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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윤슬 Jul 09. 2024

내 건축세계에 불을 지른 너는

A에 대한 이야기


어떤 장면이 있다. 나도 웬만큼은 진득하게 작업에 집중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A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A는 늘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인 채 마치 달라붙은 것 마냥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리고 그 장면은 날이 더워지기 시작한 무렵부터 내 심장을 때리기 시작했다.


질투와 부러움에는 존경이 섞여있다. 나는 이걸 A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잘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A보다 훨씬 더. A는 분명 A, 아니 A+를 받았을 것이다. 내가 나아지고 싶은 시기에 우연히 A가 내 주변에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 모습이 정말 어떤 인상을 나에게 주어서 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번 여름방학을 그야말로 불태우고 있다. 새로운 프로그램 공부는 물론, 지난 프로젝트에서 아쉬웠던 점을 디벨롭 중이고, 주 3회 발레학원에 다니며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물론 내 기준에서의 열심히란 평균보다 약한 강도임을 알고 있지만, 내가 무심하게 흘려보낸 여름방학들 중에는 가장 잘 살고 있다.


A 때문에… 덕분이라는 표현이 더 좋겠다.





A는 늘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했다. 주로 클래식을 들었는데, 때로는 잔잔한 라디오를 듣기도 했다. 나는 보통 건축작업을 하다가 화가 나서, 내 화를 대신 내주는 듯한 시끄러운 락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했다. 나는 주로 헤드폰을 쓰는 쪽이었지만, A는 스피커로 들어도 괜찮다고 했다. 아, 배려심까지 좋았다.


작업에 골몰한 뒤통수에서는 열이 나는 듯했다. 가끔은 그 뒷모습이 점점 쪼그라드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해서, A의 일을 대신해 줄 수 없음에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다. 난 그저 한숨을 함께 쉬어주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었지만 그것이라도 작은 위로가 되기를 조용히 바랐다.

이런 A가 나는 가끔 정말 묵묵히 일하는 소처럼 보이기도, 깊은 산속에서 홀로 수련하는 도인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나라면 도저히 저렇게까지 일 할 수는 없어,라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물어보면 그냥 하는 거지 뭐,라는 나로서는 믿을 수 없는 대답이 돌아오고는 했다.

나는 일이 즐겁지 않으면 도저히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반항적인 태도로 일을 했고, 일이 좀 재밌어지기 시작할 때부터 진득이 일을 했다. 나는 그게 그저 내 스타일이라는 핑계로 내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은 ‘그냥’, ‘자연스럽게’ 시작만 하면 어떻게든 흘러가는데 그걸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A처럼 일단 자연스럽게 앉는 것부터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나도 어느 순간 일을 당연한 듯 시작하고 있었다. 원래 이렇게 쉽게 되는 것이었을까, 내가 변하고 싶어서 가능했을까, 굳이 A였기 때문에 닮고 싶어서 그랬을까는 모르는 일이지만 상관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의 일을 자연스럽게 시작해서 당연히 하고 있음을 A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말한 적 없어서 A는 모르겠지만, 어디 구석에 처박아 뒀던 ‘내 일에 대한 책임감’과 ‘일을 자연스럽게 시작하는 법’이라는 내가 잃어버린 인생의 두 해답을 되찾아와 준 사람이 바로 A였다.


나는 그런 A가 참 고맙다. 가끔 촌철 같은 말로 나를 아프게도 했지만, 결국 돌아보면 그건 상처가 아닌 발판이 되어있었다. 부러움과 질투가 버무려진 감정은 존경과 사랑을 애써 가리고 있던 껍데기일 뿐이었다. 나는 지금 나를 위해서도 여름방학을 열심히 살고 있지만, A를 위해서 살고 있기도 한 것 같다.







A는 사실 나보다 먼저 건축의 길을 걷고 계신 우리 아버지를 통해 구체화되었지만, 분명 한 사람의 모습은 아니다. 건축이라는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친구들,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의 모습, 닮고 싶어서 좋아했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파편처럼 모여 A라는 하나의 큰 존재로 내 옆에 늘 머물러 있었는데, 이제야 그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나는 요즘 나 좀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라며 기뻐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그 이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았고 나는 이제야 그들을 진정으로 닮아가는 중이다. 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건 나에게만 좋은 일이 아니다. 결국 내 주변인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준다. 그들이 A가 되어 나에게 영향을 준 것처럼 말이다.


고마운 나의 A에게 보답할 방법은 결국 나도 누군가의 A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살고 싶은 사람에게 힘을 주는, 오랫동안 깨지지 않을 A가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묵묵히 내 일을 하나씩 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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