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나를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작은 사건 사고는 있었어도, 이렇게 쉽게 여행이 끝나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파리는 나를 끝까지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서로 반대방향으로 가야 했던 벨루치 언니와 헤어지고, 장거리 버스 정류장인 Bercy까지 가야 했는데, 환승을 하는 도중 바꿔 타야 하는 노선이 아예 운행을 하지 않았고, 지하철 입구도 아예 폐쇄를 했다. 직원을 찾아,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가 물었는데 다른 호선의 지하철을 타고 가장 가까운 역까지 가서 걸어가란다. 그 말은 꼭, "내 알바 아니니 알아서 가쇼."로 들렸다. 나 몰라라 하며, 알아서 가라는 지하철 직원. 어쩐지 파리가 이렇게 그냥 보내 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러분도 이런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조배터리와, 구글맵, 튼튼한 다리만 있으면 어떠한 역경도 이겨낼 수 있으니 너무 걱정 마시라.)
아오, 또 걸어?
다른 호선의 지하철로 가 보기로 한다.
지하철 직원도 밉고 파리 지하철도 밉다. 그 다른 호선의 지하철도 결국 운행을 안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목적지 근방의 모든 지하철역이 폐쇄가 된 모양이다.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출발시간까지 3시간 정도가 남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가도 못 가고, 저렇게 가도 못 가지만 나에게는 나의 튼튼한 다리가 있다.
그냥 걸어가야겠다 생각하고 역에서 나와버렸다. 45분을 걸어가야 한다고 구글에 뜬다. 아, 진짜 마지막 날이라 안 걸을 줄 알았는데 오전에 수다 떨다 버스 정류장 놓쳐서 걸어가고, 지금은 지하철이 운행을 안 해서 걸어가고. 그냥 걸을 운명인 가 보다. 그래도 30000보 걸어도 끄떡없는 튼튼한 내 다리가 고맙다.
45분을 걸으며 파리 시내와 점점 멀어져 간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는 아빠, 엄마랑 함께 유모차로 산책 나온 아기, 사람들이 살아가는 진짜 파리의 모습을 보았다. 관광객들이 가지 않는 공원에서 어느 집 아이의 생일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지하철 운행을 하지 않은 덕에 (그래도 밉다, 파리 지하철!) 진짜 파리지엔 라이프를 지켜보며 푸릇함이 가득한 파리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출발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고, 마지막으로 커피 한잔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시원한 그늘에 앉아 브런치 여행기를 쓴다. 멀미약도 먹어서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올 때는 직행버스였는데, 취소가 되어 결국 브뤼셀에 먼저 도착한 후, 거기서 다시 열차를 타고, 기차역에 세워 둔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 출근까지 일곱 시간 남았다. 으악.
그동안 파리 여행기를 함께 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실은 여행기록으로 잊지 않기 위해 저 좋자고 쓴 글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즐겁게 읽어 주시고, 함께 여행 온 것 같다는 말씀을 해 주셔서 저도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간 여러 글들이 다음과 브런치에 노출이 되고 엄청난 조회수가 나온 글 들도 있었습니다.
아무나 읽을 수 있는 흥미 있고 쉬운 이야기를 쓰고 싶은 저에게는 정말로 보람되고 즐거운 여정이었습니다. 이탈리아여자와의 파리 여행기를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