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례는 강한 여인이다. 늘 최선을 다하고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돌본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하고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이럴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아마도 자신을 희생해서 나타나는 결과들에 만족해서 아닐까 생각한다.
시동생들을 총각시절 집으로 데려와서 일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심지어는 결혼을 시켜서
자립할 수 있는 기간까지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
서중과 갑중은 결혼하여 2~3년간 옥례의 집에 머물며 생활하다가 분가를 하였다.
당연히 시골에서 상경하는 친척과 지인들은 옥례의 집을 환승역처럼 거처서 서울 생활을 하였다.
가끔은 주변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들이 있다면 그들도 기꺼이 집으로 들여서
먹이고 재워서 어려운 시기를 모면하도록 허락하여 주변의 덕을 쌓았다.
나 혼자 살기도 힘들고 가족 챙기기도 힘든 시절에 옥례의 <긍휼지심>은 계속되었다.
옥례가 늦은 밤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창신동 시장 골목은
아직도 물건들을 팔지 못한 몇몇 상인들이 이빨 빠진 불빛 사이에 떨이를 위하여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 유독 리어카에 많은 배추를 싣고 있는 상인이 옥례의 눈에 띄었다.
"오늘은 물건이 많이 남았네요." 말하자 상인이 대답했다. "그러게요 오늘은 장사가 안됐어요."
옥례는 상인에게 리어카를 끌고 " 따라오세요" 말하고 앞장을 섰다.
10여 분 남짓 거리의 집에 도착하여 옥례가 아이들을 불렀다.
"선옥아 선태야 나와서 함께 짐을 옮겨라."
'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야심한 시간에 이게 무슨 일인가?
잠자리에 들려고 준비하던 가족들이 이방 저방에서 어안이 벙벙하여 문을 열고 나왔다.
여럿이 대문 앞에 세워진 리어카에서 두세 포기씩 배추를 들어 옮겨서 부엌 앞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 배추를 쌓았다.
옥례가 상인에게 대금을 지불하자 상인은 감사의 표시로 90도 인사를 두세 차례 하더니
함박웃음을 짓고 집 앞에서 멀어져 갔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기뻤을까?
채소가 하루 지나면 상품가치가 떨어지는데 이렇게 떨이를 하고 돈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새털처럼 가볍고 하늘을 날 것 같았으리라.
옥례의 행동에 갑자기 집안은 어수선해졌다. 옥례는 일을 절대로 미뤄두지 않기에 오밤중에 김장을 해야 한다.
가족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역할을 나누어 배추를 다루었다.
드럼통의 물을 다라에 붓고 배추를 씻고 헹구어 소금을 뿌려가며 드럼통에 차곡차곡 채웠다.
아구까지 가득 배추를 절이고 주변 정리를 끝내니 새벽 2시가 되었다.
"내일은 배춧속을 넣어야 되니까 일찍들 가서 자"
옥례는 가족들을 먼저 재우고 부엌에서 내일 배춧속을 준비한다.
새벽녘까지 부엌에서 무채 써는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귓가에 앉는다.
도대체 이 여인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자신감이 있다. 더욱이 여러 사람의 지지를 받으면 역량이 넓어진다.
땅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한다.
옥례는 오늘도 자신과의 삶의 터전에 한 삽을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