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쉬운 줄 알았더니 머나먼 길이었다 22화
사랑은 유리잔처럼 쉽게 깨진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큰 모멸감을
느낀다면 어떤 때일까?
물론, 사람들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 있겠지만 결혼할 여자의 집에 인사하러 갔는데 장인 될 분이 나를 보자마자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돌아 앉는다는 것은 나란 남자는 사윗감은커녕 말 한마디 건넬 가치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모멸감을 느꼈지만 나는 무릎을 꿇고 앉은 체 그대로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아버지의 행동에 당황한 여자는 제발 인사 좀 받아주라고 다그쳤지만 여자의 아버지는 마치 망부석이 된 것처럼 TV만 볼뿐,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아무리 세실리아가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써 보아도 가능성이 없다고 여겼는지 엄마의 도움을 받아보려 하였지만 여자의 엄마 역시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세실리아의 엄마는 자기 딸의 단점들을 열거하면서 나에게 포기하고 자기 딸 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날 것을 집요하게 설득하였다.
세상 어느 엄마가 딸이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남자 앞에서 자기 딸의 흉을 보면서 포기하라고 하겠는가.
그 정도로 나란 남자는 여자의 부모들에게는 사윗감으로 절대 받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자의 아버지께 받은 모멸감에 더해서 여자의 엄마로부터 받았던 수모는
내 인생일대에서 가장 치욕적으로 느껴졌다.
사윗감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기로서니 이렇게까지 여자의 부모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실리아와 나의 사랑전선은 변함없이 굳건하였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했듯이 언젠가는 여자의 부모님들도 우리들의 사랑을 인정해 주리라 믿었다.
만약 세실리아의 부모님이 우리 두 사람을 끝까지 반대하면 세실리아는 차라리 도망가서 같이 살자는 말까지 내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과는 달리 세실리아 부모님들은 너무나도 완고하였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고 했듯이 우리 둘을 떼어놓기 위해 서울에서 청주로 이사까지
할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는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오기 시작하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세실리아가 자기 부모님들에 대해 서운한 말을 쏟아냈어도 나는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 두 사람을 떼어놓기 위해 청주까지 이사할 계획이라는 말을 듣게 되자 부모님들에 대해 세실리아에게 서운한 말을 하게 되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아무리 여자부모님들의 반대가
심했다 할지라도 묵묵히 감내했어야 했는데 내가 서운한 감정을 말하자 세실리아와 다투게 되는 일이 잦아졌고 굳건했던 우리들의 애정 전선에도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연애하는 중에는 여자의 부모들이 아무리 서운하게 대했다 할지라도 절대로 여자의 부모를 탓하는 말을 해서는 안되었지만 나는 그만 그 진리를 깜박 잊고 말았던 것이다.
거대한 둑도 작은 쥐 한 마리에 의해서 무너지듯이 세실리아와 자주 다투게 되자 그렇게 굳건했던 우리들의 사랑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세실리아는 우리들의 결혼을 좀 더 생각해 보자며 한 달 동안의 냉각기를 먼저 제안했는데 나도 만날 때마다 다투는 것보다는 그게 낫다고 여기고 그녀의 말에 동의를 하였다.
그렇게 한 달간의 냉각기를 갖기로 합의를 했지만 보름여의 시간이 지나자 세실리아가 보고 싶어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결국, 내가 먼저 합의를 어기고 세실리아의 퇴근시간에 맞춰 그녀가 살고 있는 수유리 마을 버스정류장에 기다려서 만나게 되었는데 세실리아 역시 나를 보고 싶었었는지 그녀도 처음에는 반갑게 대해주었다.
그런데, 얼떨결에 세실리아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보게 되었는데 내가 못 보던 반지였다.
웬 반지냐고 내가 물었지만 여자는 그저 웃기만 할 뿐, 무슨 반지인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순간, 속에서 질투심이 끓어올랐다.
나를 만나지 않고 있는 동안에 행여 다른 남자가 생겼는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흔히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연인이든, 부부든,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 그것은 서로 간의 믿음이다.
믿음이 깨지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사상누각이 되기 때문이다.
철옹성 같았던 세실리아와 나의 사랑도 그녀의 부모님들로 인해 자주 다투게 되면서 그 자리를 불신과 의심이라는 불청객이 비집고 들어오자 그만큼 사랑은 떠나가기 시작했다.
세실리아가 반지에 대해 말을 하지 않자 그녀를 보고 미소 띠었던 내 얼굴은 순식간에 의심으로 인해 일그러지고 말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사납게 낚아챈 후, 무슨 반지냐고 다그치자 세실리아는 깜짝 놀라서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나의 모습에 그녀는 무척 당황한 표정이었다.
세실리아는 곧 냉정한 얼굴로 변하더니 내 손을 뿌리치고는 마침 도착한 마을버스를 타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떠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