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디지털&AI]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AI를 썼더니, 작업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고? 농담이 아니다. AI 모델의 실제 작업 능력을 측정하는 연구 기관 METR이 2025년 초 발표한 충격적인 결과다. 숙련된 개발자들이 AI를 활용하자 업무 처리 시간이 오히려 20% 가까이 늘어났다. 개발팀의 성과를 연구하는 비영리 단체 DORA의 보고서 역시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AI 도입 후 코드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소프트웨어의 안정성은 되려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생산성의 역설’이라는 거대한 반전 드라마다.
표면적 원인은 명확하다. AI가 쏟아내는 그럴듯한 초안의 홍수 때문이다. AI는 그럴싸한 보고서와 코드를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의도를 비껴간 미세한 결함, 섬세한 맥락을 놓친 오해가 숨어 있다. 결국 결과물을 검증하고 수정하며, 때로는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보이지 않는 노동’은 온전히 사람의 몫이다. AI에게 수정을 맡기면 다른 부분이 망가지는 끝없는 되돌이표에 갇히기도 한다. 특정 업무의 속도 향상이 전체 시스템의 발목을 잡는, 전형적인 비효율의 함정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더 깊은 곳에서 시작된다. 바로 조직의 미래를 갉아먹는 ‘역량의 공동화(Hollowing-out)’ 현상이다. 인재는 교과서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복잡하고 도전적인 현장에서 성장한다. 정답 없는 문제와 씨름하고, 선배의 어깨너머로 일을 배우고, 직접 부딪치며 깨지는 과정. 성장에 필수적인 이 ‘어수선한 중간 과정’을 거치며 전문가로 거듭난다. 문제 해결 능력과 통찰력은 바로 이 과정에서 길러진다.
하지만 AI는, 성장에 필수적인 중간 과정을 통째로 집어삼킨다. 시니어는 AI를 조수 삼아 직접 결과물을 만든다. 주니어는 필요 없다. 당장은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조직의 성장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다. 경험을 통해 성장할, 또 성장해야 할 인재들이 사라져서다. 이런 조직에, 당연히 미래는 없다. 단기 효율이라는 달콤한 마약과 조직의 미래를 맞바꾸는 셈이다.
‘역량의 공동화’는 현상의 절반만 본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역량’ 본질의 변화다. 단순히 기존 역량이 사라지는 것을 넘어, 필요한 역량의 축이 송두리째 이동하는 ‘역량 대전환(Competency Pivot)’ 이야기다.
과거 인재의 핵심 역량은 ‘0에서 100을 만드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이제 AI가 80까지는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역량이 완전히 달라진 배경이다. 이제 핵심은 ‘AI가 만든 80을 맹신하지 않는 능력’, 즉 AI의 결과물을 의심하고, 논리적 결함을 찾아내고, 더 나은 질문으로 결과물을 100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비판적 검증과 창의적 질문’의 능력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던 '작가'에서, 거친 초고를 명문으로 다듬는 '평론가'이자 '편집자'의 시대로 역량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 거대한 전환 앞에서 인간 직원만을 대상으로 설계된 기존 인사 관리(HR) 시스템은 무력하다. AI를 단순한 ‘도구’로 보는 시각부터 버려야 한다. AI는 우리와 함께 일하는 ‘디지털 노동력’이다. 인간과 AI를 하나의 통합된 자원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한 이유다. ‘HAIR(Human-AI Resources)’의 관점이다.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IT 부서는 AI의 HR 부서가 될 것”이라 단언했다. 이 예언(?)은 금세 현실이 되었다. 글로벌 제약회사 모더나는 IT와 인사 부서를 통합했다. '최고 인사 및 디지털 기술 책임자(chief people and digital technology officer)'라는 새로운 직책도 신설했다. 대상이 인간이냐 AI냐의 차이일 뿐, 조직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력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인사 업무의 본질은 같다는 판단이다. 노동의 공간이 '사무실(인간)'에서 '데이터센터(AI)'로 이동하는 지금, 인간과 AI라는 두 종류의 노동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핵심 질문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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