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인생에 한번씩 찾아오는 사춘기와 같은 시기가 있다. 그게 꼭 학창시절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십대의 끝자락, 나에게도 그것이 찾아왔다.
이렇다 할 명문대에 진학한 것은 아니지만 학창시절엔 공부도 곧잘했고, 크게 반항한 적 없이 부모님 말씀도 잘 듣는 착한 딸이었다.
졸업 후 열심히 공부하여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해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되었고 그 때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아니,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아마 고등학생때쯤부터? 내 안엔 인생에 대한 무상함, 우울함이 있었고, 가족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평범하고 착한 내 모습만 보이며 살아왔다.
그러나 감추면 감출수록 아픔은 언젠가 곪아 터지는 법. 공무원이 되던 해에 문제는 터져버렸다.
안정적인 평생직장만을 기대하고 들어갔던 나는 1개월만에 이렇게 생각했다. ‘아, 여기서 남은 몇십년을 어떻게 일하지?’
반복되고 의미없게 느껴지는 일들, 민원인에게 듣는 나쁘고 모욕적인 말들, 뭔지도 모르지만 2시간내에 이루어지는 인수인계, 갑갑한 회사분위기, 내향적인 성격탓에 사람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 무엇보다도 나를 침울하게 했던 건 동태눈알처럼 흐리멍텅해진 내 눈을 거울 속에 마주할 때였다. ‘내가 원래 이런 모습이었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 있다.
저 높은 곳에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안간힘을 쓰며 높은 기둥을 앞다투어 올라가는 애벌레들. 마치 그게 내모습 같았다.
고등학생 때는 수능공부를 하며 생각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면 그 다음은 뭐지? 모르겠다. 일단 대학에 가 보면 알 수 있겠지?‘
대학생이 되고 졸업 후 취업준비를 하며 생각했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면 그 다음은 뭐지? 모르겠다. 일단 취업만 하고나면 알게 되겠지?‘
그리고 취업을 하고 난 후 나는 알게되었다. 그곳엔 없었다. 내 인생이 없었고, 내 행복이 없었다.
나는 누구이며,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그 가장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고민을 나는 미루어왔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맞닥뜨려 고민이 깊어질 때쯤 나는 이미 큰 우울에 빠져있었고, 인생, 직업, 연애 문제로 난생 처음으로 가족들과 크게 부딪히는 시기가 맞물려 찾아왔다.
‘처음이라 그래, 남들은 직장에 적응하면서 다 그렇게 산다’, ‘너 공무원 그만두면 엄청 후회할거야’, ‘제때에 평범하게 연애해서 결혼하면 좋잖아’, ’좋은시기 다 놓치는거다‘ …
나를 걱정하는 말들,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들. 하지만 그 말들이 나를 지켜내지는 못한다. 나를 잘 아는 건 ‘나 자신‘이고, 내가 행복하려면 스스로 길을 정해 걸어가야 한다.
나는 여전히, 지금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하지만 사춘기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누구에게나 인생에 한번은 꼭 찾아오는 시기. 나에겐 지금이 그 때라 믿으며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고 그렇게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전환점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