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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벼룩시장, 마르셰 오 쀠스에 가다

벼룩시장 Marché aux puces de Saint-Ouen

by 고추장와플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2박 3일 여행을 마치 일주일 여행 온 사람처럼 하루에 25000보 이상 걸으며 여행을 했다. 어제는 심지어 30000보를 돌파했다.


몽마르트 구경, 쇼핑몰, 콘서트 감상, 박물관, 피크닉, 힙스터들의 성지 걷기 등 이제 웬만한 건 다 했다. 파리는 각종 각종 박물관이 넘쳐나지만 우리에겐 한 번으로 족하다. 그럼 무엇을 할 것인가. 파리의 동묘, 파리 최대규모의 벼룩시장인 마르셰 오 쀠스 (Marche aux puces, 번역한 그대로, 벼룩시장이란 뜻임)에 가기로 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몽마르트에 있었다. 근처에는 파리의 크루아상을 맛볼 수 있는 파리지엔들이 줄 서서 먹는 빵집이 있어 밖에 놔둔 벤치에서 길바닥 시식을 하고, 빵을 다 먹은 뒤 맞은편의 커피집에서 커피를 한잔 했다. 호텔 조식은 직접 수제로 만든 크루아상이 아니다. 얼어있는 공장 생산 제품을 오븐에 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품질 프랑스 빵을 시식하고 싶다면 호텔 조식 대신, 호텔 근처의 베이커리에서 크루아상을 시식하길 권한다.


밥을 먹으며 어떻게 갈 것인가 생각해 본다.


초록색으로 선을 그은 곳 까지가 파리이고, 이 벼룩시장은 정확히 말해서는 파리 경계의 생투앙(Saint-Ouen) 지역에 있다. 지하철 13 호선 가리발디 역(Garibaldi) 역이나 지하철 4 station호선 Clignancourt (발음 조심해야 한다. 끌리녕꾸흐) 역이다. 정신 줄 놓고 있다 끌리녕꾸흐가 들리면 빨리 내리시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호텔 근처에 버스정류장이 있기에,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한다.

시도는 좋았으나 결국 안 된 로또

정류장까지 가면서 수다를 떨다가 정류장을 놓쳤다. 그리고 다음 정류장까지 가면서 이것저것 구경하다 다시 두 번째 정류장도 놓쳤다. 버스 타시는 분들은 정류장 표지판이 정말 눈에 보이지 않게 작게 표시되어 있으니 집중해서 찾아야 한다. 중간에 로또집이 나와서 거기 또 들어가 만약 이기면 반띵을 하기로 벨루치 언니와 약속을 하고 로또 하다가 세 번째 정류장도 지나쳤다.


이쯤 되면 거의 덤 앤 더머급이다. 벨루치언니가 구글맵을 보더니,


Abbiamo già camminato per quasi metà distanza. A questo punto, andiamo camminare fino al mercato. È meglio.

우리 벌써 거의 반쯤 걸었어. 이럴 거면 그냥 끝까지 걸어가자.


라고 하였고, 운동화도 샀는데 못걷겠다는 말은 하기 싫어 결국 끝까지 걸어갔다. 50분을 걸어, 결국 오전 12시 되기도 전에 15000보에 도달했다. 벨루치언니랑 여행을 하면 이것이 여행인지, 극기훈련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생투안 벼룩시장. 오전인데도 벌써 사람들이 복작복작하다. 새 상품은 싫어하지만, 이런 벼룩시장 구경은 좋아하는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다. 이 건물뿐만이 아니라, 벼룩시장은 마치 동묘처럼 계속 골목골목 이어져 있었고, 을지로와도 느낌이 비슷했다.


고미술품, 앤티크 가구만 취급하는 거리도 있었고, 앤틱식기도 많이 보였다.

오래된 식기들, 수집품, 구제 옷부터 책까지 없는 것이 없다. 이곳의 장점은 눈요깃거리가 많고, 독특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이 많다는 점이다. 그림이나 인쇄된 물품들은 사진을 찍으면 안 되고, 오래된 구제 드레스 같은 경우는 만지면 안 된다고 적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럼 이곳의 최대 단점은 무엇이냐 하면, 관광객을 봉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구경만 할 것이 아니고 무엇을 살려고 한다면, 십중팔구는 바가지를 쓸 확률이 높다. 이곳에서 구입할 사람은, 사전조사를 철저하게 해서 그 물품이 얼마 정도에 팔리는지 시세를 잘 알아보거나 아니면 떨이처리를 하는 것을 사길 바란다. 솔직히 가격이 너무 후덜덜하다. 파리 프리미엄을 얹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이 가격이면 정말 못 됐다.

이곳은 한 건물이 아니라, 구역이 골목골목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있으니 적어도 반나절은 잡아야 구경을 할 수 있다. 오늘 구경에서 2유로짜리 목걸이 펜던트와 2유로짜리 나비넥타이를 구입했다. 둘 다 떨이처리하는 상자에서 주웠다.


앞에서 언급한, 눈 뜨고 코 베이는 파리의 바가지를 피하는 법 편에서 말한 2유로인데 10유로로 뻥튀기를 해서 가격을 요구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요즘은 구글 번역도 정말 잘 되어 있으니 가격 뻥튀기하는 것에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https://brunch.co.kr/@gochujangwaffle/287

아들은 그렇게 파리 벼룩시장발 나비넥타이를 매고 초등학교 졸업식에 갔다. 엄마의 깊은 빡침이 들어있는 나비넥타이다.



벨루치언니와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2박 3일을 너무 심하게 알차게 보냈다. 느낌상으로는 일주일 같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마지막 만찬을 먹기 위해 호텔 근처로 이동했다. 그래도 프랑스에 왔는데 한 끼는 프랑스음식을 먹어야 할 것이 아니냐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소고기 스테이크를 구워 잘라 나오는 Picanha와 블랙페퍼 크림소스, 감자튀김과 제철채소 구이를 시켰다. 고기는 정말 부드러웠고, 블랙퍼퍼 크림소스가 아주 훌륭했다. 사실 내가 서양식을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파리까지 왔는데 한 끼는 프랑스식을 먹어줘야지 않겠나. 이제 곧 헤어지는데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하고 디저트까지만, 딱 디저트까지만 먹자고 합의를 보고 피스타치오 크림으로 채워진 밀푀유를 시켰다. 라즈베리소스와 함께 나왔는데 밀푀유는 바삭바삭했고, 피스타치오크림은 묵직하지만 달지 않은 맛이었다. 라즈베리 소스의 달짝 새콤한 맛과 잘 어울렸다.



헤어짐은 항상 아쉽다. 이렇게 우리는 총알같이 지나간 2박 3일을 함께 보내고, 서로 부둥켜안고 인사를 나누고 곧 만나자며 헤어졌다. 서로 지하철 방향도 정 반대라 더 아쉽다. 국적이 다르고 말도 다르지만, 같이 있으면 항상 웃게 되고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는 나의 친애하는 극기훈련 여행메이트 벨루치언니.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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