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부부(夫婦)가 해결할 문제를 전통의 정신에서 찾는다.
가족의 최소 단위 또는 출발점이 부부(夫婦)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부부란 무엇인가? 결혼 한 남녀를 지칭한다.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며 종족 보존의 첫걸음이다. ‘천지가 화합하지 않으면 만물이 나오지 않는다. 혼인은 만세(萬世)의 이어짐이다.’「禮記」 천지가 화합하는 수준으로 결혼을 중시한다. 결혼을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로 표현하기도 하고 사랑의 측면에서는 ‘백년가약(百年佳約)’ 또는 ‘백년언약(百年言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전통적 결혼을 설명한 것이다. 현재 결혼의 의미는 형태나 내용이 매우 다양하다.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지만, 사실적으로는 다양한 모습으로 결혼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부부간에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이 금전적 문제, 성격 차이, 부부의 외도(外道)로 백년가약을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를 시대적으로 살펴보면 유교적 전통이 강했던 농업사회는 여자들이 일방적으로 모든 일에 인내를 통해 부부 관계를 유지하였고 초기 산업사회에서는 경제력이 남성에게 있어 불만이 많아도 여자들이 참고 인내해야 했다. 여성들이 사회 진출이 왕성한 후기 산업사회부터는 여성들의 경제적 능력이 확대되면서 여성의 권위와 위상이 높아지면서 양성평등이 형성된다.
1990년 첫 담임일 때 이혼한 가정이 하나도 없었는데 1993년 다시 1학년 담임하는데 이혼한 가정이 5명이나 되었던 기억이다. 1990년대 설, 추석이 지나면 이혼율이 높아진다는 신문보도도 있었다. 양성평등의 기로(岐路)였던 것 같다. 여성들이 일방적으로 참고 살던 분노를 표출하면서 이혼이 쉽게 현실로 된 것이다. 경제적 문제, 부모 부양 문제, 시가와 처가의 차별 문제, 가사 분담 문제, 성격 차이, 성차별 등이 이혼의 근거였다. 최근에는 양육 문제도 더 첨가된다. 현재는 양성평등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부부 모두가 다 불만족이다. 결혼 자체를 포기하고 결혼해도 출산을 하지 않는 경우가 그 징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통적인 부부 윤리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의 부부 관계를 다시 설정 해보자.
첫째로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자.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부부(夫婦) 한자를 풀이하면서 부(夫)는 하늘(天)보다 높은 사람이고 아내(婦)는 여자가 빗자루(帚)를 들고 서 있는 것이라 해석했다. 그 당시에 철없던 시절이라 선생님의 분석이 맞는 말 같다는 생각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공부를 좀 더 해보니 남자의 열악함을 덮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였다. 대학 시절 도덕성 발달 이론을 공부하면서 콜버거 사상가는 남녀 간에 도덕성 발달의 위계적 차이를 주장하며 남성이 여성보다 도덕성이 높다고 주장하였는데, 길리건이 콜버거 사상을 반박하며 ‘도덕성 발달의 성(性)차’를 주장하면서 남성은 공평성, 정의 분야에 뛰어나며 여성은 보살핌과 관계 중심에 관심을 두는 배려 윤리라고 반박함을 보고 남녀는 차별이 아니라 차이가 있다고 단정했다. 주역에서도 ‘음양이 서로 합일하여 만물이 화육(化育)되고 번영되며, 남녀의 정기가 결합되어 만물이 화생(化生)한다.’ 남녀의 동등성을 근본적으로 인정한다. 오륜(五倫)에서도 부부유별(夫婦有別)을 강조한다. 부부유별이 무엇인가? 서로 다르게 태어나고 다른 특색이 있으니, 차별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라는 말이다. 물론 근본 이론은 차이를 인정하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성 차별이 이루어진 모습이었다. 그래도 하나 배울 것이 호칭이다. 조선의 사대부는 도덕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집단인데 남편을 호칭할 때 ‘영감’이라 호칭하고 아내를 ‘부인’이라고 부른다. 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현대는 호칭을 너무 쉽게 부른다. 존칭을 사용하면 양성평등이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둘째로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전통사회에서는 ‘부부상경(夫婦相敬)’과 ‘상경여빈(相敬如賓)’을 강조했다. 부부상경은 근본적인 입장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언제든지 해야 할 당위적 입장이고 실천 방법으로 상경여빈을 강조했다. 양반 사회에서는 가문과 가문의 연결이 결혼이라 상대를 무시하는 일은 상대 가문을 멸시하기에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부부가 서로 공경의 대상이어야 했다. 최근에는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결혼이라 부부는 서로 존경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의 표식이기 때문이다. 상경여빈은 서로 공경하며 손님 대하듯 하라고 한다. 전통사회에서는 손님을 잘 대접하는 일이 인간 예법의 기준이고 인간 품격의 기준이기에 손님 대접이 매우 중요했다. 지나가는 과객도 극진하게 대접할 정도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손님이 찾아오면 기분 좋은 일이다. 손님 밥상에 대부분 가는 좋은 반찬이지만 남기면 우리 몫이기에 손님 오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아침에 까치가 울면 마당 쓸기와 골목 쓸기가 귀찮아도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다. 우리 조상들의 예의범절 중 지금도 배울 것이 ‘큰절’이다. 친한 친구가 와도 버선발로 맞이하여 방에 들어가서 큰절로 맞절하며 인간관계를 시작한다. 상대를 존중하는 예의부터 갖추고 시작하는 인간관계이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현대 부부도 서로 경제적 이득을 우선하기보다는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로 부부 관계를 시작하면 현실에 나타나는 문제점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셋째는 부부를 훼손하는 가장 큰 문제가 정절(貞節)과 정조(貞操)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이 문제에 담대할 사람은 없다. 지금은 명목상 있지만 실제 적용이 안 되는 법이 ‘간통법’이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법인데 지금은 양성평등에다 사랑과 성의 관계를 자유주의 입장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아서 현실적 적용이 어렵다고 판단하는 사회이다. 결혼 전에는 보수주의든 중도주의든 자유주의든 자기가 좋은 입장을 선택하면 되지만 결혼 후에는 정조를 지켜야 한다. 부처님도 돌아앉는다는 신뢰를 저버리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재벌가 부부의 이혼 소송을 보면 사랑을 바탕으로 결혼이 되어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진주 난봉가 가사에 ‘본댁 정은 100년이요 화류객정 3년이란’ 말이 있다. 잠시 쾌락을 위해 인생 전체를 망치는 일은 없으면 한다.
넷째는 소통과 담론이다. 피가 막힘이 없이 흐르면 아픈 곳이 없다. 가정에 부부간에도 소통이 되면 싸움도 적고 갈등도 적을 것이다. 소통을 위해 담론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이 소득이 많아지면서 대화도 단절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윤리 선생님 수업이 생각난다. 그 당시 정부에서 발표한 1980년대 수출과 국민소득을 제시했는데 한국인의 임금 구조로 볼 때 집에서 노는 사람 없이 모두 나가 일하면 가능한 수치라고 했다. 1977년에는 남자는 직장에 나가 일하고 여자는 집에서 부업하거나 살림을 살던 시기였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는 보기 어렵다 모두 경제적 이득을 위해 밤낮없이 일을 한다. 그러니 대화는 자연적으로 적어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 정보화 사회로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대화는 더 줄어 들었다. 옛날 사람들도 힘든 시기에 우물가에서 수다 떨고 빨래터에서 방망이 두드리며 화를 풀어냈다. 현재 가족 붕괴나 부부의 이별에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대화 부족이다. 학생이나 직장인이 저녁이 있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주 5일 근무와 더불어 일찍 퇴근하여 가족 간의 대화가 필요한 구조적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할 것이다.
2024. 9. 2 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