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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도 발이 아프면 그냥 고철덩이다

머리를 안 쓰면 몸이 고생한다

by 고추장와플

파리 오기 전 날까지 많이 바빴다. 이것저것 한다고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 부랴부랴 가기 전 날, 잠들기 1시간 전 배낭에 대충 손에 잡히는 아무거나 집어넣었다. 사실 평소엔 나름 꼼꼼하게 짐을 싸는 편이었는데, 여행을 떠나는 주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머리를 쓰지 않고 대충 짐을 싸서 떠난 나는 결국 피를 보았다.


잡히는 대로 가방에 대충 넣은 플래슈즈 하나, 슬리퍼 하나. 운동화를 깜빡했다.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 파리에 가는 걸 알면서, 지난해에 파리에 왔을 땐 하루에 40000보 이상 걸었던 걸 아직 잊지 않았으면서 달랑 플랫 슈즈와 슬러퍼를 들고 온 바보 같은 여자는 어제의 강행군에 뒤꿈치에서 피가 나고 발바닥에 물집이 생겼다.


발이 아파 절뚝거리고 돌아다니니 에펠탑이고 뭐고 아무 감흥이 없다. 게다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프랑스에 라이벌의식 느끼는 벨루치언니는 "그래봤자 고철덩이인데 뭣하러 올라가. 에펠탑은 원래 밖에서 보는 게 제일 잘 보이지. 기념으로 남기게 사진이나 찍고 가자."라며 티켓을 사서 위로 올라가는 것을 거부했다.

사이좋게 에펠탑 앞에서 사진 한 장 씩 찍고 에펠탑 관광 종료

세느강을 따라 좀 걷자고 한다. 진짜 죽을 맛이다. 사실 징징거리는 것을 질색하는 나인데, 어제 28000보를 플랫 슈즈신고 입 다물고 그냥 걷다가, 오늘은 정오가 되기도 전에 벌써 12000보를 돌파한 상황에서 결국엔 죽는소리를 하게 됐다. 정말로 발에 물집생기고 발꿈치에 피가 나서 못 걷겠으니 어디 들려서 운동화를 하나 사 가야겠다고.


하필이면 그때 지나가던 곳이, 샹젤리제 근처였다. 어제 콘서트를 보고 값비싼 부티크들을 밖에서 바라보았던 그곳 말이다. 이러다 루이비통에서 운동화 사게 생겼네. 머리를 안 써서 생돈을 날리게 생긴 나는 급 기분이 나빠졌고, 발바닥에서 피가 철철 나도 운동화에 50유로(8만 원) 이상은 안 쓰겠다고 결심했다.


샹젤리제에 무슨 브랜드가 있었지? 예정에 없던 지출을 머리를 안 쓴 덕에 하게 되었으니, 저렴한 가성비 브랜드로 사고 싶다. 그러다 모노프리(Monoprix)라는 상점이 생각났다. 이거다, 빙고! 이곳은 무인양품과 비슷한 프랑스의 생활잡화, 의류 상점이다. 거기에 가면 저렴한 신발이 있겠거니 하고 갔더니, 예상대로 저렴이 신발이 있었다. 참고로 이곳에는 한국에 자잘한 기념품으로 사 갈 물건들이 비싸지 않은 가격에 판매되니 한번 들러봐도 좋을 것 같다. (광고 아님. 저짝에서 나에게 돈 준 것 한 푼 없음)

프랑스의 무인양품 모노프리 (Monoprix)


https://g.co/kgs/3h8MzBz


신발도 40프로 세일하는 것을 골라 겟. 신발을 바꿔 신으니 천국에 온 것 같다. 지옥에서 천국행을 38유로 (5만 원)로 해결했다(레자 아니고 진짜 가죽인데 5만 원이면 득템이다). 휴, 다행이다. 신발사기를 천만다행이다. 이 날, 우리가 총 걸은 걸음 수는 35000보였으니, 플랫 슈즈 신고 계속 다녔으면 내일 목발 짚고 돌아다닐 뻔했다.

오늘의 교훈: 아무리 바빠도 짐 챙길 때 머리를 쓰자. 그렇지 않으면 여행 가서 개고생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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