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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가동 유리몸 Dec 07. 2023

사랑하지 마세요

힘들기만 합니다.

작년 10월 29일 첫 등산동호회를 나간 날이다. 


처음으로 천사를 만났던 날이다. 


그날은 새벽이었고 안개가 많이 낀 날이기도 했다. 낯선 동네에 차를 대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안개를 걷히고 나온 그녀는 내게 천사처럼 보였다. 엄청난 후광을 내며 따뜻한 목소리로 


내게 왔다. 나이도 어렸지만 동안이어서 대학생인 줄 알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따뜻해서 처음 봤지만 


계속해서 나는 질문을 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그녀를 포함해 총 4명이서 등산을 하러 갔다. 지방등산이라 차 안에 오랫동안 얘기를 해야 했다. 모두들 외향적인 성격이어서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때 처음 나의 이혼사실을 알렸다. 세상에 처음으로 이혼사실을 낯선이 들에게 알렸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위로는 받지 않았다. 그래서 뭔가 더 개운했다. 


나를 이혼남이라는 프레임을 씌우지 않고 등산 동호인으로만 나를 대해줬다.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많이 좋아해 줬다. 


등산이 아니어도 사적인 모임에 나를 초대하고 나의 안부를 물어줬다. 


그녀와 등산을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녀도 내게 많은 질문을 하고 서로에게 많은 미소를 지어 보냈다. 


그때 그녀의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여러 핑계 삼아 개인적인 연락을 하게 되었다. 


그녀도 내게 많은 호감을 표현했고 우리는 연인사이가 될 수 있었다. 왜 나를 사랑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 어린 나이에 이혼남이었던 나를, 직업도 대학도 좋은 곳을 나온 그녀가 성격도 외모도 좋은 그녀가 왜 나를 좋아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우리는 자주 볼 수는 없었다. 그녀의 직업은 너무나도 바쁜 직업이었고 새벽까지 일하고 택시에서도 일하고 


자는 시간 빼고는 일만 했다. 주말에는 해외 대학원 진학을 위해 시험공부를 했다. 음식도 가려먹는 게 많아 


예전에 했던 연애방식과는 다른 데이트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좋았다. 그녀를 보고만 있어도 좋았고 오랜만에 보는 날이면 아침부터 설레었다.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지 하며 많은 이야기들을 생각하고 간다 

그런데 그 사람을 보기만 하면 다 까먹고 그저 기분이 좋고 행복함이 가득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수십 번 하고 얼굴을 보고 있어도 보고 싶었다. 

스킨십도 많은 연애였다. 그녀도 나도 지치지 않은 스킨십에 침대에만 가면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은 운전을 하다가 코피가 흐른 적도 있었다. 어이가 없기도 했고 행복해서 웃음이 났다. 

그녀가 미국으로 대학원을 가면 헤어지겠거니 생각했다. 나를 많이 의식하고 미안해했으니 말이다. 종종 그랬다. 이렇게 자주 못 보는데 그렇게 좋냐고 왜 그러냐고. 난 다 좋다고 했다. 그냥 다 좋다고 괜찮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이별이 가까이에 왔음을 짐작했다. 그런 직감은 틀린 적이 없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별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려고 적금을 들었다. 그리고 졸업하면 청혼을 하려고 했다. 

하루하루가 나에겐 천국이었다. 회사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그 사람을 생각하면 순식간에 잊혔고 미소가 지어졌다. 버틸 수 있었다. 내게 정말 힘든 회사생활이었지만 버틸 수 있었다. 그녀를 보러 가는 날이 다가오고 그녀와 연락을 할 수 있었으니


내게는 그녀가 세상에 탈출구였다. 


여느 날과 다를 게 없었던 어느 날 그런 느낌이 있다. 오늘은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날. 그녀가 이별을 말할 것 같은 날 


해줄 말이 있다며 만나자고 했다. 허름한 기사식당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한식이 먹고 싶었다며 데리고 갔다. 맛있게 먹고 커피를 마시자고 했고 나는 거리를 거니는 시간이 아까워 가까운 곳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봄이었지만 아직 코트를 입어야 하는 날씨였다. 그런데 그날은 유독 추웠다. 모르겠다 왜 그렇게 추웠는지 


그녀의 표정은 이미 법을 먹을 때부터 어두웠다. 말하기 힘든 걸 말해야 하는 표정이었다. 


갑작스러운 이별통보였다. 나에게는 , 그녀는 오랫동안 생각했다고 했다. 


그녀는 참 신경 쓸게 많고 희생할게 많은 사람이었다. 나에게 너무 미안해서 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정말 많이 울었다. 나는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거에 이제 다시 불행해져야 한다는 거에 눈물이 났다. 


그녀를 안으며 고생했다고 말해줬다. 그녀가 내 품에 안겨 많이 울었다. 


다시는 나 같은 사람 못 만나겠지만 헤어져야 한다고 했다. 


의례 하는 말이였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 말을 믿고 있다. 


그 말 때문인지 난 여러 이유로 아직 정리를 완벽히 해내지 못했다. 그녀의 카카오톡과 인스타를 보며 그리워하고 있다. 


차단된 메신저에 하고 싶은 말을 쓴다 보낼 수 없는 그녀가 볼 수 없는 그곳에 해주고 싶은 말을 쓴다. 


3월에 헤어진 나는 아직도 12월인 지금도 3월에 멈춰있다. 조금은 나아졌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그만한 사랑을 받은 게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돼버렸다. 우리의 모습은 그랬다. 


덩치 큰 바보를 데리고 다니는 악착같은 여동생의 모습 


평생 못 잊을 사랑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느끼질 못할 것 같다. 


잊기 위해 내 몸을 혹사해 가면서 지내왔다. 무릎 통증이 만성이 되었고 꿈을 안 꾸는 날이 없이 밤잠을 설쳤다. 


마음이 자리잡지 못한 체 살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두서없는 글을 계속 써 내려가고 있다. 


35년 인생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언제냐고 하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지난 5개월간의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신 없을 그런 행복이 스쳐 지나가니 세상이 참 부질없어 보인다 가슴이 뛰는 사랑을 할 수 없겠다 


무덤덤하게 무생물이 아닌 숨을 쉬기 때문에 살아지는 삶을 살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어떤 날은 오히려 더 관종처럼 억지스럽게 살아간다 


사랑하지 마세요 힘들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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