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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불인: 자연 섭리에서 배우는 변화혁신의 리더십

[방구석5분혁신.리더십]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세상은 변한다. 열흘 붉은 꽃 없듯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자연의 법칙이다. 상황과 맥락도 바뀐다. 정답 역시 따라서 달라진다. 그러니 세상 변화를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그게 ‘변화에 맞춤하는 새로운 정답을 찾아가는’, 혁신으로의 길이다.


▶ 변화의 파도를 타다: 혁신의 본질과 리더십의 진정한 의미


혁신은 단순히 변화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변화를 이해하고, 스스로 그 일부가 되는 것이다. 물이 흘러 강을 이루고, 강이 흘러 바다로 이어지듯, 혁신의 과정은 연결되고 확장된다. 끝없는 순환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미래를 빚어내고, 과거를 내려놓는다. 변화는 이어지는 물결이다. 맞물리는 파도다. 혁신은 물살에 맞서는 게 아니다. 함께 흘러가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거다. 변화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이자 모험, 그게 혁신이다.


변화는 내 의지와 상관없다. 내 가치와 관계없다. 변화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 바다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힘주어 이끌다가도, 때로는 힘빼고 맡겨야 한다. 그 균형점을 잘 찾아야 한다. 리더십은 그래서,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힘이다.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변모하는 힘이다. 스스로가 중심인 사람은 리더가 아니다. 세상 변화를 포용하는 사람, 그가 진짜 리더다. 


▶ 변화의 본질과 고정관념의 함정: 틀을 깨고 다층적 세계를 보아야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런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는 죽은 잣대가 세상에 들어맞을 리 없다. 내 눈을 가리고 내 귀를 막는, 지식과 경험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새로운 시각을 얻고 싶다고? 기존의 틀을 깨야 한다. 스스로를 비워야 한다. 고루한 잣대를 내려놓고 유연함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세상은 납작한 평면이 아니라 다층적인 입체로 보인다.


변화는 상수다. 그럼에도 변화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제'의 기준으로 '오늘'을 평가하고, '내일'을 재단한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에 안주한다. 스스로를 변화의 흐름에서 격리시킨다. 음(陰)과 양(陽)이 교차하고, 유(有)와 무(無)가 순환하며, 공(空)과 색(色)이 서로를 이루는 자연의 이치에 역행하는 일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순간, 스스로가 만든 틀에 갇히게 된다. 정체될 수밖에, 아니 쇠락할 수 밖에 없다.


▶ 무심(無心)의 리더십: 자연의 섭리에서 배우는 객관성


'리더(leader)'는 앞서서 이끄는 사람. 세간의 정의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리더가 앞장서서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 ‘작위(作爲)’다. 작위는 의식적으로 행하는 적극적인 행위다. 의식이 개입되니 ‘나(我)’가 들어간다. ‘나’는 주관적이다. 객관적일 수 없는 존재다. 그러니 리더 개인의 경험과 가치가 기준이 된다. ‘맞고 틀림’과 ‘낫고 못함’의 기준이 모두 리더 자신의 것이다. 자꾸 엇박자가 생겨나는 이유다. 세상과의 불협화음이다. 무심(無心)히 변화하는 세상과 들어맞질 않는 거다.


노자가 말했다. '천지불인(天地不仁)', 성인불인(聖人不仁)'. 천지가 인자하지 않다? 성인도 인자하지 않다? 요령부득의 이 문구, 나중에야 깨달았다. 자연의 무심한 변화를 가리키는 얘기였다. 노자의 눈에는 인자함조차 인간의 작위적 가치일 뿐이다. 그러니 작디작은 내 기준을 내려놓으라는 가르침이다. 크디큰 자연의 섭리에 눈을 뜨라는 가르침이다. 편애 없이, 불편부당하라는 일갈이다. 보편타당한 객관성을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라는 의미로 노자는 ‘천지불인’, ‘성인불인’이란 표현을 썼던 거다.


가령, 늑대가 토끼를 사냥하는 장면은 잔인해 보인다. 그러나 이면에는 새끼를 먹이기 위한 눈물 나는 모성이 있다. 주관을 배제할 때 비로소 평면적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입체적인 자연의 이치가 그제서야 보인다. 스스로 자(自)에 그럴 연(然).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이다. 가혹하고 비정해보이는 자연 속에 녹아있는 질서와 이유를 깨달아야 한다. 이걸 모르면 껍데기만 보고 세상을 판단하는 우를 범한다. 지혜는 지식의 축적이 아니다.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호연(浩然)한 자연의 운행원리를, 알량한 나의 기준으로 재고 잘라서는 안 된다. 자연 속에 생명의 원리가 들어있다.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이치다.


▶ 불인(不仁)의 리더십: 인정(人情) 대신 합리와 공정을 택하다


엘지생활건강의 차석용 부회장은 '불인(不仁)'의 리더다. 그는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하지 않는다. 직원들과 개인적 유대가 형성되면 객관적인 상황 판단과 의사결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 생각해서다. 차 부회장이 정(情)과 연(緣)에서 거리를 두기로 했던 이유다. 합리와 공정으로 곧추선 조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조직 전체의 혁신 성장을 중시한 선택이었다. 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차부회장이 이끈 15년 동안 엘지생건의 매출은 1조 원에서 7조 원으로, 영업이익은 600억 원에서 1조 원으로 수직상승장했다.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성과다. 


리더십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개입을 최소화하며,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역할을 최선으로 수행하도록 돕는 거다. 조직은 균형을 유지해야 하고, 리더는 냉철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차부회장의 선택은 감정적 유대가 아닌 객관성이었다. 합리성이었다. 공정성이었다. 조직이 성장하고 구성원이 몰입할 수 있는 바탕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 정의와 구분을 경계하니 창의가 열리다


도덕경 5장에는 '천지불인(天地不仁), 성인불인(聖人不仁)'에 이어 '다언삭궁 불여수중(多言數窮 不如守中)'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말(言)’이 많아지면 자주 궁색해지고, ‘비어있음(中)’, 즉 객관성을 잃기 쉽다는 뜻이다. 말은 '구분'의 도구다.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구분하려 할 때, 우리는 종종 본질을 놓친다. 변화는 억지로 나누거나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변화는 그 자체로 존재하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눈 앞의 변화를 온전히 포용하려면, 말로 표현되는 구분과 판단을 내려놓아야 한다. 변화는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혁신의 가능성을 품은 미래적 화두다. 


스티브 잡스는 복잡한 기술적 설명이나 세세한 제품 분류를 철저히 배제했다. '전화', '음악 플레이어', '인터넷 기기'라는 기존의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제품의 정의와 구분을 최소화했다. 기능 간의 통합을 추구했다. 아이폰이라는 혁신적인 스마트폰 개념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변화를 수용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해답을 찾는 것이 혁신이다. 기존의 분류와 경계를 고집하면 새로운 가능성은 열리지 않는다. 비즈니스 혁신 관점으로 바라본 '다언삭궁 불여수중'의 의미다. 


▶ 비움의 리더십: 더 큰 가능성을 여는 혁신의 힘


노자는 풀무를 보며 '비어 있지만 그 작용은 끝이 없다(虛而不屈·허이불굴)'고 표현했다. 풀무의 속은 텅 비어 있지만, 그 비움에서 강력한 바람이 일어난다. 그 바람은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한다. 그러니 비움은 단순한 공허가 아니다. 비어 있음으로써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나를 비우고 나를 버림으로써 나는 더 커진다. 풀무의 리더십이다. 


리더라면 채우기보다 비워야 한다. 스스로를 비워야 조직에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 창의혁신의 리더가 되고 싶다면, 다언(多言)-작위적 가치 판단과 주장-을 삼가야 한다. 불인(不仁)-객관과 공정-을 따를 일이다. 채움이 아닌 비움, 올려세움이 아닌 내려놓음. 그 속에서 혁신이 꿈틀꿈틀 싹을 틔운다.ⓒ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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