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페라고 하면 아무도 못 알아들음 주의
길거리 음식으로 벨기에에는 와플이 있고, 프랑스에는 크렙(crêpe)이 있다. 킹크랩의 그 크랩이 아니다. 우리가 크레페라고 부르는 프랑스의 빈대떡이다. 그러나 크레페라고 하면 아무도 못 알아들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정확히는 크헵에 가까운 발음으로 목 뒤를 긁어내는 ㅎ 발음이다. 프랑스의 R 발음은 이러하다. 아주 피곤한 발음인데 크헵과 크렙의 중간발음이다.
설탕이나 잼을 넣고 달게 먹기도 하고, 치즈와 햄, 계란을 넣고 짭짤하게 먹기도 한다.
벨루치언니와 마래지구를 걸으며 어느덧 스마트워치의 걸음 수는 30000보를 향하고 있었다. 운동화를 중간에 샀기에 망정이지 플랫 슈즈 신고 다녔으면 정말 죽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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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벨루치언니가, 걷다가 크렙집 있으면 먹으면 딱이겠다. 당이 떨어져서 그런지 단 것이 땡기네. 라고 한다.
프랑스에 와서 아직 크렙을 먹지 못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골목을 돌았는데 크렙 가게가 나타났다. 오, 이 언니 말만 하면 다 짠하고 나타나는 거야? 그럼 로또 좀 어떻게 좀 해 보지.
잠깐 서서 아저씨의 빈대떡 굽는 솜씨를 봤는데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전 에피소드들에서 프랑스의 상술에 대해 계속 말해왔던 것처럼, 이 아저씨도 상술이 그냥 아주 예술이다. 누가 크렙을 사면, 웃으며 마실 것도 드릴까요? 자동 발사다. 이런 곳은 물 장사도 같이 하기 때문에 음료까지 팔면 일석이조인데 아저씨가 아주 너무 유능하시다.
나는 밤크림 (Crème de marron)이 들어있는 달달한 크렙을 선택했다. 한 입 물었더니, 밤의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가 올라온다. 양갱과 비슷하지만 피넛버터를 뜨듯한 빵에 올렸을 때처럼 녹아내린다.
벨루치언니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메뉴에 없다고 툴툴댄다. 뭘 원하냐 물었더니 크렙 수제뜨 (Crêpes Suzettes)란다. 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예전에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다고 했다. 메뉴에 없는데, 아저씨에게 진짜 없는지 물어보겠다 한다. 메뉴에 없으면 없는 거 아님?
그러나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장사천재아저씨는, 없지만 된다고 한다. 자기가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바로 후다닥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이야, 진짜 프랑스인들 정말 장사 잘하네. 상술이 보통이 아니다.
꼬냑과 오렌지로 만든 술, 그랑 마니에(Grand Marnier)를 팬에다 뿌리더니 라이터로 불까지 붙였다. 벨루치언니를 위한 특별한 불쇼 까지 선 보여 주었다. 이 장사천재 아저씨는 천재가 맞다. 어쩜 이렇게 메뉴에도 없는데, 즉흥적으로 만들어 줄까?
언니가 한입 먹어보라 해 먹어 봤는데 알콜 냄새는 불쇼로 날아가서 느껴지지 않았고, 아저씨가 넣어 준 달달한 오렌지 마멀레이드와 오렌지 술, 그랑 마니에의 풍미가 진했다.
가게 앞에 작은 테이블이 있어 앉아서 먹으며 아저씨를 주시했는데, 정말 벌떼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우리가 여기서 머무른 시간이 20분 정도 되는데, 그동안 대략 15명 정도가 와서 크렙을 사갔어. 1인당 5유로씩 치면, 야, 저 아저씨 정말 부자 되겠다."라고 벨루치 언니가 부러운 듯 말했다.
정말 프랑스의 장사수완은 대단하다. 장사천재 아저씨, 엄치 척!
혹시라도 파리의 마래지구( Le Marais)에서 걷다가 장사천재 아저씨의 크렙을 맛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구글맵 지도를 첨부한다.
불쇼를 했던 크렙의 이름은 크렙 수제뜨 (Crêpe Suzette)이다. 메뉴에는 없지만 가격은 7.5유로. 혹시 불쇼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적어본다.
La Charrette à Crê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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