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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Y May 12. 2024

5년간의 슬럼프와 휴학

나를 살린 건 대학원 이외 모든 일

   올해로 9년째 같은 학교에 머물고 있다. 오래된 선배부터 후배의 후배들까지, 그들의 졸업을 해마다 줄줄이 지켜보고난 뒤에도 난 여전히 떠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좀 지겹고, 재미없고, 새로움 없는 날들의 연속, 단색무취의 삶처럼 비칠 수도 있는 시간이겠지만 나에게만큼은 결코 단조롭지만은 않았던 지난날이었다. 첫 슬럼프는 4년 전에 예고 없이 닥쳤다. 나만 남고 하나둘씩 떠나버리는 상황에서 누가 '훅!' 하고 나를 그물망으로 덮친 것만 같았다. 미끼를 물어버린 건가. 그때부터 막막한 고독감과 이유 없는 우울감이 나를 휘감기 시작했다.


  우울한 사람한테는 자신에게 답 없는 질문을 계속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내가 딱 그랬다. 그때는 화장실에서 볼 일 보면서, 또는 씻으면서, 일상의 순간마다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등 후회도 자책도 아닌 허망한 생각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참 많이 했었다. 당연히 답이 나올 리가 있나. 사실 시발점은 불안 때문인데, 그때는 내 마음을 바로 관조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다른 이유로 핑계 아닌 핑계를 댔다. '공부의 초심을 잃어버려서?', '아예 이런 질문의 의미가 퇴색될 만큼 내가 너무 멀리 와버렸나' 나중에는 힘든 이유를 자체적으로 지어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결국 난 자퇴서를 냈다. 학사 4년, 석사 2년, 그리고 박사 1학기까지 총 13학기를 다니는 동안, 단 한 번의 휴학도 하지 않았던 내가 자퇴서를 낸다니. 참 그동안 너무 성실하게 다녔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 이런 결말이었을 것 같으면 그냥 남들 하는 것처럼 휴학도 좀 하고 그랬으면 좀 나았을까도 싶었다. 지쳤었고, 불안했고, 일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돈도 없이 이렇게 공부만 하는 게 맞나 자기 확신도 부족했었다. 무엇보다 박사과정을 밟는 그 자체에 대한 스스로의 자부심이 부족해서 내린 선택이었다.


  그래, 불안하면 돌아가자. 그렇게 나는 대학원 생활을 잠시 접고 26살이던 해 9월, 학교 조교직에 지원해서 난생처음 일을 시작했다. 교수님께는 학교를 더 이상 다니기 힘들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 일하면서 직장인 생활로 인해 바뀌었던 생활패턴이 돌아오고, 새로운 업무에 적응한다고 매일을 전쟁하듯 보내니, 들쑥날쑥하던 마음이 피로에 의해 정복되어 요동치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집에 들어오면 발 닦고 자기 바빴고, 그 덕에 수면도 충분히 취할 수 있게 되면서 불안정하던 지난날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쉽지 않은 일에 이따금씩 몸살을 앓았어도,

돌이켜보면 나를 살린 건 대학원 생활 이외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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