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남편이 한국에 오고 나서, 나의 자취방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신혼집이 되었다.
천호동 다가구 월세 13만 원의 원룸이 나의 신혼집이 될 줄이야...
가난한 부부가 서울에 신혼집을 구하게 되니 두 가지가 변했다.
첫째, 집에서 밥을 해먹기 시작했다.
반년이 넘도록 반 이상 남아 있던 식용유가 중국인 남편이 한국에 오고 단 2주일 만에 동이 났다.
둘째, 한 공간에서 모든 것을 같이 했다.
방이 하나이기에,
그 방에서 같이 먹고
그 방에서 같이 자고
무엇을 하든 그 방에서 같이 했다.
설령 다른 일을 하더라도, 한 방에 있기 때문에 늘 같이 있게 되었다.
그게 너무나 좋았다.
한 공간에서 같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주말에는 맥주 한 캔 들고 집 바로 옆 한강에서 데이트를 했다.
그렇게 보증금 1천만 원 & 월세 13만 원의 천호동 원룸에서 1년 반을 살다가,
우리는 보증금 7천만 원의 신림동 전셋집으로 이사를 갔다.
18평 방 3개의 반지하 빌라...
우리에게는 궁궐 같았다!
그동안 사지 못했던 식탁, 침대, 냉장고, 세탁기 등을 신나게(?) 사댔다.
방 한 개는 침실, 중간방은 옷방 그리고 작은방 하나는 게스트룸으로까지 꾸몄다.
친구들을 초대해 집들이도 했다.
현관문을 열면 2층 주인집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는 반지하 집이었지만, 우리의 정식(?) 신혼집에 마냥 행복했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이사 나간 후 곰팡이 한가득 발견해도, 이런 것도 경험이라며 벽지를 사다가 직접 도배했다.
한겨울에 샤워해도 더 이상 입김이 나오지 않았고, 동파가 두려워 물을 조금씩 틀어놓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나의 직장인 강남 그리고 가산디지털단지로 옮겨진 남편의 직장과 가까워 출퇴근이 훨씬 편했다.
가끔씩 금요일 저녁에는 집 근처 선술집에서 맥주 한 잔도 했다.
주말에는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요리하는 것이
일요일에는 둘레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대화 나누는 것이
이 모든 것들이 꿈만 같았다.
마치 새 아파트 분양받은 것 마냥 행복했다.
천호동 원룸과 신림동 반지하 집,
그 3년간의 신혼 기간 동안 가난한 우리 부부는 싸운 기억이 없다.
뚜벅이인 우리는
천호동에서는 한강을
신림동에서는 둘레길을
우리 집 앞마당 삼아 돈 안 드는 데이트를 즐겼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 1원도 받지 못해 이런 신혼집들을 전전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행복했었던 건
우리 스스로 번 돈으로 조금씩 나은 집으로 발전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다음 집은 화장실이 2개나 되는 33평 새 아파트 전세로 들어갔다!
누군가 나에게 10대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No라고 단호히 말한다.
20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꼭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면,
우리의 서울 신혼집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단점들이 그득한 그 신혼집들의 기억이
행복의 순간으로만 기억되는 걸 보면
그때의 나는 이 가난한 중국인 남자와 함께라서 행복했나 보다.
다행이다.
가난한 신혼집이지만,
행복도 가난하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