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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제이 Oct 15. 2024

하루 한편 에세이

<속은 여린 막말녀 혹은 막말남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나는 역사문화 현장 체험수업 강사이다.
   주로 하는 일은 초등학교 혹은 중,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서울의 역사 문화 중심으로 궁이나 박물관을 인솔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봄에 새 학기가 시작되면 초등 3학년은 우리 동네에 관한 수업을 한다.
   그 수업과 연계된 현장 탐방은 우리 동네의 숨겨진 명소, 유적지를 찾아 가보는 수업이다.
   7년 동안 4월부터 6월까지는 초등3학년들과 현장 탐방을 하고, 가을에는 서울의 궁, 박물관을 인솔 및 강의하는 일을 해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4월부터 수업일정이 빼곡했지만, 왠지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초등 3학년과 하는 수업이 좀 더 신경 쓸 일이 많고 피곤해서였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수업과 관련된 장소들이 지나가면 차 안에서 마이크를 켜고 설명해야 했고, 차에서 내려서는 안전에 신경 쓰며 목적지까지 걸어가야 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는 차 안에서 마무리 얘기, 인사 등을 하고 나면 담임선생님에게 설문지를 하도록 한다.
   오늘 수업이 어땠는지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인 것이다.
   그럼에도 해마다 수업을 신청한 이유는 안전하고, 즐겁게 수업을 마쳤을 때 보람을 느껴서다.


   그런데, 난생처음 막말녀 학년부장을 만났다.
   심지어 내가 맡은 반 담임도 아닌, 다른 반 담임이면서 나한테 막말을 한 것이다.
   점심을 먹는 동안은 강사들도 쉬는 시간인데, 그 시간에 다른 강사들도 있는 곳으로 굳이 찾아와서 코스가 왜 다르냐며 따지기 시작했다.
   나도 처음에는 코스가 다른 것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그 막말녀 학년부장은 자신의 반이 갔던 코스를 내가 맡은 반도 똑같이 가야 한다며 막무가내로 소리쳤다.
"이거 내가 사무실에 클레임 걸 거예요. 이렇게 코스를 다르게 하면 어떡해요!! 가던 길이라도 꼭 그 코스를 들리세요!!" (가장 순화해서 적음)
   내가 맡은 반 담임선생님은 안절부절못하셨고, 나는 설명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섰다.
실컷 퍼부은 막말녀 학년부장은 점심 먹고 있는 자신의 반 아이들에게 돌아갔고, 나는 떨리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침착하게 담임선생님과 아이들을 인솔해 대기한 버스에 올라탔다.

   다음 코스로 가는 차 안에서 담임선생님이 나를 위로한다며 한마디 했다.
"말씀을 좀 세게 하셔서 그렇지 평소엔 좋으신 분인데, 강사님이 좀 놀라셨겠어요."
   그리고 사탕을 하나 주었다.
   어쨌든 나는 난리 친 막말녀 학년부장 때문에 수업을 마치고 7년 동안 계속해온 이 수업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다.
   어이없는 것은 그 막말녀 학년부장이 사무실 측 실수로 코스가 변경되어 미안한 마음에 아침에 학교로 찾아온 사무실 대표와 얘기할 때는 다 이해한 것처럼 부드럽게 말해놓고, 나에게는 스트레스 풀듯 성질을 부렸다.

"아니, 내가 원래 일정이 아닌 것도 짜증 났는데 말이야."

    나는 머릿속이 하얬지만 끝까지 내 수업을 마무리해야겠기에 최선을 다해 웃으며 수업을 끝내고 학교까지 무사히 돌아왔다. 그리고 그 학년부장반을 맡은 강사님은 표정이 싸늘해진 학년부장의 눈치를 보며 수업을 마무리했고, 결국 그 막말녀 학년부장은 하지도 않아도 될 수업까지 더 해주신 담당 강사님 덕분에 마무리 수업에 만족했다. 심지어 담당 강사님웃으며 인사까지 했다.

   나는 수업이 끝나고 대표와 통화했다.
   대표는 "아니 그 부장샘이 원래 좀 무서워요. 그래도 다른 반 담당하는 샘한테 뭐라고 한건 너무 하셨네요. 제가 그 부장샘과 통화해 볼게요."

   그리고 한마디 더 했다.

"오늘 일은 잊어버리고 푹 쉬세요. 고생하셨어요. 남은 수업도 얼른 신청하시고요."

   대표가 그 막말녀 학년부장과 통화를 한 들 내가 들은 막말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 막말녀 학년부장에게 사과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다들 강사님들조차

"샘이 이해하세요."

"그래도 샘이 대처를 잘하셨어요."

   이렇게 위로라고 한 마디씩 했지만 내가 받은 상처에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막말하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는 대부분 이렇다. 막말들은 사람에게 이해하라고, 평소에는 안 그런다고, 그냥 그러려니 하라고.

   TV예능에서 어떤 사람이 한 말이 떠올랐다.

"제가 원래 속은 여린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한테 세게 말하는 거예요."

   자기를 보호하려고 남을 다치게 한다는 생각이 참으로 어이없었다.
   막말에 받은 상처가 말 한마디로 치유된다고 생각하는 건 백번 이해해서 마음이 단단한 사람들은 가능할지 모른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려"
   하지만 마음이 진짜 여린 사람들은 그 막말하는 사람의 말에 자존감을 잃고, 일에 대한 회의감을 가질 수 있다. 나처럼.
   피해자에게 이해하라고 말하는 우리 사회.
"이해는 개나 줘버려!"
   막말하는 사람에게 막말하지 못하도록 더 크게 막말을 하면 좀 나아질까?

   그 막말하는 학년부장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생각 없이 한 막말 때문에 누군가 하던 일을 그만둘 수 있다는 사실을.

   물론 깨닫지 못하겠지만, 실제로 나는 다시는 수업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방어할 수업 선택권이 나에게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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