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심연의 나
나도 외로움을 탈 수 있구나. 대학원에 들어와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앞에서 기뻐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지금의 나의 상태에 대해서 도대체 어떤 표정과 말을 덧붙여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 배우고 쌓아 올려야 할 공부도 많고, 학문적 능력도 부족한 판국에 홀로 외로움과의 전쟁을 감당해야 한다니. '외로움 앞에서 장사 없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서서히 고독감에 잠식되어 가는 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자체가 가혹한 현실이었다.
학기가 끝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본가로 내려가는 계절이 다가오면 홀로 남았다는 생각이 더 강해지곤 했다. 비속어가 튀어나올 정도로 거칠고 변덕스러운 포항의 찬 바람이 경주를 강타하는 추운 겨울에는 특히나 더 그랬다. 기온이 떨어지는 반동에 힘을 입어 사람을 갈구하는 마음이 되려 더욱 부풀어 올랐다. 그러면 혼자서 시간 보내는 일은 그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고, 잘 해왔다며 자부하며 살아온 나의 모습이 거짓이었음을 자각해야만 했다.
잠들지 못하고 울던 새벽이 잦아지면서 10년 전 나와 같이 수업을 듣던 한 아이의 두려움 섞인 눈물의 잔상도 함께 짙어졌다. 그 아이는 매번 한 무리 속에서 '나'에 대해 이런저런 뒷말을 이어갔던 아이였다. 한 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수업 시간에 자신의 무리에서 버려지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는데,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혼자 남겨지는 게 뭐가 그리 서러운 일이라고, 나는 너보다 훨씬 전부터 혼자였어. 그런데 아무런 문제가 없잖아?' 라며 굉장히 딱한 마음으로 그 아이를 내려다봤었다. 상당히 한심한 표정으로, 그리고 '나는 외로울 일이 없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나는 친구한테 버림받은 그 아이를 보면서 '너도 나와 같은 처지구나.' 하는 통쾌함으로 '아싸(아웃사이더)'인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마치 인생의 모든 외로움을 극복한 사람처럼 굴면서 그 멋모르는 나이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겪을 만큼 겪었다고 생각 해던 것이다.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솔바람처럼 불던 외로움의 골이 더 깊어지게 된 시발점,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외로움을 잘 견디는 사람이라고 여김으로써 비롯된 문제였다. 다른 감정은 나한테 다 자연스러워도, 외로움을 느끼는 내 모습은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 고독해질 일이 있을까 하는 안일하고도 오만한 착각을 했었나 보다. 20대는 20대의 외로움이 있고 10대는 10대 만의 해소되지 못한 외로움이 있었다. 앞으로 맞이할 30대의 나도 언젠가 다시 외로움의 수렁에 빠지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으므로, 풍만하게 채워지지 못한 마음을 온전한 보름달의 형태로 착각하며 살아온 시간을 멈추고, 반달인 내 마음의 나머지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앞으로가 더 중요한 시간임을 강하게 느꼈다.
먼저 '외로움'이라는 핵심감정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부수적인 감정들은 무엇인지 살펴봐야 했다. '외로움', 그 원자 주변으로 '두려움', '공허함', '부러움', '후회', '열등감', '회의감'이라는 6개의 전자가 매일 같이 공전하는 하루를 버티며 온전히 평안한 날이 없었다. 나에게 2020년도가 기억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첫 번째는 가까운 선/후배가 떠난 이 자리에서 혼자서 공부해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둘째는 공부를 함께할 사람이 떠나가면서 힘든 대학원 생활의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현실에서 오는 공허함도 있었다. 셋째는 친구가 많고 잘 노는 후배를 보면서 느끼는 부러움과 넷째, '이렇게 공부 길로 들어올 것 같으면 이전에 좀 많이 놀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후회의 마음도 있었다. 다섯째는 공부 이외에 다른 사회 경험을 하지 못하고 돈도 없는 현실에 대한 열등감과, 당시 교수님과의 관계도 삐걱거렸던 터라 인간관계에서 오는 회의감도 적지 않았다.
부정적 감정을 분쇄시킬 새로운 변환점은 어디일까. 한 날 한시에 소멸시키는 방법은 사실상 없었다. 정말 방법이 아예 없다는 의미는 아니고, 지금 버겁게 다가오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하면서 6가지의 부정적 마음의 모듈을 약화시키는 것, 이것이 내가 택한 방법이었다. 우리는 느낌만으로도 대상을 판단할 수 있는 존재이지 않나. 뭉친 채로 처 박혀있는 감정 덩어리를 당장 환기시키지 않으면, 그것으로 세상만사 모든 일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판단하게 될 것 같았다. 닫힌 창문을 순간적으로 열면 구석진 먼지의 형체가 드러나고, 곧 먼지가 공기의 흐름을 타고 밖으로 나가듯이, 마음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일이 그때 당시 제일 시급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이때 시작한 일이 87만 원짜리 중고 DSLR카메라를 들고, 마음이 적적할 때마다 다녔었던 카페에 대한 기록을 블로그에 남기는 것과, 1년 6개월가량 보고 싶은 뮤지컬을 보러 서울에 놀러 다니는 일이었다. 그렇게 경주 말고 서울에서 지인과 만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발 딛는 곳마다 사진을 남기는 일을 2년 정도 이어갔다. 그 사이 대학원 생활의 고독함은 어느새 머리에 사라져 갔고, 점점 '홀로'를 감당하는 마음이 꾸물꾸물 '벌크업(Bulk up)' 되어가고 있었다. '혼자'는 잘하면서 '홀로' 밥 먹고, 놀고, 돌아다니는 걸 못하는 나를 블로그가 변화시켜 줬던 셈이다.
혼자 있다고 해서 '홀로'를 감당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 마음 아니면 안 된다', '이 자리 아니면 안 된다',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와 같은 작은 틀에 나를 가두는 말에 신념을 갖게 되면 정작 혼자 남았을 때 할 수 있는 일에 큰 제약이 걸려버린다. 고립감을 스스로 키우는 격이 돼버린다. 우리는 뭔가 하나를 부여잡아야 살 수 있다고 여기지만, '홀로'있을 때도 행복하려면 매달리고 잡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말이다. 그러려면 특정한 감정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몇 가지 새로운 경험에 시도해 보는 게 좋을 거다. 당연한 말 같아도 실천의 용기가 필요하므로 곱씹을수록 도움 되는 말이라 생각한다. 최근 읽은 '불교는 왜 진실인가?'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정신적 작용을 일으키는 시스템을 '모듈(modul)'이라고 할 때, 모듈은 모듈로써 약화된다고 한다. 스스로의 감정에 매몰될 때마다 '새로운' 모듈의 작용으로 밀어내면, 마음의 탈출구를 발견하기 용이할 것이다.
그러니까 외로움과 고독의 심연이 더 깊어지기 전에, 마음에 어둠이 드리워진다 싶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멈추고 다른 일을 함으로써 조금은 돌아가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것은 전혀 시간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고. 대학원 공부만 공부가 아니라 이런 과정 또한 하나의 배움이라고.