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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쉬운 줄 알았더니 머나먼 길이었다 24화

여자와의 사랑은 믿지 않는다

by 현동인 Jan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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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다가 실연을 당해본 사람들은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 것이다.
가슴이 갈갈이 찢어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면서 식음까지 전폐한다.


하루종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세상을 향해 시선을 돌려도 주위는 온통 암흑천지로 보일 뿐이다. 그동안 많은 여자들과 만나고 사귀고 헤어졌었지만 이번 세실리아와의 결별은 그 어떤 여자와의 헤어짐 보다도 훨씬 더

큰 충격이었다.실연은 아무리 예방주사를 맞는다 할지라도 면역력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한 달 이상을 실연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세상과 담을 쌓고 은둔했다.
그나마 신께서 망각이라는 선물을 인간에게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을 실연의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시간이 약이라고 했듯이 한 달 여가 지나자 나는 다시 기운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지만 실연의 상처는 본인의 의지만으로는 잘 치유가 되지 않았다.오로지 시간만이 약이었다.

세실리아와의 결별을 통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어떤 여자든지 앞으로는 너무 깊이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여자와의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실리아와 헤어진 지 일 년여의 시간이 흐르자 신기하게도 여자에 대한 그 어떤 추억이나 감정도 사라질 즈음 그녀와 또 우연하게 만나게 되었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성당이었다.

그날은 세례식이 있었던 날이었다. 

나는 봉사자로 이곳저곳을 바쁘게 오가다가 세실리아와 정면으로 마주쳤던 것이다.
세실리아는 대모를 서기 위해 무심코 성당에 왔었는데 나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한때 결혼까지 약속했을 정도로 사랑했었고 세상 끝날 때까지 영원하자는 여자와의 조우... 정말 낭만적이지 않은가?영화나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을 내가 직접 겪게 될 줄이야.

 그러나... 나를 본 세실리아는 순간적으로 동공이 커지면서 엄마야!~~ 하고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여자의 행동을 보고는 나 또한 미간이 찌푸려지고 말았다.내 앞에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은 여자가 정녕 내가 그토록 사랑했었던 여자였단 말인가?부모님이 반대하면 나와 함께 도망가서 같이 살자던 여자였단 말인가?
도대체 나란 남자를 얼마나 마주치기 싫었으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잠시 노여운 얼굴로 그녀를 내려보다가 내 할 일들을 하기 위해 즉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날 성당 내에서 세실리아와 몇 번 더 마주쳤지만 나는 전혀 모르는 여자 대하듯 무관심으로
그녀 옆을 지나쳤다.세실리아 역시 나의 그런 행동에 안심하는 듯 보였다. 이제 우리들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세실리아와의 일을 겪으면서 나는 여자와의 사랑은 정말 하찮은 것이라 느껴졌다.

여자와 한창 사랑에 빠져 있을 때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조차도 아깝지 않다고 여겼었는데 이렇듯 너무도 쉽게 식어버리는 것도 여자와의 사랑이라니.그날 이후로 이제 내 인생노트에서 세실리아란 이름은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버렸다.그로부터 얼마 후, 청년회에서 나와 친하게 지내고 있던 동생뻘 되는 요셉이 내게 물었다.

형!~~ 전에 형과 결혼까지 하려고 했었던 여자 이름이 000였어?

응 그런데 왜?

아니? 이런... 형도 잘 아는 내 친구 베드로 있잖아? 걔가 형 애인이었던 000과 결혼한다고 하네?

요셉의 말을 듣고는 나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했었다. 아니? 세실리아는 그녀 어머니께서 수녀원에 보내겠다고 내게 말하지 않았는가?
근데 수녀원은 고사하고 하필이면 베드로 같은 난봉꾼 녀석에게 시집을 보내겠다니.
베드로... 같은 교우지만 만약 내 여동생이 이런 남자와 결혼하겠다면 도시락 싸들고 말리고 싶은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인물도 참 그렇지만 천박한 성격에다 술

좋아하지... 여자 좋아하지... 게다가 노름꾼이면서 하는 일은 노가다지.나쁜 남자 올림픽 대회가 있다면 단연 우승을 차지하고도 남을 녀석과 결혼을 한다고?그래!~나 싫다고 떠났으면 정말 멋지고 좋은 남자와 결혼하겠다면

나도 남자답게 축하해 주마!~~

그런데 하고 많은 남자들 중에서 고작 그런 녀석을 만났단 말이야?나도 모르게  쓰디쓴 헛웃음이 흘러나왔다.더 기가 막힌 것은 얼마 후 베드로 그 녀석이 결혼을 하기 전, 신부님과 면담을 하기 위해 성당에 왔었는데 자기가 결혼할 약혼녀라고 씩~씩 웃으면서 세실리아를 내 앞에 데려와서 인사를 시켰다는 것이다.나는 그때 오빠처럼 나를 잘 따르는 여자 단원과 둘이서 한창 재밌게 하하 호호 웃으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베드로가 자기 약혼녀라고 내게 데려와서 인사를 시켰으니

이건 도대체 무슨 시트콤인가 말이다.

베드로 이 녀석은 자기 약혼녀인 세실리아와 내가 결혼까지 약속했었던 애인 사이였다는 것은
까맣게 모른 체 그저 싱글벙글 웃고 있었지만 나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친 여자는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 불안에 떨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만약 내 입에서 베드로 녀석에게 얌마!~이 여자는 나와 결혼하려고 했었던 내 애인이었다 녀석아!~~
라고 말했다면 아마도 이 결혼은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말없이 여자의 눈을 응시했지만 나의 입은 그녀에 대한 비웃음으로 입꼬리가 올라있었다.

그래... 날 버리고 선택한 남자가

세상에 둘도 없는 이런 개차반 같은 남자였단 말이지?
남자 보는 눈이 이렇게 저렴한 줄은 미처 몰랐었는데 너란 여자와 헤어진 건 정말 다행이었구나.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여자와 베드로 둘을 번갈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보내는 분명한 비 웃음이었다.

그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축하한다라고 말한 후 나는 내 옆에 있는 여자 단원과 또다시 하하 호호 웃으며 재밌게 하던 얘기를 이어 나갔다.
그런 나의 행동이 믿기지 않은 듯, 성당 계단을 오르며 여자는 몇 번이고 나를 뒤돌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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