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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상 Jun 04. 2024

가고자 하는 길과 다르게 펼쳐지는 현실 1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

(천룡팔부 리뷰)

     

  삶은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의 삶이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라서, 받아들이거나 적응하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살아왔다. 나의 목표가 적절하지 않았고, 의지가 굳건하지 못했고, 재능이나 실력이 없었고, 환경이 받쳐주지 않았던 것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계획대로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원하는 직업, 가정, 재산을 소유하고 자기 뜻대로 산다. 심지어 계획보다 더 잘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세 가지가 적절히 섞여 있다. 사랑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계획하고 자기 뜻대로 만들기 위해 간절히 노력해도 이뤄지지 않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혹은 어떤 때) 쉽게 얻기도 한다.  이뤘다고 해도 현실은 계속 변하고, 이루고도 행복하지 않을 때도 많다. 어느덧 돌아보면 다른 길에 와 있는 경우도 많다. 질서와 혼돈이 뒤섞여 있는 듯 보인다. 



  <천룡팔부>는 중국 김용의 무협 장편 소설이 원작이다, 그의 소설 중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히는 후반기 작품이다. 소설을 읽었다면 작가의 철학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소설은 아직 읽지 못했고, 영화 <천룡팔부 : 교봉 전>, 드라마 <천룡팔부 2021년>, <천룡팔부 2003년>를 보았다. ‘천룡팔부’란 불교에서 나온 말로 불법을 지키는 신통력을 가진 신을 뜻한다. 유, 불, 도 등 학문적 깊이가 있는 김용의 작품 중에서 불교 색채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     

  등장인물이 많지만, 주인공으로 교봉, 단예, 허죽을 들 수 있다. 그들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며 이야기를 펼치다가 우연히 만나 의형제를 맺고 영웅으로 성장한다. 그 외 모용복, 왕어언 등이 있다. 등장인물들은 무협 이야기답게 그들의 의지를 강렬하게 불태운다. 그중 무림에서 ‘북교봉 남모용’이라고 양대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던 교봉과 모용복에 대해 살펴보겠다.  

    

잘생긴 나무는 남의 욕망에 쓰여 숲에서 살지 못한다

  교봉은 천하제일의 무술 실력을 갖추었고, 송나라의 적인 거란족과의 싸움에서 일등 공신이다. 인품과 지도력도 출중하여 송나라 개방의 방주로 뽑힌다. 그도 평생을 송나라와 개방을 위해 영웅으로 살려고 했다. 하지만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무림인들은 누군가의 음모에 속아, 거란족인 그의 부모를 죽이고, 아기였던 교봉을 송나라로 데려와 양부모가 기르게 된 것이다. 

  당시 송나라의 한족은 중화사상이 심했다. 특히 거란족은 모두 본성이 나쁜 종족이라고 매도했다. 그런 사상에서 자란 교봉은 자신이 거란족인 것에 충격을 받는다.

  교봉이 방주를 그만두고, 길러준 부모, 스승 등 관련된 사람들이 죽으며, 그가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쫓기게 된다. 그 와중에 아주를 만나 서로 사랑하며 목숨을 걸고 지킨다. 그는 음모를 밝히고 복수하려고 하지만, 스님으로부터 ‘한족(송나라)이건, 거란족이건, 모두 평등하다’라는 말을 듣고, 아주의 사랑과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며 자신이 거란족임을 받아들인다. 이름을 교봉에서 소봉으로 바꾸고, 복수를 그만두기 전, 한 사람만 더 만난 후. 아주와 함께 시골에서 사냥이나 가축을 기르며 조용히 행복하게 살기로 마음먹는다.  

  한편 선배의 부인인 강민은 자기가 흠모하던 교봉과 대리국의 왕인 단정순을 갖지 못하자,  단정순이 음모의 배후 인물이라고 교봉을 속인다. 아주는 단정순이 자기 친아버지임을 소봉(교봉)에게 밝히지 않고, 아버지 대신 변장하고 마지막 복수 장소에 나가 소봉(교봉)의 일장에 죽는다. 소봉(교봉)도 음모에 속아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자기 손으로 죽이게 된 것이다. 

  아주의 여동생 아자는 소봉을 좋아하여 말썽을 부리며 따라다니지만, 소봉에게 연인은 아주 밖에 없다. 하지만 아주의 유언으로 아자가 위급할 때 소봉이 돌봐준다.

  아자는 유탄지를 자신의 종으로 학대하지만, 유탄지는 학대에도 그녀를 좋아하여 눈(目)까지 내준다. 하지만 아자는 그를 좋아하지 않고 소봉을 좋아한다.

  소봉은 우연히 대리국의 세자인 단예, 소림사 출신의 허죽과 의형제를 맺고, 훗날 금나라의 태조가 되는 완안아골타와도 친분을 맺게 된다. 또한 거란족(요)의 황제 야율홍기를 구해주고 의형제를 맺고, 반란을 진압해 남원 대왕으로 봉해져, 송나라와의 싸움을 지시받는다. 송나라 출신이라 믿을 수 없다는 다른 신하들의 말이 많던 차에, 소봉은 각 나라의 민중들이 타격을 받게 되는 전쟁을 말리면서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의형제와 아자를 비롯한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단예와 허죽이 야율홍기를 잡아 오지만 야율홍기가 소봉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냐고 하자 소봉은 결백을 밝히고 평화를 위해 자살한다. 아자도 그를 따라 자결한다.  

   

  많은 고수가 나오고 그들과 대결하지만, 소봉은 항상 이겼다. 의협과 의지력도 강하고 인맥도 좋다. 하지만 그의 삶은 원하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사랑하는 것을 지키지 못했다. 실력을 이용하려는 자와 주변의 편견과 음모로 비운의 삶을 살고 약 34살(추정)의 젊은 나이에 자결한다. 


  재능과 실력을 갖춘 인재가 타인의 욕망에 도구로 쓰이는 경우는 요즘도 많다. 각 세력에게 이용되다가 버림받거나, 반대편의 공격을 받고 희생양이 된다.

  <장자>에 잘생긴 나무는 여기저기서 탐하여 일찍 베어지고, 못생긴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가 숲에서 오래 산다고 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어렵게 실력을 쌓았지만,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이용되고 소모된다. 소봉의 경우, 송나라(한족)에서 자라며 세뇌되어 한족이 좋은 쪽, 거란은 나쁜 쪽이라는 관념을 갖고 한족을 정의로움이라고 생각하여 많은 거란인을 살생한다. 하지만 거란인이라고 버림을 받고, 각자 나라를 이룩하려는 사람들의 모함과, 복수로 재능과 세월, 생명을 낭비한다.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자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타인의 욕망이었는지, 자신이 정말 좋아하던 길이었는지 구별해야 한다.   

  

  모용복 또한 악인에 속하긴 하지만 마찬가지다. 외모도 깔끔하여 잘생기고 총명하며, ‘남모용, 북교봉’이라 불릴 정도로 무술도 출중하다. 무술에 뛰어난 모용세가에서 태어나 무술을 전해 받고, 무술 실력이 뛰어난 그의 아버지 모용박의 후광으로 명성도 있다. 그런데 그는 망한 연나라의 황손으로 태어나 연나라를 재건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라고 세뇌받는다. 사촌인 왕어언이 그를 사랑하지만, 그는 무정하고, 오로지 연나라를 재건하는 것에만 열정을 태운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그는 정신병에 결려 폐인이 되고, 나라를 재건했다는 환각 속에서 산다. 남이 보면 폐인이지만 그의 일생 중 가장 행복하다.    


  교봉과 모용복 사건의 음모를 꾸민 의외의 배후 인물이 밝혀지지만, 그들도 모두 자기 민족, 나라를 위해 오랜 기간 숨어 지내며 일생을 소모한 고수들이다. 그들은 나이가 많아 뜻이 성사된다고 해도 자신이 패권을 지지는 못한다. 결국 관념(상상)으로 만들어 낸 것에 대한 의지만 강렬하다.


  

  자기가 속한 집단을 사랑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자기와 자기가 속한 집단을 사랑하는 사람이 갈애가 아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자기가 속한 집단을 사랑해야 다른 집단도 사랑할 수 있다. 에릭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사랑이 올바른 사랑이라고 했다. 오직 '너만'을 사랑하면서 그 외의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원수를 더 넓혀가게 된다면 진정한 사랑을 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가정, 친구, 집단에 대한 사랑과 집단 이기주의, 편견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기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집단에 기여하고 자신과 집단을 위해 실력을 갖추는 노력은 해야 한다. 무엇이 진정한 기여인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영화 <헝거게임>에서 젊은이들을 뽑아 치장하고, 호화로운 물질을 제공하고 인기를 끌게한 후, 서로 죽이게 하고 그들을 이용한다. 장자에도 나오듯, 잘생긴 나무가 잘려 생명력을 잃고, 토막 쳐져 제사상에 올리는 장식품으로 쓰인다. 생명력을 잃고, 온갖 색칠을 하고 받들어져도 제사가 끝나면 곧 쓰레기로 버려다. 

  숲에 살아있는 존재가 나무로써 세상에 공헌하고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부모들조차, 자기 자신과 자식의 생명력을 잘라내고,  관념(상) 숭배 제사상의 장식품으로 쓰려는 사람이 많다. 

  불교 경전인 <금강경>에는 모든 상(相)을 갖지 말라고 했고, 예수님을 비롯 다른 종교에서도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했다. 



<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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