 내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들여다본 주소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 xx 롯데 캐슬 프레지던트 108동 1202호 "
이곳은 매매가 20억 원을 호가하는 초역세권 고급 아파트 단지이다.
부동산에 대해 무지한 내가 이곳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퇴근길에 지나게 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야근이라도 하게 되는 어두운 밤이면 높게 솟은 탑 사이로 퍼져 나오는 불빛들의 모습이 이름 그대로 성(캐슬)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추운 밤 이곳을 지나며 ' 나도 언젠가 저 성에 들어갈 수 있을까? ' 생각에 잠기곤 했었다.
캐슬의 회상도 잠시, 불현듯 여사님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첫 만남, 주고받았던 문자, 마포걸레, 꾸깃한 영수증... 순간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며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지만 곧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 누가 누굴 도와주며, 누가 누굴 마음 아파한 것인가? '
동시에 이 상황을 이해해 보려는 나의 뇌세포들이 로또 당첨 후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해 주던 친구의 말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친구는 로또에 당첨되면 우선 회사를 때려치우고 집 한 채를 산 뒤 몸을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 파트타이머로 전향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비추어 예상해 보자면, 여사님은 가벼운 운동쯤으로 여기시는 청소일에서 조차 그 능력을 인정받아 여기저기서 스카웃을 받고 계신 상황이신 것 같았다.
캐슬이라는 부와 스카웃이라는 명예를 다 이루셨지만 겸손함은 절대 잃지 않는... 청소 여사님을 나의 롤모델로 삼고 살아가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