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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그리고 뒤편

- 일상 에세이

by 흰칼라새

서두르고 바쁘게 살았던 수많은 날,

쉴 새 없이 지나온 시간의 틈과 뒤편에서

또 다른 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날과 시간의 울렁임 속에서

부산한 마음으로 걷고 뛰고 있는

무심한 지금의 나를 말없이 기다린다.


어느 날 삶의 속도가 제어되었을 때

숨 가쁜 나는 평온한 나를 만난다.

지치고, 불안하고, 할퀴어진 나에게

또 다른 내가 기쁜 목소리로 말한다.


"드디어 만났다!"


나는 나와 오래도록 천천히 걷는다.

같은 나지만 다른 우리는 말없이 웃는다.


벤치에 앉아 우리는 문장 하나를 꺼내든다.


"경쟁과 불안과 분노와 속도는

그림자를 추월하려는 것과 같다."


수많은 날과 시간의 틈에서

믿어주고 기다려준 또 다른 나에게 고맙다.


애쓰며 정신없이 걸어온 뒤편에서

삶의 곡선을 만들어 준 나에게 고맙다.


내가 나에게 이렇게 고마울진대

자신을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한 명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근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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