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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밥의 높이만큼 가득한 사랑

밥그릇이 넘치도록 사랑해

by 고추장와플


며칠 전 첫째와 200킬로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 2박 3일을 밥 먹고 하루 종일 자전거만 탔는데 불평불만 한 마디 없이 열심히 페달을 구르던 첫째를 보며 마음을 좀 놓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콩알보다 작은 발가락과 빼꼼거리는 작은 입술을 보며 신기해하던 것이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첫째의 발은 어느새 나의 발 보다 커졌다. 목소리는 걸걸해지고 코밑이 점점 시꺼메지고 있다. 3일간의 짐이 배낭에 다 들어있어서 무거울 텐데, 엄마가 더 가벼운 배낭을 메고 가라고 하며 자기가 더 무거운 걸 지고 가겠단다.


많이 컸다, 내 아기.

요즘은 나의 개인사에서 격동의 시기라 할 수 있다. 내 자신은 새로운 일들을 진행중이고 첫째는 중학교에 들어갔으며, 둘째는 형아 없는 학교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 벨기에는 새 학기가 9월에 시작한다. 첫째는 초등학교친구들이 단 한 명도 없는 중학교에 배정되었다. 첫날은 시무룩하더니 둘째 날부터는 친구들을 사귀어 학교에서 탁구를 쳤다고 자랑을 했다.

사실 나의 걱정은 첫째보다는 형아의 껌딱지 둘째였다. 첫째는 책임감이 강하고, 세상 혼자 다 짊어지고 가려는 첫째병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말도 많고 마음에 담아두는 일이 없다. 둘째는 막내병이 있다. 이제 곧 8살인데 말보다는 "히잉"이 더 편하고 형이 다 해결해 주는 것에 익숙하다. 이제 둘은 같은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 해결사 형도 없고 같이 놀 친구도 스스로 찾아야 한다.

학기가 새로 시작할 즈음 대성통곡을 하며 "형아 없으면 난 어떻게 해"라고 하더니, 오늘 학교에 데리러 가서 몰래 관찰을 했더니 다른 친구와 잘만 놀고 있었다.

평소에 첫째는 엄마를 보자마자 학교에서 1교시부터 마지막 수업까지 무엇을 했는지 자동발사다. 안 물어봤는데. 둘째는 이런 따발총 형 때문인지 집에 갈 때까지 말 한마디 없었다. 엄마가 "학교 오늘 어땠어"라고 물어봐도 "괜찮았어", 이 한마디가 다였다.

첫째가 중학교에 가고 나서는 엄마와 함께 단 둘이서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온다. 막내는 말이 많아졌다. "오늘 학교에서 누가 어쨌는데, 진짜 웃겼어"라던가 오늘 수업에서 뭘 배웠는지에 대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늘 마음을 알 수 없어 애가 타던 엄마였는데, 첫째의 빈자리가 오히려 둘째의 말문을 활짝 열었다.

오늘은 집에 가는 길에 "엄마가 해준 삼계탕이 먹고 싶어",라고 말하는 둘째. 평소에 뭘 먹고 싶다는 이야기도 잘 안 하는 둘째가 본인이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닭 한마리를 압력솥에 넣고 한 시간을 끓였다. 그렇게 하면 살이 아주 부드러워져서 술술 넘어간다. 아이들은 특히 밥을 말아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술술 넘어가니 먹기가 쉬워서 좋아하는 것 같다.

첫째는 이제 6킬로 되는 거리를 혼자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데 날씨가 아침,저녁으로 제법 추워져 감기에 걸렸다.

"엄마, 나 감기 걸렸는데 삼계탕 먹었으면 좋겠어."

찌찌뽕.

둘째도 삼계탕 먹고 싶다고 했는데 둘이 통했다.

옛다, 너희가 좋아하는 삼계탕에 고봉밥이다. 밥 그릇이 넘치도록 꽉 눌러담은 고봉밥처럼 너희를 향한 나의 사랑도 넘치는 걸 꼭 알아줘.

변화는 새로운 성장의 시작이야. 변화라는 것은 불편하고, 내키지 않아. 하지만 늘 같은 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어. 변화가 자연스럽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좀 더 높이, 한 뼘 더 그렇게 크는거야.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오늘의 내 마음을 글로 꼭 남겨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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