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 여행자다 #7

<SF 연재소설> 2040년 노동의 종말

네오 - 1


사건 현장을 계속 기웃거려 봤지만 안전요원들의 저지로 떠밀리듯 사옥 구석으로 밀려났다. 할 수 없이 귀가를 위해 스마트 글라스로 택시를 불렀다. 약 5분 후 무인 택시가 도착했고 앞자리 오른쪽에 탔다. 택시엔 다른 승객이 없었다. 스마트 글라스로 오늘 촬영한 영상을 편집시켰다. 편집을 하는 동안 TM 사옥 앞의 사고에 대한 뉴스가 있나 검색해 봤지만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TM이 즉각 보안 프로토콜을 작동시킨 것이 분명하다.


택시 모니터에 100m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비추며 합승해도 되는지 음성으로 물어왔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선글라스에 마스크를 쓴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옷차림이 꺼림칙했지만 택시 안에 카메라가 있으니 괜찮겠지 싶었다. 집으로 가는 경로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좋다고 했다. 곧 택시가 멈추고 후드티 남자가 내 옆자리, 예전이라면 운전석 자리인 앞자리 왼쪽에 올라탔다. 남자는 가볍게 목례를 하더니 피곤한지 눈을 감았다.


스마트 글라스에 1차 편집본이 띄워졌고 총 15분 분량의 영상이 자막까지 더해져 편집되어 있다. 이전 영상을 참고로 썸네일 영상까지 제작이 끝나있다. 별로 손 볼 것도 없이 기가 막히게 편집을 했다. 참 편리하긴 하다. 이 시대엔 영상 편집자라는 직업 자체가 없어진 지 오래다. 그래도 몇몇 장면은 수정을 위해 음성 명령을 내려야 하지만 옆자리에 승객이 있어 나중에 하기로 했다. 어제 보던 영화를 보기로 했다. 이내 몰입 모드로 중세의 기사들이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한참 갑옷 입은 기사가 창을 들고 적진으로 돌진하고 있는데 왼쪽 팔을 툭 치는 것이 느껴졌다. 옆자리 남자는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건네주고는 아무 말 없이 택시에서 내렸다.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손글씨가 쓰여있었다.


송파구 송이로 37길 45, 1hr?


'뭐지? 여기서 1시간 후에 보자는 건가?'


뭘 믿고 이 남자를 만나러 가지? 보통 영화 속에서 호기심에 모르는 사람을 따라간 주인공은 좋은 일보다는 위험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누구에게 원한 산 일도 없고 그렇게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괜찮지 않을까? 아니, 나는 은근히 유명인사고 보상금을 받고 인플루언서가 됐으니 한몫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쪽지를 줬을까?


결국 호기심이 불안을 이겼다. 택시의 목적지를 쪽지 속의 주소로 바꿨다. 내 행선지가 택시와 스마트 글라스에 기록이 될 테니 혹시 문제가 생겨도 경찰의 추적이 가능할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택시가 멈춘 곳은 송파대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아직 시간이 20분 정도 남아서 걸으면서 골목을 살펴봤다. 송파대로에서 겨우 두 블록 정도 들어온 곳인데 대로변의 고층 빌딩과 아파트들과 너무 다른 풍경이다. 아직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다. 보수를 안 한 지 꽤 오래된 3~4층짜리 빌라들이 늘어서 있다. 골목에 사람도 없고 마침 흐려서 그런지 무척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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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시간에 택시에서 내렸던 곳으로 돌아왔다. 필로티 아래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뒤에 아까 합승했던 남자의 후드가 보였다. 손을 들어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 뒤 빌라 뒤쪽으로 사라졌다. 심호흡을 하고 뒤따라갔다. 빌라를 돌자 반대쪽 모퉁이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몇 번을 그런 식으로 간격을 유지하며 골목길을 돌아가다 보니 막다른 골목에 남자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자 벽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201호. 그 남자를 따라 들어간 집 안에는 가구가 거의 없었다. 남자는 택시에서 본 옷차림 그대로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스크를 쓴 채 식탁 앞에 앉아있었다. 그는 말없이 앞자리를 권했다. 내가 앉자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네오라고 합니다."


"네오라고요? 혹시 옛날 영화 매트릭스라고 아시나요? 거기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 네오인데요. 저는 누구인지 아시나요?"


"매트릭스는 압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성경 같은 영화지요. 그리고 당신이 누군지도 압니다. 해 끼칠 생각 없으니 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이제 불안은 사라지고 호기심만 남았다. 네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