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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Y May 12. 2024

Epilog. 나는 한 마리의 고독한
대학원생이로소이다

5년간의 고독감, 외로움, 불안의 서막

  이제는 고독하지 않다. 심신불안정 쓰리콤보에 해당하는 외로움과 우울, 불안에서 벗어나니 그제야 5년 전 마음의 테두리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상태에서 나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한들, 답을 찾기란 불가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내가 이런 상태였구나' 스스로 다독여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박사 과정의 종점을 찍기 전까지 아직 할 일이 남았지만, 생애 첫 고독감을 맞이하여 힘들었을 20대 초반의 나를 30살이 되기 전에 이해해 줄 수 있어서 그나마 참 감사한 마음이다. 


  고독했던 한 마리의 대학원생 이야기는 5년 전인 2019년, 석사 과정에 들어오면서부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석사 과정에 입학한 지 2달쯤 됐던 나는 등록금비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해 교육조교로 일하면서 한 마디로 교수님 연구실의 이인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한 날은 수업을 마치고 연구실에 들어와 개인 책상에 교재를 툭! 내려놓는 순간, 머리부터 가슴까지 이상한 기분에 15분 정도 점령당한 느낌에 휩싸였었다. 희미한 시그널이 무의식 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너 지금 망망대해에 서 있는 느낌이지 않아?' 친했던 선후배들 모두 떠나고 혼자 공부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기 무서웠던 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통달해야 할 것 같은 부담스러운 압박도 있었고, 졸업에 대한 의욕도 앞섰던 상태였다. 그래서 이렇게 불안해하던 나 스스로를 그저 겁쟁이로 취급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고립감으로 불안했던 그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무시했던 것이 결국 화근이 되어 고독감으로 변질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고독감은 한 번 빠져들면 끝도 없이 하강 나선 곡선을 그리며 사람을 늪으로 끌어들인다. 외로움 없이 살았던 시절의 기억이 흐릿해지다 못해 투명해지고, 괴로움의 골은 더 깊어져간다. 처음에는 외로움으로 시작해서 우울이 그 뒤를 잇고 불안도 가세하여 심신을 괴로움에 묶어둔다. 실제로 겪어보니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최근에 '대학원생 자살'에 관련된 한 뉴스 기사를 보면서, 내가 겪은 이 모든 괴로움이 나만의 일이 아니었구나, '내가 저기 있구나. 저기 있었구나.' 속으로 되뇌며 대학원생의 힘듦을 더욱 절실하게 통감한다. 이들의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논문의 막막함과 불합격과 수정의 두려움, 꽉 막힌 교수님들의 실상을 매일 같이 대해야 하는 사제관계의 고통과 차별대우, 그리고 생활비 부족으로 인한 생존 문제까지. 연구가 뭐라고 사람을 죽음으로 까지 몰아가나 싶은 생각에 기사를 읽으면서 회의감이 해일만치 엄습해 오기도 한다. 


  사실 대학교도 하나의 조직 세계라서 직접 발 내밀어 들어오지 않으면 아무리 부모라 해도 그 세계에서 펼쳐지는 고난을 이해하기 힘들다. 공무원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은 공무원 세계의 고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대학원생의 어려움은 대학원생만이 알 수 있고, 공감 형성이 그나마 가능하다. 그렇다고 이 글에서 대학원 생활의 어려움을 나의 경험만을 바탕으로 일방적인 함축을 하고 싶지 않다. 각자 처해있는 대학원 안의 복잡한 인간관계 문제의 어려움은 그 정도가 제각각이고, 자기 논문이 세상에서 제일 막막한 법이니까. 진부한 스펙터클의 연속인 나날이니까. 


  다만, 힘든 분들이 계시다면 여기 한 때마다 고독과 외로움에 허덕이던 대학원생 한 마리가 있었다는 것을 손 들며 말해주고 싶다. 힘들 수 있지만 괴로움을 키우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이것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고, 이 또한 좋은 경험이고 영양가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하여 너는 꼭 이 산을 넘을 수 있는 힘이 있을 거라 믿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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