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은 사내 다과 모임이 있는 날이다. 말이 다과지 배달 어플로 온갖 배달 음식들을 다 시켜놓고 먹는 날이다. 이 모임을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어감으로 보면 내가 반대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경리 업무의 무게는 당연히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이 회사는 직원대비 경리가 한 명뿐이라 매일 처내야 하는 업무 플러스 각종 증명서 발급 요청에서부터 온갖 자질구레한 질의까지 모두 대응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저 연차가 몇 개 남았나요?"
"xx회사 세금계산서 발행 되었나요?"
"2시에 손님 오시기로 했는데 오시면 얘기 좀 해주세요"
"이면지함이 안 보이는데... 없어진 건가요?"
"오늘 간식 뭐예요?"
"사장님 기분 안 좋아 보이시는데 무슨 일 있었어요?"
업무가 과중된 회사의 경리 담당자는 날이 갈수록 표정이 썩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 내 표정과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직원들이 이유 없이 꼴 보기 싫어지기 시작했으니까.
' 차장님~ 오늘 간식 리스트 전달드립니다. 부탁드려요! '
금요일 점심시간이 지나면 이런 문자 메시지와 함께 배달 어플 장바구니 캡처본이 도착한다. 그때부터 짜증의 서막이 열리는 것이다. 10만 원어치를 어떻게 그렇게 다양하게도 시키는지 자잘한 사이드에서부터 소스, 음료수까지 품목이 더럽게도 많다. 바빠 죽겠는데 그 사진을 보며 하나하나 장바구니에 옮겨 담고 있으면 정말 ' 이 거지새끼들 ' 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회사 명의로 된 계정을 하나 파서 거기에 담아 놓으라고 하고 싶었지만 알아보니 배달 어플은 휴대폰번호로만 가입인증을 하기 때문에 회사 명의로는 가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 노가다로 매번 간식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간식이 도착하면 모든 직원이 우르르 카페테리아로 몰려나온다. 카페테리아는 공간을 더 넓어 보이게 인테리어를 한 것인지 문 같은 것이 따로 없고 기둥 같은 조형물만 듬성듬성 박혀 있어 그 안에서 떠드는 소리나 음식 냄새 같은 것이 온 사무실로 퍼져 나온다. 그리고 가장 재수가 없는 것은 그 망할 카페테리아가 내 자리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금요일은 한주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업무가 몰리는 경우가 많고 마감을 해야 할 일들도 많은데 꼭 그 바쁜 오후시간에 내 자리 앞에서 시끌 거리는 걸 보면 정말 짜증이 하늘까지 솟구치지 않을 수 없다. 그 시간에 회사에 전화라도 오게 된다면 단체로 웃는 소리 때문에 한쪽귀를 막고 통화를 해야 할 지경이다.
그래서 나는 이미 회사전화는 내 휴대폰으로 돌려놓은 지 오래이고 간식 시간이 되면 주섬 주섬 이어폰과 겉옷을 챙겨 나갈 채비를 마친다. 건물 밖을 나서기만 해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매주 떠돌다가 알게 된 곳이 있는데 나만의 아지트 같은 곳이다. 옆옆건물 1층의 'REST ROOM'. 화장실은 아니고 '휴식 방'이란 곳이다. 이름에 걸맞게 들어가면 약간의 피톤치드 같은 향이 나면서 모든 소파가 벽을 바라보고 있다. 소파 간 칸막이도 제법 높아서 옆 사람도 잘 보이지 않는다. 난 이곳에서 이어폰을 끼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동영상을 보며 쉬곤 한다.
이렇게 잠깐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또 어김없이 셀프 반성의 시간이 돌아온다. 그 아무 죄 없는 사람들... 누가 날 이런 성파*로 만든 것일까... 퇴사라는 면죄부를 받으면 다시 태어 날 수 있는 것일까... 우선 오늘 금요일이니 저녁에 뭘 먹을지부터 생각해 보자... 보통 이 순서로 마무리 짓곤 터벅터벅 사무실로 향한다. 어쨌든 한주도 무사히 버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