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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가동 유리몸 Dec 04. 2023

직장생활 10년 차

꿔다 놓은 보릿자루 

 이 시간에 글을 쓸 수 있는 건 지금 내 상황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기 때문이다. 보릿자루가 된 지 3달째 되어 간다 남들이 보면 아마 퇴사를 유도하기 위한 인사팀의 고도의 술수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럴 수도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을 찾아보자면 5개월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업규모는 매출액으로 보나, 사원수로 보나 대기업이 맞다. 그런데 올해 C레벨은 아니지만, 그 급에 해당하는 인재? 부사장이 새로 오면서 회사는 중소기업 못지않은 네임벨류를 갖기 시작하였다. 기업규모는 대기업이지만, 돌아가는 시스템을 보자면 한없이 답답하고 구멍가게라고 말할 정도로 답이 없다. 그런 곳에서 더더욱 답도 없는 임원이 갑작스럽게 들어온 것이다. 오자마자 칼부림이 시작되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인사발령이 나며 그 효과로 여러 직원들이 퇴사를 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회사에 허리가 없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괜찮은 대리 과장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회사가 망해가는 첫 번째 길, 근속연수가 오래된 직원은 자르고 그 자리를 인턴으로 대체한다. 노하우가 사라져 가고 업무의 산증인이 사라져 간다. 그럼에도 회사가 돌아가는 이유는, cashcow가 아직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근 20년간 지켜온 아이템 덕분에 회사는 커졌고 지금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차부장급 이상의 임직원들은 나태해졌고, 공무원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무원집단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도전하려 하지 않고 그나마 있는 일마저 회피하고 번거로운 일들은 모두 밑으로 내려보내며, 커피와 수다로 시간을 때우다 팀 예산 법인카드로로 골프, 회식, 개인간식등을 처리하며 하루를 보내는 차 부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일할사람은 없고 일해야 될 사람은 먹고 놀고 인턴은 들어오면 1 ~ 2년 안에 이직을 한다. 계속해서 인턴들만 일하는 꼴이 된다. 누굴 탓하겠는가. 중간에 위치한 나로서는 할 말이 많다. 후배직원이 들어와서 키우면 나가고 나가면 당분간 내가 했다가 또 들어오면 가르치고 위에서는 일을 안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직을 못하고 있다. 불평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도망치려 수십 번 지원했지만, 여전히 여기 있다. 

 작년까지는 연구원이었다. 연구원이라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부서가 연구소였기 때문에 연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학원까지 나왔지만, 어쩌다 보니 회사에서 학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일을 시작했다. 인생이 꼬인 건 이때부터가 아닐까 싶다. 툴툴 되지는 날이 많지만 그래도 일을 하면 열심히 하는 편이다. 하다 보면 집중하게 돼서 일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뭐라도 만들어 낸다. 연구원이라고 해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5개월 전 새로운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뜬금없는 재무기획팀이다. 고등학교 시절, 경제과목이 싫어서 이과를 왔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경제를 공부해야 한다. 인생이 참 아이러니 하다. 이 발령 또한 나에게 제안이 왔을 때 거절하지 않았다. 참 인생이 타이밍이라고 연구원으로 있는 동안 아니 작년 2년 동안 결혼과 이혼을 하면서 최악의 회사생활을 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팀장이 여럿 바뀌었는데 내가 겪은 팀장중에 작년 팀장은 정말 인생 최악의 인물이었다. 이 사람이 어떻게 팀장이 되었는지 어떻게 부장까지 진급을 한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소에 있던 모두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팀장 눈에 잘못 들어 2년 가까이 무시를 당했다. 그러던 찰나에 이런 제안이 들어왔고 나는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그리고 나는 3개월째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었다. 

지난 2년의 얘기를 하려니 이것저것 빠진 것이 많다.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객관적으로 적어 내려가야 하나, 사람감정이란 게 참 쉽지 않다. 열불이 나는 지난 2년을 간결하게 적자니 쉽지 않다. 기획팀으로 옮긴 지 2달째 갑작스레 팀장이 퇴사를 하게 되었다. 사실 퇴사준비를 하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직결정이 상당히 빠르게 통보되어 조금 놀랐다. 팀장은 미안해하며 좋은 곳으로 C레벨 직급으로 이직을 했다. 내가 본 유일한 능력자였다.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그런 능력자였다. 이 회사에 있기엔 상당히 아까운 인재였고 나 좀 데리고 갔음 싶었다. 그렇게 갑자기 팀장이 사라지고 나와 내 후배사원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었다. 

처음 한 달은 좋았다. 책임감 없이 회사를 출퇴근만 하고 인터넷 검색 좀 하다가 말 그대로 일하는 척만 하다가 퇴근하면 그만이었다. 죄책 감 없이 

10년 차니깐 회사에서 일을 만들어 내면 된다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했다. 핑계를 된다면 내 자리에 2달간 업무를 했다. 그렇다고 딱히 인수인계를 받은 것도 없었다. 2달간 재무제표 보다가 퇴근한 게 다였으니 말이다. 투자하는 법 투자를 보는 법, 재무제표를 판단하는 법 이런 건 아직 대학생보다 못한 수준이다. 대략적인 감만 잡을 뿐.

  여기서 두 번째 회사가 망해가는 길 : 인사 없는 인사 

어느 누구도 남아있는 두 명을 위해 신경 쓰는 직원은 없었다. 인사팀장, 경영지원이사 인사과장, 등 인사와 관련된 임직원이 직무유기한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아마 이렇게 지나가다 갑작스레 해고통보를 해도 난 할 말이 없을 수도 있다. 그동안 실적이 없이 3달간 방치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걱정도 한다. 정말 잘릴 수도 있겠구나 새로 온 임원의 스탠스가 그러하니 말이다. 인원절감을 목표로 뛰고 있는 자에게 나는 너무나도 좋은 먹잇감이다. 의문이다 아직도 왜 인사에서는 우리에 대한 의견이 전무한 것일까?? 정기인사시즌이 다가오니 무작정 기다리면 새로운 팀장을 배치할 테니 가만히 있으면 된다 이걸까?? 물어볼 수 없는 내 처지도 안타깝지만, 이 회사가 참 안타깝다. 사람에 대한 관심 배려 배양할 생각이 없다. 언제든지 나가면 신입을 뽑으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이 팽배하니 회사가 점점 침몰하고 있는 걸 못 느끼나 보다. 마치 냄비 안에 개구리처럼 말이다. 

회사에서 인재를 아니 직원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다. 말만 하지 관리하지 않는다. 정말 많은 대리 과장들이 퇴사를 했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가르치며 업무를 하느라 치이고 치인다. 왜 신경 쓰지 않는 걸까? 나가는 직원을 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제는 인원도 뽑지 말라한다. 점점 회사가 기울어져 가는데도 모른척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장님이 돼서 모르는 건지 한심하다 이런데도 회사 규모와 브랜드가 대기업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직장생활 10년 차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고 이 시간에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 나 자신이 참 초라하기도 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팀장을 곧 올 거고 나는 곧 일생길거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하지만 이번 진급은 물 건너갈 것 같다. 아무도 내가 진급하는지 모를 테니 말이다. 그게 제일 억울하다 진급도 인사평가도 제대로 못 받고 이 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게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들은 이렇게 일을 하고 퇴근하고 집에 가면 자식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 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회사를 다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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