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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om Dec 31. 2023

적응

신도시로 이사

차디찬 겨울바람이 불었던 2020년 겨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처음으로 서울을 벗어나 지금 살고 있는 이곳으로 왔다. 코로나가 무서워 밖에 나가지도 못해 새로운 집에서 아이 둘과 꼼짝없는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던 그때. 밖에 나가면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이 너무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루는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갔다. 아이 옆에서 그네를 밀어주고 있었는데, 내 아이와 같은 또래인 아이들과 엄마가 오며 우리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낯선 이곳에 아직 친구 한 명도 없는 우리 아이를 위해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한번 대화를 한다면 처음 가는 학교에서 적응이 조금은 편안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불행히도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엄마와 아이들은 자리를 떠났다. 그날 밤, 부끄럽게도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이를 위해 한마디 말을 붙여볼 용기가 없었냐며 자책을 하면서 말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다행히 우리 아이는 입학 3개월 만에 초등학교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3개월 동안 매일 아침 교문에서 함께 들어가 주시는 담임 선생님, 아침마다 기다려준 5명의 반 친구들 덕분에 아이는 점점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입학 전 놀이터에서 만났던 엄마들에게 나는 먼저 다가갔고 지금은 그 엄마들은 정말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나도 알고 있다. 그날 놀이터에서 내가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 한들, 아이에게 큰 도움은 되지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그날은 새롭고 낯선 곳에 적응하기 위한 나에게 첫 시작을 알리는 날이 아니었을까. 새로운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갈 준비 말이다.


되돌아보면 2020년은 나에게 가장 새로운 한 해 였다. 워킹맘에서 전업맘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에서 자리 잡아갔던 그 해. 힘들었지만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던 해이다.  

다시 차디찬 겨울이 돌아왔다. 3년 전의 혼자 자책하며 울었던 그 겨울이 생각나는 밤이다. 너무 추웠고 외로웠고 두렵고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웃으며 그 일을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큼 나는 괜찮아졌다. 이제 이곳은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니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과 이곳에서의 추억이 가득하다.


새로운 곳에 적응한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모든 과정과 사건에는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지금 당장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 과정이 필연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치 지나고 나면 별 거 아닌 일에 자책하며 울었던 그날 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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