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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쉬운 줄 알았더니 머나먼 길이었다 23화

떠나는 배는 잡을 수 없다

by 현동인

내 손을 뿌리치고 마을버스를 타고 떠나버린 여자의 뒤에서 나는 황망하게 서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진 부모님들이 끝까지 반대하면 차라리 도망가서 같이 살자던 여자이지 않았던가?
너무도 믿었던 여자에게서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자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불안하였다.
여자가 나를 떠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실리아의 집에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하지 말라는 여자 어머님의 냉랭한 목소리만 내 귓전을 때렸다.

전화기를 들고 있던 나의 손에 힘이 쫙 빠지면서 경련이 일었다.
여자 부모님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분들이 성당도 안 다니는 무신론자들이었다면 나에게 했던 푸대접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지만 여자의 어머님은 신앙심도 깊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시는 신앙인이셨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신학교에 보내서 신부로 만들려는 아주 신심 깊은 분이셨는데 내가 결혼승낙을 받기 위해 세실리아 집에 인사를 하러 갔을 때 내 앞에서 딸도 수녀원에 보낼 계획이니 다른 여자를 찾으라고 하던 분이었다.

수녀원에 가고 싶다는 말을 세실리아한테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지만 남매를 모두 하느님께 바칠 생각이니 자기 딸을 포기하라고 하신 여자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는 나도 마음이 흔들렸었다.
구태여 수녀가 될 여자를 좋아해서 결혼하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 둘을 떼어놓으려고 서울서 청주라는 먼 도시로 이사까지 하려고 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여자는 헤어질 마음이 조금도 없었는데 세실리아와 나 사이에 균열이 생겼던 것은 내가 여자의 부모님들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였지만 그것이 발단이 되어서 순식간에 여자와의 감정이 악화되고 말았다.
한 달 동안 냉각기를 갖자는 약속도 내가 먼저 어기고 여자를 만났다가 감정이 더 악화되는 상황이 되었기에 마음이 다급해진 것은 바로 나였다.
내게서 마음이 떠나가는 여자를 붙잡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집으로 전화를 해 보았자 여자의 어머님만 전화를 받았을 뿐, 세실리아는 나를 피했다.
직장으로 전화를 했어도 내 목소리를 들으면 여자는 즉시 전화를 끊었다.

내 노력으론 여자를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야 나는 별로 믿지도 않는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했다.
평소에는 가지도 않는 새벽기도까지 나갔다.
급기야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하느님만을 믿고 따르는 한 자매님을 찾아가서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었다.
그 자매님은 내 대부의 누님이셨다.
나보다 세 살 정도 연상이었는데 성격이 워낙 깐깐하지만 성당에서 교우들의 신앙지도를 하고
바른말을 잘하는 분이라서 나이 많은 성당 교우들도 무척 어려워할 정도로 굉장히 권위적인 여자였다.

내 대부의 누님이셨기에 평소에도 나와는 좀 친하게 지냈었는데 내가 그녀에게 내 상황을 전하고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자 그녀는 나를

무척 못 마땅하게 여겼다.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만 믿고 사는 자기에게 와서 사귀던 여자와 틀어지게 되자 하느님께 기도해 달라는 나를 매우 한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마지못해 나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해 주겠노라 하였지만 뒤돌아서서 문을 나서는 내게 그녀는 비수 같은 한 마디를 내 등뒤에 꽂았다.

흥!!~~ 꼴에 장가는 가고 싶은가 보지.

대부누님의 비아냥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을 때 나는 마치 날카로운 칼이 내 등을 찌르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아니?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대부의 누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었단 말인가?
아무리 나란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기로서니 그냥 빈말이라도"기도해 주마"라고 하면 안 되었단 말인가?
나중에 내가 신앙에 대해 큰 회의를 들게 한 것도 소위 열심한 신앙인들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 대부분 하느님께 대한 신앙심은 모범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그들 어디에서도 겸손한 마음들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부누님의 비아냥 거리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기도를 부탁했었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다.
결혼까지 약속했었던 세실리아와 틀어지게 되자 무엇보다 더 크게 실망을 하신 분은 바로 내 어머니셨다.
당신의 오랜 기도로 정말 마음에 드는 여자와 아들이 결혼하게 되었다고 그렇게도 기뻐하셨는데
그런 여자와 헤어지게 되었으니 그로 인한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깨끗하게 여자를 잊어야 할지...

아님 좀 더 노력해야 할지...
내가 한창 여자에 대해 갈피를 못 잡고 있을 즈음, 신내림을 받고 철학관을 운영하고 있던
동네 후배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나 보다 겨우 한 살 아래였지만 동네에서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랐고 초등학교 후배였기에

그 친구는 항상 나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 후배와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의 내 상황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후배는 내 생년월일과 여자의 생년월일을 수첩에 적고는 점을 보았다.

천주교 신자가 금기시하는 점을 우연찮게 후배를 통해 보고 말았는데 그 당시에는 물에 빠져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심정이었기에 후배가 하는 대로 그냥 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후배는 차분한 표정을 짓더니 지금 그 여자와는 어렵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자기가 아무리 찾아보아도 장모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말은 결혼할 수 없다는 뜻.
그래서 여자와 순식간에 틀어졌단 말인가? 내 배필이 될 수 없는 여자여서?

아무리 21세기 최첨단 과학문명 시대에 살고 있지만 남녀관계는 그 어떤 과학논리로도 설명되지 않는 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아무리 열심히 하느님께 기도했어도 그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던 나로서는 후배의 말에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헤어졌었다.

안 되는 여자는 안된다는 진리를 깨달았던 나였기에 세실리아와의 인연도 여기까지인 것으로
여기고 그냥 잊어버리기로 하였다.
물론,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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