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話頭) 교육

by 석정

화두(話頭) 교육

화두(話頭)란 불교에서 ‘참선하는 선승에게 도를 깨우치게 하려고 내는 과제’이다. 종류가 1,7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화두는 말보다 앞서가는 것, 언어 이전의 소식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참된 도를 밝힌 말 이전의 서두, 언어 이전의 소식이 화두이며, 언어 이전의 내 마음을 스스로 잡는 방법을 일러 화두법(話頭法)이라고 한다. 조선 중기의 고승 휴정(休靜)은 그의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닭이 알을 안을 때에는 더운 기운이 늘 지속하고 있으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는 마음과 눈이 움직이지 않게 되고, 주린 때 밥 생각하는 것이나 목마를 때 물 생각하는 것이나 어린아이가 엄마를 생각하는 것은 모두가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고 억지로 지어서 내는 마음이 아니므로 간절한 것이다. 참선하는 데 있어 이렇듯 간절한 마음이 없이 깨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교육(敎育)이란 사전적 의미로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및 바람직한 인성과 체력을 갖도록 가르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교육은 인간 형성의 과정이며 사회개조의 수단이다. 바람직한 인간을 형성하여 개인 생활·가정생활·사회생활에서보다 행복하고 가치 있는 나날을 보내게 하며 나아가 사회발전을 꾀하는 작용인 것이다. 교육은 어버이와 자식 사이, 교사와 제자 사이, 선배와 후배 사이 등 일반적으로 경험이 풍부한 사람과 미경험자 사이, 혹은 성숙자와 미성숙자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나는 인간이란 생명체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힘으로, 환경을 통해 이러한 자발적·창조적 가능성이 드러나고 개발되어 자기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힘은 후천적으로 성숙자인 부모·교사·선배 등이 이미 계획된 목표와 방향에 따라 미성숙자들을 이끌며, 또는 어떤 목표나 방향의 가능성에 장애가 되는 것을 억제하는 힘이다. 이 두 가지의 힘, 즉 안으로부터의 힘(自力)과 밖으로부터의 힘(他力)이 서로 작용함으로써 교육은 성립된다.

화두 교육은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할까? 모든 학생을 스님으로 만들 것도 아니고 명상(冥想)을 좋아할 학생도 많지 않다. 그러나 화두 교육은 꼭 필요하다. 현실에서 화두 교육만큼 더 좋은 교육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화두 교육을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

학교 교육은 선생님이 좋은 학습 내용으로 학습자 즉 학생에게 가르치는 것으로 학습 내용은 교과 내용과 올바른 인격 형성을 위한 인성 교육이 될 것이다. 교과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현대 정보 사회에서 일명 ‘유명 강사’가 온라인을 통해 곳곳에 포진해 있기에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를 외면하려고 노력하는 학생이 많다. 밤이나 쉬는 시간에 유명 강사의 교육을 듣고 수업 시간에는 잠을 자려는 학생 수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다. 잠자는 학생을 직접 수업에 동참하기 위해 토론 수업, 발표 수업, 체험 학습 등 수업 방식 개선을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이 작금의 공교육 현장 모습이다. 학교 교실로 학생들을 모셔 오려고 노력하지만 대학 수학능력 시험이란 거대한 벽에 교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울러 모든 일에 ‘귀찮니즘’ 학생들도 교사의 수업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올바른 인격 형성을 위한 인성 교육도 쉽지 않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 교육이 국가가 필요한 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기에 성적이 우수한 학생만 인정받는 교육이 대세였다. 좀 더 심한 말로 하면 공부만 잘하면 인성 교육은 필요 없고 ‘서울대학교’에만 입학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수월성(秀越性) 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런 영향으로 성적이 우수한 집단에 근무하는 선생님은 인격적으로나 실력으로 매우 우수하여 존경받는 선생님이고 성적이 떨어지는 곳에 근무하는 선생님은 ‘깡패’로 취급받는 것이 일상적으로 되었다. 도시 근교에 근무하는 내가 직접 경험한 엄연한 사실이다. 어쩌면 어려운 환경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의 인격이 더 완벽해야 학생 지도가 된다는 사실을 사회는 망각하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최정상에 먼저 도착하고 싶은 본능과 욕망이 있기에 정책적으로 평균화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수월성 교육이 없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 1974년 서울, 부산을 깃 점으로 고교 평균화가 이루어졌지만 1983년도에 경기 과학고등학교가 설립되면서 수월성 교육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외국어고등학교 자사고등학교란 이름으로 수월성 교육은 더 발전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를 잘하면 안하무인(眼下無人) 형의 인간이 되고 중간 정도 하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안정적인 밥벌이에 정착해야 하고 공부를 못하면 모든 부분에 열등 주의에 의한 패배주의(敗北主義)에 빠져 꿈과 희망조차도 없어지는 것이 한국 교육의 현실이다. 가정교육부터 시작한 수월성 교육의 힘에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의 무능함과 무기력이 갈수록 깊어져 간다. 그래도 올바른 인격 형성을 위해 일부 교사는 밤낮없이 힘을 쏟고 있는 것이 한국의 교육 현실이다.

현재의 학생은 영특하지만 외롭고 고집이 아주 세다. 부모님의 높은 학구열에 사교육이 발달하고 좋든 싫든 부모의 뜻에 따라 공부하니 모두 똑똑하다. 그러나 부모님이 모두 직업이 있어 바쁘고 형제자매의 숫자가 적다 보니 사람이 그립다. 누구하고 속 시원하게 이야기할 곳도 없다. 형제자매의 경쟁 없이 홀로 자라기에 벤치마킹할 곳도 없고 간섭받을 일도 없고 바쁜 부모는 경제적 지원을 풍족하게 해 주어 공부만 잘하면 만사형통이라고 치부한다. 옛날에 버릇없고 인간 됨됨이가 안 된다고 비판하던 ‘독자(獨子)’가 자란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이런 환경에 살다 보니 남의 말은 안 듣는 것이 현대의 학생이다. 2000년 이전 교육에는 학생이 교칙을 어겼을 때 선생님의 시대적 권위와 강압적 힘 때문에 순간적으로 행동을 바꾸는 시늉을 했다. 이제는 선생님이 손끝만 건드려도 고발당할 위기에서 학생들의 인성 교육은 어떤 방법으로 가능할까? 필자는 화두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상적인 행동은 순간적인 순발력에 의해 행하는 예도 있지만, 대부분의 행동은 습관에 의해 자연스럽게 나온다. 성격이 일관성 있게 지속하여 행동화되었을 때 그 사람의 인격, 품성이라고 한다. 선천적인 본성인 잠재 능력을 바탕으로 후천적인 행동의 목표 지향점이 합치될 때 인성 교육이 형성된다. 인성 교육은 습관이 굳어지기 전에 해야 효율성이 좋기에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사춘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인성적 기초가 굳어진다. 사춘기 이후에는 본인의 고집이 더 완강해지기에 일반적인 교육으로 자신의 잘못된 습관을 변하게 하기는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화두 교육은 유아나 초등교육보다는 중등 교육에 더 적절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기 때문이다. 유아나 초등은 감각적 감성적 행동이 많지만, 중등은 아직 초보 단계이지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수업 시간에 잠자는 학생에게 왜 잠을 자느냐고 물으면 본인이 자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주변 상황 때문이고 강변함을 볼 수 있다. 이런 핑계가 사회에서 적용될지는 미지수지만 일단 잘못된 행동에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자기 잘못을 자기 합리화로 정당화하려고 시도함을 볼 수 있다.

나는 테니스를 좋아한다. 약 20년쯤 된 것 같다. 개인지도 한번 받지 않고 어깨너머 배우고 내가 좋아 보이는 부분을 벤치마킹하며 치고 있는데 늘 10% 부족함을 느낀다. 올해 개인지도를 신청했다. 코치가 자세히 설명하는데 전부 잔소리로 들린다. 왜냐하면, 굳어져 있는 나의 습관을 단숨에 바꾸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도 내 자세가 잘못 형성되었다고 판단하기에 개인지도를 신청하여 10% 부족을 메꾸어 보려고 했는데 너무 많은 조언 때문에 개인지도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같이 치는 사람들이 잠깐씩 내 치는 자세나 방법에 대해 지적한다. 그 사람이 요구하는 것 거의 듣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지적한 것을 혼자 있을 때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연습한다. 고치려고 무척 노력하는 내 모습에 나도 놀란다. 여기서 깨우친 것이 화두 교육이다.

화두 교육을 하기 위해 선행해야 하는 것이 공감(共感)이다. 공감이 형성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잔소리기에 오히려 부작용이 더 심하다. 우선 학생을 믿어주어야 한다. 믿는 것도 내 마음이 아니라 상대가 인정할 정도로 믿음을 주어야 한다. 믿음을 주는 것은 어렵다. 내 마음을 비우고 접근해야 한다. 가장 온화한 표정으로 학생에게 접근하여 공감을 형성하자. 그리고 학생이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부터 고쳐 나가면 된다. 지식적으로 경험적으로 논리적으로 앞서 있다고 논쟁을 통해 학생들을 지도하려고 하지 말자. 학생은 잔소리로 들리고 자신의 패배로 인해 원상 복귀한다. 화두는 고승이 선승에게 주는 그것으로 생각하고 선생님은 도가 넘치는 고승으로 거듭나야 한다.

내가 담임한 학생이다. 지각이 잦다. 부모가 이혼하고 식당업을 하는 엄마와 같이 사는데 엄마는 식당 일이 늦어 식당에서 자고 아침 일찍 전화로 아들을 깨워주는데 일어났다가 다시 자고는 늦어서 부랴부랴 학교 오지만 늘 지각이다. 보통 선생님이면 문책부터 하고 그래도 지각하면 막말한다. 나는 늦게 오는 학생을 포옹해 준다. 아버지 비슷한 냄새라도 맡으라고. 학생의 말을 빌리면 신기하단다. 1학년 때는 지각하고 선생님 곁에도 가기 싫었는데 2학년에는 선생님이 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더란다. 그래서 지각부터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5월부터는 거의 지각이 없다. 3학년에 진학하여 다른 반이 되었는데 지각 하루하고 일주일 교무실 앞에서 반성문을 쓰다가 자기 성격 못 참고 집으로 가버렸다. 엄마가 와서 담임 좀 바꾸어 달라고 읍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퇴하고 말았다. 학교 사정이야 어찌 되든지 내가 담임 맡아 아이를 살리겠다고 해도 역부족이다. 지금은 페이스북을 통해 근황을 점검한다. 나이가 25살인데 군대 갔다 와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엄마 식당 일도 돕는다고 한다. 대학이라도 나오면 자존감 때문에 좀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본다.

인간의 행동을 너무 쉽게 보지 말자. 하나의 행동을 위해 많은 생각을 하고 준비하고 노력해야 행동이 된다. 불우한 환경에서 인간의 의지만으로 극복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부모가 가장 좋지만,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있어도 역할이 없는 경우가 많다. 부모 다음으로 인성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동행할 친구이다. 친구는 공감이 형성되어 있다. 현실적으로 친구가 없으면 학교생활이 힘들기에 친구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친구가 같이 놀면서 잘못된 부분이 자연스럽게 치유할 수 있으나 약점이 있다. 친구가 바람직하지 못하게 조언할 때 몹시 나쁜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교육해야 한다. 비록 3순위지만 최선을 다해 화두 교육을 하면 세상이 혁명적 수준으로 바뀌지는 않지만 부드럽거나 밝아질 것이다.

2018. 10. 10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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