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稱讚) 받은 선생님
칭찬이란? 좋은 점이나 착하고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하거나 찬양함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은 2002년에 출판하여 밀리언셀러가 되었으며 칭찬 열풍을 불러오게 한 책이다. 그 내용은 칭찬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변화와 인간관계, 그리고 동기부여 방식 등을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의 영향이 아니라도 칭찬은 늘 좋은 것이다. ‘아이 좋다니까 종자닭 잡는다.’라는 속담에서 볼 수 있듯이 칭찬은 좋은 것임이 틀림없다.
내가 처음 교직을 시작할 때 나의 교직관(敎職觀)은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이고 합리적이며 세상 살아가는데 기준이라 여기고 그 생각을 학생에게 강제로 주입하면 좋은 습성이 되고 훌륭한 사회인이 된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내 성품이 모질고 끈질긴 것이 부족하여 학생들을 완벽하게 내 생각을 주입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면 만족해 버리는 편이었다. 교사 초년 시절에는 그 만족도에 이르게 하는 방법으로 당근과 채찍 중에 당근보다는 채찍에 많이 의존한 것 같았다. 학생에게 교육하고 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최단 1년에서 최장 30년이 걸려야 알 수 있기에 채찍에 의존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깨닫는 데는 많은 시행착오보다는 내 자식을 키우면서 나의 교육관이 빠르게 변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나 역시 ‘베이비 붐 세대’라 자식 교육에 매진하였고 수입의 2/3를 과외비로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그리 탐탁하지 못했기에 강제로 무엇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음인지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마음속으로 머리로 깨달았다. 손 치더라도 현실적으로 담임을 맡으면 마음속에 남은 습관적 욕심의 잔재가 내 마음을 더 많이 움직이게 된다. 습관적 욕심은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욕심이다. 바로 비교우위에서 우위를 지키려는 욕심이다. 조금만 더하면 한 단계 올라가고 한 단계 전진하면 인생의 파라다이스가 보일 것이란 신념은 좀처럼 떨쳐 버릴 수가 없기에 칭찬은 좀처럼 나오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신념을 없애면 무력하기 그지없는 담임이라고 철두철미하게 정신적 무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3년간 담임을 끝내고 4년간 부담임으로 수업에 전념했다. 이 시기에 철저하게 학생들의 개별성, 배려하는 행동, 창의성을 기준으로 학생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공동체의 기준에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이 처한 상황적 특수성과 개개인의 차별성이 보이면 ‘엄지 척’이 바로 나온다. 단 그 칭찬에는 정직성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 이유는 정직과 성실이 없는 경우에는 학생의 신념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일시적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학생 개개인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고 기억해 두려고 노력했다. 가끔 위기를 묘면 하려는 학생을 발견하면 갖은 협박과 욕설이 섞인 꾸지람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어두운 전망으로 학생을 거칠게 했을 지난날을 회상하며 헛웃음을 웃고 새로운 칭찬 소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나의 모습에 흐뭇한 웃음을 보내며 많이 좋아진 내 생각에 자부심을 느낀 곤 했다.
2017년 4월 19일 3학년 5반 생활과 윤리 수업을 한다. 올해는 담임이자 학년 부장으로 복귀하여 학생들의 상담자가 되어 주었기에 학생들에게 한 발 더 다가서기 좋은 환경이다. 나는 3학년 4반 담임이기에 늘 5반보다는 4반이 우위에 있음을 암시하며 5반 학생의 경쟁을 유발하고 학년 부장으로 시선을 끌려고 노력도 했다. 그것은 기우(杞憂)였다. 똑똑한 학생들이라 나의 야심을 통찰하고 경쟁이나 질투는 아예 하지를 않는다. 그리고 3학년 수업을 작년까지 수능 시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오직 문제 풀이와 강의식 수업에 몰두하다가 최근 몇 년 동안 연수받은 토론식 수업을 적용하니 학생들과도 훨씬 소통이 잘 되는 것 같다. 이번 시간의 수업 목표는 ‘결혼과 부부의 생활 윤리’이다. 전통적 방식의 결혼 순서를 상식으로 가르쳐주고 부부윤리에서 ‘혼전순결에 대해 각자 의견 교환하기’를 제시했다. 모임마다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데, 혼전순결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토론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세상의 관념과 풍습이 많이 바뀜을 체험한다.
토론하는 각 조 중에 눈에 띄는 조가 있어 그곳으로 가보니 평소 등굣길에 시내버스를 같이 타는 여학생이 발언하고 있었다. 명랑 쾌활하고 인상이 밝다. 성적이 아주 뛰어난 학생은 아니나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이고 교우 관계도 원만한 학생이라 열심히 발언하고 있어 내가 ‘엄지 척’을 날리며 평소 밝은 모습과 진지한 발언 태도를 칭찬하며 장래가 촉망됨을 다시 한번 강조하자 그 여학생도 나에게 ‘엄지 척’을 날리며 우리가 평소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3학년 때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고 졸업했으면 매우 억울했을 거라고 한다.” 갑자기 쑥스러워 손사래를 치며 과찬이라 하니 다른 여학생이 “선생님은 걸음걸이에도 인품이 드러나고 여유가 엄청 많아 보이고 늘 웃는 얼굴이라 우리도 기분 좋아 예” 한다. 평소 그런 말을 듣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이제 알아주는 학생이 있으니 너무 좋다. 표정 관리가 어려워지려고 한다. 간신히 “고마워 “하면서 그 자리를 뜨니 다른 여학생이 ”선생님 수업도 훈시 형이 아니라, 이야기 중심이라 이해하기 좋고 재미있어 예“ 한다. 기분이 너무 좋다. 그러자 다른 조에 학생들이 ”무슨 일인데 “ 하니 ”선생님이 우리에게 잘 대해 주시는 것 이야기했다 “ 한다. 그러니 이쪽저쪽에서 웅성거리며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4년 만에 다시 하는 담임이라 걱정했는데 우리 반이 아닌 옆 반에서 이런 칭찬을 들으니 57살이 되어도 기분이 너무 좋다. 칭찬은 일방적일 때도 있지만 늘 상대적이다. 상대가 적으로 간주하면 절대 칭찬은 나올 수가 없다. 칭찬이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어른도 선생님도 춤추게 만든 것이다. 이 좋은 기분을 어디 자랑하고 싶지만, 자랑할 곳이 없다. 동료 교사에게 이야기하면 100% 외면할 것이고 자랑할 곳은 유일하게 한 곳이 있다. 우리 집이다. 집에 가서 자랑하면 아내도 또 칭찬할 것이란 생각이 드니 오늘 기분이 너무 좋다.
2017. 4. 19. 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