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自負心)
2022학년도 스승의 날은 일요일이다. 옛날에는 학교에서 스승의 날에 전체 모임을 하여 꽃 달아주기 행사했지만, 없어진 지 오래되었고 스승의 날 행사는 반을 중심으로 담임에게 축하 행사를 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금요일 체육대회로 일정이 계획되어 있어 3학년 7반 학생들이 목요일 7교시에 부담임이라고 칠판에 사랑하는 선생님이라 적고 고갈 모자 쓰게 하고 손 글씨로 장판지 만들어 스승의 노래도 불러준다. 이제 이런 행사도 2번이면 끝이 난다. 감사한 마음에 내일 체육대회에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막상 체육대회 시작하여 아이스크림을 사주려니 담임이 3학년 학년 회의에서 개별적인 음식물 반입을 하지 못하도록 의결했다고 한다. 최고령 교사가 규칙을 위반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지만, 후배 선생님 배려 차원에서 더운 여름에 먹자고 반장과 합의했다.
지난주가 어버이날이라 제자가 찾아왔다 졸업한 지 8년이 된 제자로 젊은 나이에 사업에 성공한 제자이다. 성공의 기준은 년 수익이 많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는 것이다. 스승님보다 어버이날 찾아오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 일찍 왔다고 한다. 비싼 양주를 선물하면서 선생님이 술 싫어하실 것 같은데 무난한 선물일 것 같아서 구매했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평소 무엇을 애지중지하시는 것을 본 적 없어서 그냥 술을 준비했다고 한다, 내가 애주가 중에 최고의 애주가인데 3년 동안 가르침을 받아도 내가 술을 못 먹는 줄 알 정도면 내 술 습관이 아주 좋다는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낀다.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니 부모님이 먼 곳에 있어 그곳에 가야 한다면서 일이 바빠 자주 못 찾아뵙지만, 마음속으로 늘 부모님처럼 생각한다는 덕담도 놓치지 않는다. 그러면서 전화기에 ‘멋진 샘’으로 저장되어 있어서 선생님 성함을 잊어버릴까 두렵다고 너스레도 떤다. 감동을 듬뿍 받는 하루였다.
체육대회 관람하며 운동장에 서 있는데 낯선 총각이 나를 찾더니 커피 40개 배달 왔다고 한다. 누가 보냈느냐고 묻자. 제자 이름을 말한다. 조금 후 전화가 와서 ”아빠 스승의 날 축하해 “ 한다. 우리 아들하고 나이가 같아 학교 다닐 때도 아빠라 호칭했고 결혼식 주례도 본 제자이다. “무슨 커피를 이리 많이 보냈나? “하자 내가 김포에서 커피숍 하는데 커피 보내야지. 아빠가 교장도 못 하는데 어깨 으쓱하며 기분 내야지?” 한다. 제자의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하여 걱정하는 부분을 컨설팅하고 학습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자 병원 의사에게 상담받았는데 이제 “우리 선생님과 해야겠네. 아빠는 역시 대단해” 한다. 마산 내려오면 밥 사줄게 했더니 좋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운동장에 있는데 꽃집 사장님이 꽃바구니를 들고 교무실로 올라간다. 또 누군가 기분 좋은 선생님이 있겠네. 하는데 내 전화기 진동음이 심하게 올린다. 올해 45살인 제자이다. “ 선생님 오늘 선생님 뵈러 학교 가려했는데 신랑이 코로나-19 확진이라 못 가겠네요.” 한다. “고맙다. 늘 잊지 않고 챙겨주어서” “고맙기는요.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데 선생님 은공이 얼마나 큰데 그런 말씀하십니까?. 코로나-19로 동기 모임이 없어 선생님 회갑 잔치하려고 의견 많이 모았는데 모이질 못해 못 했답니다.” 한다. 아동학 박사학위가 있어 개인 상담실도 운영하는 제자이다. “선생님 담에 저녁 식사나 해요” 한다. “그러자꾸나. 내가 살게”
“선생님” 하면 큰 소리로 부른다. “왜” 하니 “그런 말씀 마세요.” “알았다.” 역시 기분 좋은 전화다. 체육대회가 오전 마무리 축구 게임을 한다. 손홍민보다 약간 낮은 실력으로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제자들이 상큼해 보인다. 10살쯤 적은 후배 선생님이 식사하러 가자고 한다. 선생님이 조금 빨리 식사해야 학생들이 빨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사 후 교무실에 오니 내 책상 위에 꽃바구니가 화려하게 앉아 있다. 아까 꽃집 사장님이 배달 온 꽃바구니가 내 책상 위에 있다. 보낸 사람이 편지가 있어 보니 지금 20대 후반의 제자이다. 내가 따뜻하게 제자에게 사랑 주는 것을 보고 교사의 꿈을 키워 현재 고등학교 체육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제자이다. 주옥같은 손 편지를 읽고 있는데, 교무실의 선생님 한분 한분씩 내게로 와서 인사를 한다. “ 커피 잘 먹겠심더. 역시 홍 부장님이라 예” 한다. 40개 배달온 커피를 점심시간에 선생님에게 제공된 모양이다. 멋쩍게 웃으며 “ 내가 대신 받은 커피에 불과하다. 다 선생님이 가르친 학생들인데 뭐”라고 화답했다. 그래도 대단합니다. 하면서 커피를 손에 들고 자기 자리로 간다. 연달아 전화가 오고 카톡으로 선물도 보내온다.
해마다 겪는 일지만 스승의 날은 나를 위해 만든 날 같다. 교직 경력 34년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 주어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고 교장이 못되고 정년을 맞이해야 하는 보상책 같기도 하다. 다른 선생님도 표시는 나지 않지만 나름 제자들에게 조용히 인사받을 거란 생각도 해 본다.
34년 교직에서 나름 투철한 교육관이 있었다. 우수 학생 위주의 입시교육은 사절하고 우수 학생과 성적 부진 학생 중에 성적 부진 학생에게 더 많은 관심 가져주기였다. 그렇다고 입시를 등한시하지 않았다. 입시 성과가 좋아 3학년 담임 10번과 3학년 학년 부장을 4번이나 했다. 진학지도를 이렇게 많이 한 선생님은 학교에서 내가 유일하다. 평등하게 제자를 대해주니 모두 자기를 좋아한다고,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소외되고 성적이 부진한 학생은 늘 따뜻하게 품어 주고 보통 학생은 평등 의식에서 장난도 치고 형님 분위기를 연출하며 친근감을 붙이고 수업은 예를 들어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중에 차별 없는 학생 지도가 가장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학생들에게 최고의 ’ 배려‘를 베풀었다. 상담은 늘 눈높이에서 설교나 강의나 명령이 아니라 대화 위주로 하였다. 학생에게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 머리로 익히고 마음이 변해야 행동과 습관이 바뀌는 이치를 깨닫고 「화두(話頭) 교육」을 실천하였다. 이런 교육관이 졸업하고 시간이 갈수록 나를 머리에서 잊지 않게 한 요인 같다는 생각이 든다.
34년 교직 생활로 윤리 수업을 듣고 졸업한 제자가 9천 명 정도가 되고 내가 담임이라도 한번 한 학생이 졸업한 숫자가 천명이 남짓 될 것 같다. 그 많은 숫자에 몇 명이 인사한다고 호들갑을 떤다고 비난할 수 있지만, 밖에 나가 보면 진짜 많은 졸업생이 감사의 인사를 한다. 다른 학교에서 명예퇴직한 선배와 같이 술 마시러 가면 “자기가 선생 했던 것이 부끄럽다며 부러운 선생님”이라고 자주 이야기한다. 술을 마시고 계산하려면 주인이 웃으면서 누군가 계산하고 갔다고 하고 아니면 술좌석에 앉아 있다가 뛰어나와 선생님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계셔서 끝나면 인사하려 했다며 계산을 대신하고 시내버스 타고 가는데 큰 소리로 “싸부님 안녕하십니까?” 하며 조폭 인사도 하고 동기들 모임에 초대도 많이 받고, 50대 제자들이 살아 보니 선생님이 귀한 줄 알았다며 선물 보내온 수가 좀 많다. 시내버스를 타고 출, 퇴근한 지 10년 남짓 되었다. 한 번은 직행버스가 정차할 수 없는 시내버스 정류장에 차를 세워 문 열고 “선생님 타이소” 한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 망설이는데 “선생님 제자입니다. 타이소” 한다. 버스를 타 보니 나에게 수업 들은 학생이고 담임은 하지 않았다면서 선생님이 보여서 너무 기쁜 마음에 불법 정차했다고 하면서 우리 집의 위치까지 알고 집 앞에 내려 주면서 승차 손님에게 상황 설명하며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그래서 내가 선생님으로 자부심을 느낀 것이다.
지금 재학생도 “할아버지 선생님”이라 절대 호칭하지 않는다. 그냥 소통하는 선생님이다. 서로 사랑하는 선생님과 사랑하는 제자로 오래 남고 싶단다. 30년 후에 꼭 찾아뵐 것이니 ’ 건강하시라 ‘ 한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2022. 5. 17. 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