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조국 일식 과학 유람기 #11 - 뉴욕의 시작은 자연사박물관
전날의 장엄했던 개기일식의 여운이 남아있는 아침, 뉴욕주의 주도 알바니에서 하룻밤을 자고 호텔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지금까지와 달리 알바니부터는 아침에 오믈렛도 만들어 주는 등 호텔이 조금은 고급스러워졌습니다. 이번에 뉴욕주(州)의 주도가 뉴욕시가 아니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미국의 수도가 뉴욕이 아닌지 알고 있었으니 이 정도는 몰라도 넘어가 주시죠^^
초현대적인 뉴욕시와 달리 알바니는 뭔가 유럽 도시 같이 건물들이 고풍스러웠습니다. 호텔 바로 앞에 시청과 교회가 있는데 둘러볼 시간도 없이 뉴욕시로 출발해야 해서 아쉬웠습니다. 참 미국이 큰 나라이기는 합니다. 주도인 알바니에서 뉴욕시까지 2시간이 넘게 걸리네요. 하긴 뉴욕주의 면적이 남한의 1.4배니까요.
최근 미국 정치 전문가인 김지윤 박사가 소개하는 책 <분열하는 제국(콜린 우다드 箸>에서 미국은 50개의 주가 아닌 11개의 지역과 국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뉴욕시는 뉴욕주와 별개로 '뉴 네덜란드'라는 지역으로 구분을 했더군요. 뉴욕주는 서쪽으로 길게 중부까지 연결된 미들랜드로 구분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행정구역으로 나누는 지역 구분으로는 미국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미국은 스포츠에 진심이죠. 뉴욕시로 가는 중간에 들른 뉴저지의 휴게소 이름이 빈스 롬바르디(Vince Lombardi) 휴게소입니다. 그린베이 패커스 감독으로 5번의 NFL 우승과 초대 슈퍼보울 우승을 한 업적을 기려 현재 슈퍼보울 우승컵 이름이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로 불립니다.
휴게소 안에는 빈스 롬바르디를 포함해서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월드시리즈 우승 10번에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명언을 남김) 등 뉴저지 명예의 전당에 오른 스포츠 선수, 코치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뉴욕시 쪽으로 갈수록 우리나라 최신 휴게소 같이 큼직하면서 깔끔하고 내부에 푸드코트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버스는 꽉 막힌 뉴욕 맨하탄 도심을 뚫고 존 레넌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아파트 앞 다코타 공원이라는 작은 공언에 도착했습니다. 팝송을 처음 듣던 80년대 초중반에 이미 비틀즈는 신화였고 팬의 권총에 맞고 사망한 존 레넌은 더더욱 신화적 인물이었습니다. 감수성 풍부하던 시절엔 Hey Jude가 존 레넌이 이혼하고 오노 요코와 결혼하자 홀로 남은 아들인 줄리안 레논을 보고 슬퍼하지 말라고 만든 노래라는 설명을 듣고 거의 울다시피 하며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일행은 삼상오오 흩어져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처럼 돗자리를 깔고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분위기 살리려고 존 레넌의 Imagine을 틀고 먹으니 뭔가 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버스에 탑승하기 전 공원을 둘러보는데 바닥에는 Imagine이 새겨진 모자이크 타일이 있어서 모두들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 앞 벤치엔 기타를 치며 비틀즈와 존 레넌의 노래를 하는 분이 계시더군요. 저도 바닥 표식에 애도를 표하고 연주자께도 소량의 찬조를 하고 떠났습니다.
버스를 타고 맨하탄의 꽉 막힌 도로를 거의 걷는 속도로 이동해서 도착한 곳은 뉴욕 자연사박물관이었습니다. 유명한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1편의 무대가 된 곳이죠. 이번에 글을 쓰면서 여태 <박물관'은' 살아있다>로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2편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이었으니 먼저 다녀온 셈이네요)
출입문 밖에서 아트리움 유리 안쪽이 보이는데 태양계 모형입니다. 과거 뉴욕 자연사박물관을 건립할 때 관장이던 닐 타이슨 박사가 과감하게 명왕성을 없애 버린 일화가 있습니다. 그때까지 유일하게 미국인이 발견한 태양계 행성인 명왕성이 없어서 계속 문의가 왔는데 닐 타이슨 박사는 명왕성은 행성의 정의에 맞지 않아서 뺐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했죠. 2006년 8월 국제천문연맹(IAU)에서 명왕성이 퇴출되자 닐 타이슨이 그 원흉이라고 많이 비난했다고 하죠. 대중의 비난에도 과학적 소신을 굽히지 않은 닐 타이슨 박사와 삼체에서 홍위병의 협박에도 과학자의 양심을 버리지 않던 예저타이 교수가 겹쳐 보이네요.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과 비교하면 일단 규모가 좀 작습니다. 대신 우주탐사부터 포유류 박제, 공룡화석, 곤충 전시까지 정말 자연사를 모두 한 곳에 모아 전시해 놓았습니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 포유류 전시관에는 박물관이 살아있다에 나온 것처럼 다양한 박제를 이용한 디오라마를 아주 생생하게 잘 만들어놨습니다. 이정모 관장님이 워낙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시니 우리 여행단의 초등학생 자녀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집중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전시는 곤충 전시관에 있는 개미 전시였습니다. 개미집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미들이 실제 나뭇잎을 잘라서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입체적으로 만들어놔서 어린이들이 정말 재미있어했습니다. 저도 어릴 적 파브르 곤충기를 읽고 잔디밭에서 개미를 관찰하던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곤충 전시관이 끝나는 곳의 홀은 마치 가우디의 건축물을 연상케 하기도 하고 개미집을 거대하게 확대해 놓은 듯해서 건축적으로도 흥미로웠습니다.
거대한 공룡 화석이 전체적으로 적은 대신 현재까지 발견된 공룡 중 가장 거대한 파타고티탄 마요룸(Patagotitan mayorum)의 화석이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에서 발견한 화석으로 이정모 관장님 말씀으론 규모 면에서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밀린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 공룡 화석이 들어오며 자존심을 회복했다네요. 커다란 방 하나가 오롯이 이 공룡 화석에 배정되어 있는데 너무 길이서 머리가 문을 뚫고 나가 있습니다.
보통 화석하면 공룡을 떠올리겠지만 뉴욕 자연사박물관엔 매머드 등 신생대 포유류도 있고 공룡 외에 익룡, 각종 어류, 고래, 기타 해양 파충류 등의 화석도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멸종한 검치 호랑이, 일각돌고래와 박쥐 등의 화석과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실라칸스도 재현해 놨습니다.
참고로 익룡은 공룡이 아닌 별도로 분류됩니다. 그리고 공룡의 진화 계통도를 보여주면서 지금은 새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새는 공룡의 직계 후손이라기보다 중간에 갈라져 나와서 살아남은 방계라고 봐야 합니다.
트리케라톱스와 함께 인기 있는 공룡으로 스테고 사우루스가 있습니다. 목부터 꼬리까지 납작한 판 같은 것들이 쭉 이어져있죠. 영화에선 티라노 사우루스가 사냥을 하는데 사실은 거짓말인 게 시대가 멀어도 너무 멉니다. 스테고 사우루스는 중생대 초기인 트라이아스기에 살았던 공룡들의 조상쯤 되고 티라노 사우루스는 중생대 후기인 백악기에 살았습니다. 둘 사이의 거리가 티라노 사우루스와 사람과의 거리보다 멀다고 합니다.
박물관에 나가기 직전 달 모형과 함께 바닥에 저울이 있었습니다. 달의 중력은 지구의 1/6이라 저울 위에 올라가면 당신의 몸무게가 이렇습니다 하고 보여줍니다. 그런데 단위가 파운드네요. 과학관에도 단위가 파운드라니요. 역시 미국은 미국입니다.
이제 공식여행 일정은 모두 끝나고 호텔로 입실하여 이틀간의 확장팩 자유여행이 시작됩니다.
이후 자유의 여신상 관람 등도 있었지만 자연사박물관 글이 길어져 따로 올리겠습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