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함을 못 참고 판을 뒤집은 계약직 아르바이트생
약속된 90일이 되어가고, 성격 급한 나는 달력의 날짜를 지워가며 계약 종료일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동안 단 1분의 지각도, 매니저들의 눈 밖에 날 행동조차 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며 모범 사원이 되기 위해 애썼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 조직도도 모르겠고, 누가 결정권을 가진 사람인지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는 건, 그날의 시프트에 따라서 나오는 사람들이 달랐다는 것 그뿐이었다.
기다리던 그 날짜가 코 앞인 어느 날, 그날 나온 매니저에게 나의 계약 종료일에 관련된 질문을 했고, 그는 내게 컴퓨터로 안내하며 나의 3개월 간의 실적을 함께 보자고 했다. 사실 그가 평상시에 작은 일 하나에 집착하고 사람을 쪼는 스타일로, 그렇게 믿음직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어서 내심 걱정했지만, 그래도 영향력이 있는 사람 같았다.
이게 나의 최대 실수였다. 그와 함께 자리에 앉아 보게 된 화면에는 나의 스피드와 정확성이 수치로 나와있는 그래프가 보였고, 마치 나의 성적과 같은 전반적인 수치는 이미 모든 동료들의 평균을 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 나는 오늘부로 계약직이 종료되고 정식으로 파트타임이 되는 건가?
조건이 변하는 건 없지만, 타이틀이 달랐다. 떨리는 마음으로 긍정 신호를 은근히 기대하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가벼운 입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 점수에 만족하지 않았는지, 전체 점수는 좋지만, 쇼핑한 물건을 담는 시간, 그리고 처음 아이템을 찾는 시간 등이 좀 느리다며 오늘 자기가 하는 걸 보며 다시 섀도잉을 하라고 이야기했다. 또, 이것 또한 평균 이상이어야 계약직을 면할 수 있다면서, 내게 90일의 계약직 연장을 제안했다. 섀도잉을 하면서도 방정맞은 그의 행동이 여간 불쾌한게 아니었지만, 꾹 참고 잘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애써 감정을 누르며 매장을 한 바퀴 다시 돌았다.
예상치 못한 그의 대답과 90일간 이룬 나의 공이 허사가 된다는 점, 그리고 희망고문처럼 또 다른 90일의 계약직을 연장한다는 점에 슬슬 내 안의 무언가 올라오며 따져 묻기 시작했다. 물론 영문도 모른 채 얻어맞은 거라, 아리송한 태도로.
"그런데요. 90일이 지나고 회사가 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나는 그만두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정식 파트타임으로 되는 게 아닌가요?"
"응, 아니야. 이런 경우 많아. 90일 뒤에는 거의 될 거야. 넌 이미 잘하고 있어."
그러면서 내게 준비해 놓은 계약 연장 계약서 종이를 들이밀고 사인을 하면 된다고 얘기했다. 온통 영어뿐인 계약서를 단시간에 읽을 수도 없었지만, 이 사무실에는 그 사람과 나 단 둘 뿐. 위에서 그렇다고 하니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사인을 해버렸고, 점점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무실을 나와서 동료들에게 나의 계약 결과를 이야기하며, 어이가 없는 이 상황에 속을 끓이며 집에 갔다.
참을 수 없는 억울함.
집에서도 집안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이게 맞는 결과인지,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 건 아닌지, 뭔가 미심쩍었고 이곳의 정확한 규정을 알고 싶었다. 90일 동안,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한 채, 파트타임이 되기 위한 그 일념 하나로 살아왔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 사이 어떠한 작은 룰 하나 어기지 않으려 애쓰며 노심초사했던 기억도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안고 다시 90일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나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몇 개의 숫자 때문에, 또다시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계약직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나를 뽑아주었던 보스에게 번역기를 통해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설명하고, 사인한 계약서 사진, 나의 실적 사진,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최고 기록을 첨부 파일로 보냈고, 계약직에서 정규 파트타임으로 전환되기 위한 필요조건까지 상세히 요청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렸지만, 보스는 3일 동안 근무하지 않아 내 메일을 확인할 수 없었다. 4일째 되는 날, 혹시 그가 오늘 출근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1시간 정도 일찍 매장에 도착했다. 할 말을 영어로 준비하여 메모장에 적어두고 비장한 마음으로 사무실 근처에서 기웃거리는 나를 보고 동료가 다가와
“누구 불러줄까?”라고 물었다.
그 순간, 마음속 깊은 시름으로 가득했던 내게 도움도 청하기 전에 그녀가 먼저 나를 도와주려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는 걸 가까스로 참으며 담담하게 보스의 출근 시간을 물었다.
“그는 1시에 와. 대신 다른 매니저를 불러줄게”라고 답하는데,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보스를 기다리겠다고 대답한 채 테이블에 앉았다.
1차 눈물이 터져버린 순간.
테이블에 앉아 계산 중인 손님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을 애써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척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때마침 쉬는 시간을 갖으려 내가 앉아있던 테이블로 다가오는 동료와 눈이 마주쳤다.
아직 앞치마도 입지 않은 내게, 그녀는 다가왔다.
“여기서 뭐 해? 오늘 일해?”
“어, 오늘 근무 있는데… 보스에게 할 말이 있어서 뭐 좀 물어보려고 일찍 왔어. 아니 내가…”
입을 열자마자, 나는 참았던 눈물이 터졌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어버렸다.
이곳이 사람 많은 미국 마트 한가운데라는 사실도, 잠시 잊고 말았다.
그녀는 나를 안아주며 눈물을 닦아주고, 손을 잡아 위로해 주었다.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었고,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그 매니저의 성향에 대해 아는 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그 사람 원래 좀 깐깐하게 굴어. 그래서 다들 불만들이 많기도 했어. 하지만 그는 보스가 아니니까, 그걸 결정할 권한이 없을 거야. 속상해하지 마.”
그녀는 쉬는 시간을 나를 위해 써가며 내 마음을 다독였다. 내가 우는 모습을 본 다른 부서 직원도 집에 가서 위로의 문자를 보내주었다. 그 뒤로, 그는 나를 장난스럽게 “베이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말해줄래?
잠시 뒤, 보스가 출근했다.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나를 방으로 불렀다.
진지하게 앉아 있는 보스의 컴퓨터 화면에는 내가 보낸 메일이 그대로 떠 있었다.
일처리가 빠른 그는 바로 현장에서 “앉아서 직접 얘기합시다.”라며 답장까지 보내왔다.
“너의 메일 지금 확인했는데, 무슨 일인지 다시 설명해 줄래?”
나는 그 매니저와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을 보자마자 억울함이 복받쳐 또 주책없이 눈물이 터졌다. 이해가 빠른 그는 구구절절 말을 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내가 한 번 확인해 볼게.”
그는 화면을 띄우더니, 먼저 내가 메일에서 언급했던 나의 실적을 확인했다.
전체 평균이 이미 팀 평균을 넘었고, 최고 기록을 보고는 “잘하는데? 이 정도면 훌륭한데?”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다른 창을 띄워 출근 기록을 확인했다. 90일 동안 단 1분의 지각은 커녕 근무 취소를 한 날조차 없자, “Wow! You're amazing!”이라며 계약직을 연장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자기가 처리할 거고, 시스템 상 파트타임 전환에는 시간이 조금 걸릴 거라며 기다려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내게 말했다.
“나는 이 사실을 몰랐다. 그 매니저는 나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어야 한다. 그는 결정권이 없어.” 그 단호하면서도 따뜻한 말이 메아리처럼 마음속에 울렸고,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또 눈물이 터졌다. 보스와 함께 앉아 있던 매니저는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No more tears.”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 얼렁뚱땅 매니저는 내 마음속에 “권력의 맛을 느끼고 싶은 욕망 매니저”로 저장되었다. 또, 나이는 나보다 몇 살 많지 않지만, 유머와 스피디한 일처리, 카리스마 등 리더로서 모든 것을 갖춘 보스는 나의 “최애 보스”가 되었다.
마음고생 끝에, 나의 진정한 파트타임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90일간의 긴장과 눈물, 그리고 불의에 맞서 물러서지 않고 스스로 해결한 끝에 얻어낸 값지고 소중한 기회였다. 하지만, 너무 마음고생을 했던 탓일까. 그 기쁨과 안도감 속에서도, 미국 슈퍼마켓에서의 아르바이트 생활은 혼자 누르면 눈물 버튼이 터지는 날들이 끊이지 않았다.
대문사진 : Kinga Howard,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